6월 제주 여행
우리 부부는 따로 정한 일정 없이 무계획적으로 여행을 떠난다.
현지에서 당일 날씨와 컨디션을 점검한다. 그리고 지도와 유튜브를 참고하면서 행선지를 정한다.
6월에 떠난 제주는 수국이 절정이었다.
- 공항뚝배기에서 시작한 여정
월요일, 제주에 도착하자마자 공항 근처 ‘공항뚝배기’에서 늦은 점심식사를 했다.
황게장, 갈치구이, 푸짐한 뚝배기. 제주도에서 가장 가성비 좋은 한 끼였다.
속을 든든히 채우고, 애월로 향했다.
- 애월 해변 산책
스타벅스에 차를 세우고 한담해안산책로를 걸었다.
바람이 불었고, 관광객들로 북적였지만 평일답게 평온했다.
'제주봄날'에서 아이스크림을 먹고, 새로 개업한 배우 이동건의 'Oasis 80' 근처 카페들을 구경하며 오후를 보냈다.
곽지해수욕장 길에서 바라본 치소기암과 곽금 3경은 제주 바다의 매력을 그대로 담고 있었다.
- 들판 위의 기차, 레일바이크
화요일 아침은 하나로마트에서 간단히 장을 보고 시작했다.
가족들이 선호하는 레일바이크는 드넓은 초원을 따라 25분간 자동으로 달린다.
아내와 둘이서 바람을 맞으며 달려가는 레일 속에는 낯선 설렘이 있었다.
"사랑은 둘이서 기차를 타고 떠나가요"라는 옛 노래가 생각났다.
- 일출랜드와 미천굴
기대하지 않고 방문한 일출랜드는 매우 인상적이었다.
조각의 거리, 선인장 온실, 야자수 산책로, 그리고 파란 선으로 이어진 넓은 정원.
무엇보다 시원한 용암동굴 ‘미천굴’이 좋았다.
365미터 개방된 공간은 한여름에도 냉장고처럼 시원했다.
- 밤낚시와 문어, 그리고 달빛
저녁엔 동복뚝배기에서 친구와 식사를 하고 낚시 준비를 했다.
문어는 바닥에, 한치는 수면 가까이에 있다고 한다.
친구는 능숙하게 에기(가짜 미끼)에 학꽁치포를 철사로 묶는 손놀림과 캐스팅(낚싯줄 던지기)을 보여주었다.
"오늘은 용왕님이 뭘 주실까?"라는 기대감을 드러낸 농담이 웃음을 자아냈다.
아내도 낚시를 즐겼다. 아내의 캐스팅은 나보다 나아 보였다. 뜻밖의 재능에 놀랐고, 낚시가 여성에게 잘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름 사이로 잠깐 보인 보름달을 벗 삼아, 한치숙회를 초장에 찍어 먹고 막걸리를 곁들였다. 친구 덕분에 한치와 문어의 손맛을 봤다. 부인의 숙련된 칼질 솜씨는 언제든 고기가 잡히면 회로 먹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 철쭉 핀 한라산
수요일 오후엔 영실코스로 한라산을 올랐다.
초보자에겐 다소 험한 길이었지만, 백록담 밑의 흐드러진 철쭉을 보며 숨을 고를 수 있었다. 4시간 왕복 코스였는데 아내는 전혀 힘들어하지 않았다. 융단 같은 철쭉보다 헐벗은 구상나무 고사목이 더 눈에 밟혔다.
- 항구에서 온 인심
친구의 지인인 옆 방 형님이 운 좋게 위미항 선장에게서 받은 잿방어 세 마리가 있다는 연락을 받고 바로 달려갔다.
친구 부인이 몸소 회칼을 들고 정성스레 해체한 회를 함께 나눠 먹었다.
제주 항구에서는 말을 잘 걸면 이렇게 넉넉한 인심도 만날 수 있다.
- 국토 최남단 마라도
목요일, 송악산 앞 선착장에서 마라도로 향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 유람선 위에서 바라본 바다는 회색이었다.
섬엔 짜장면, 짬뽕집이 즐비했고, 최남단 교회, 절, 성당까지 모두 있었다.
휴교 중인 초등학교를 보니 가슴이 멍했다.
마라도는 그 자체로 하나의 테마파크 같았다.
- 수월봉과 해안 절벽
여객선 하선 후엔 천연기념물인 영산수월봉 지질공원으로 향했다.
팔각정과 고산기상대를 지나 엉알 해안 산책로를 따라 걸었다.
수직 절벽, 화산재 지층, 해식동굴이 압권이었다. 18,000년 전에 자연이 만든 풍경에 입이 딱 벌어졌다. 기대보다 더 큰 충격이었다.
- 박물관에서 만난 탐라국
금요일 오전, 국립제주박물관을 찾았다.
제주의 시작, 탐라국의 발전과 섬문화의 역사.
특히 지하 실감영상실에서 본 영상 세 편은 정말 인상 깊었다.
‘바다 너머의 꿈’, ‘심원의 명상’, ‘영주십경’이었다.
각각 10여 분짜리 영상은, 짧지만 강한 울림이 있었다.
점심은 '통일가든'에서 검은 콩국수를 먹었다. 여기는 늦봄부터 가을까지 한시적으로 영업을 한다.
슈퍼푸드 브로콜리를 반죽한 생면이 검은콩과 어울려 고소한 식감을 선사했다.
- 김녕해수욕장
인테리어가 아름다운 '김녕카페'에서 휴식을 취하며 해수욕장을 내려다보았다. 비 내리는 해변가에는 젊은이들이 스노클링을 즐기고 있었다.
인근 '김녕용암해수사우나'에서 피곤한 몸을 풀었다. 입장료는 7천 원이라 너무나 저렴했지만 나이 드신 주인장이 직접 타월을 든 세신비는 2만 5천 원이나 받아, 가격 대비 아쉬움이 남았다.
- 엉또폭포
토요일 아침, 비 소식에 기대했던 엉또폭포로 향했다.
유튜브에서 실시간 CCTV로 물이 떨어지는 걸 확인하고 숙소를 출발했다.
도착해 보니 진입로부터 차량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폭포는 장관이었다. 콸콸 떨어지는 물소리에 말이 사라졌다.
비가 없으면 단순한 절벽이었다가 폭우가 쏟아지면 폭포로 변하는 자연의 신비함이라니.
- 제주 뚝배기 식사 비교
이번 여행에서는 뚝배기를 세 군데에서 먹었다. 각각의 뚝배기 맛에는 별 차이가 없었지만 곁들인 반찬이 달랐다.
공항뚝배기: 황게장에 갈치구이 반찬.
동복뚝배기: 미역성게국에 고등어구이 반찬
어부촌 서귀포점: 갈치튀김에 흑돼지 제육볶음, 한라산 화산을 연상케 하는 계란찜.
- 바람 많은 새연교, 바람 없는 새섬
서귀포항에서 가까운 새연교를 건너 새섬을 걸었다.
다리 위엔 폭풍 같은 바람이 몰아쳤다.
새연교에서 내려다보는 방파제에 하얀 포말로 부서지는 파도가 장관이었다.
새섬둘레길은 20분 정도 소요되는 코스였지만 바람 한 점 없는 고요한 평안함이 공존했다.
- 쇠소깍
오후에는 쇠소깍에 들러 커피 한 잔을 즐겼다.
강과 바다가 만나는 쇠소깍의 검은 모래 해변이 특이했다. 흰 등대와 빨간 등대가 나란히 보이는 검은 모래 흑사장에 앉아, 바다멍을 때리는 시간을 가졌다.
날씨가 좋으면 운행했을 뗏목과 카약은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 민박집의 평온
성읍의 별다락민박은 흠잡을 데 없이 쾌적하다.
모든 편의시설이 완비되어 있고, 위치는 제주 동부권의 중심이라 이동도 편하다.
풍력발전기를 보며 거실에서 저녁을 먹는 일상은 뭔지 모를 운치를 느끼게 한다.
- 한라생태숲
일요일은, 여행의 마지막 날이었다.
오전에 방문한 한라생태숲에서 무더위를 뚫고 한 시간을 걸었다.
눈측백나무, 산수국, 산딸나무를 즐기다 맘에 드는 생태숲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경로였다.
하지만 6월은 덥고 습해서 봄이나 가을에 다시 오고 싶어졌다.
점심은 송당파크에서 흑돼지 오겹살과 차돌박이를 굽고 시원한 맥주 한 잔을 곁들였다. 여기는 수국이 절정이었다.
- 동화마을 카페 글렌코
송당파크 맞은편에 보이는 보라색 버베나 꽃밭이 우리를 유혹했다.
제주 보리미숫가루 스무디로 옛맛을 즐겼다. 버베나 꽃밭에서 멋진 작품 사진을 찍었다. 해먹과 각종 의자, 대형 파라솔 그늘 아래 커플들과 가족들. 수국과 각종 꽃들로 아름다운 들판 위의 한가함을 즐겼다.
나도 의자에 잠시 앉아 눈을 감고 바람소리를 음미하며 오수에 빠져들었다.
- 여행의 끝, 그리고 수국의 시작
이번 여행은 수국이 피고 장마가 시작되는 시점과 겹쳐졌다.
여행 내내 ‘무엇을 볼까’보다 ‘어떻게 머무를까’를 더 생각했다.
여행의 3대 수확은 낚시 경험, 한라산 등반, 마라도 방문이었을까?
다만 한 가지는 확실해졌다.
앞으로 장마철과 무더위에는 가급적 여행을 자제해야겠다.
비가 내리면 가고 싶은 오름도 못 오르고, 행동반경이 현저히 줄어든다. 또 후덥지근한 날씨에는 급격히 체력이 고갈된다.
여름이 지나 서늘해지면 다시 이곳을 찾기로 했다.
*참고로 차량용 내비와 티맵 내비의 차이를 확연히 느꼈다. 차량용은 큰 도로 위주로 안내하는데 비해, 티맵은 지방도나 중산간도로의 지름길로 안내했다. 개인적으로는 신호가 없는 길을 선호하기에 티맵을 더 참고했다. 거리나 시간에 있어서 20%의 차이가 나기도 하였다. 게다가 제주의 절경은 지방도나 중산간도로에서 진한 맛을 느끼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