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구와 인생

우정과 경쟁, 그리고 깨달음

by 글사랑이 조동표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바로 친구들과의 모임이다. 초등학교 시절 함께 뛰놀던 친구들, 중학교에서 나란히 교복을 입던 친구들, 고등학교 시절 야간자율학습의 틈을 타 당구장으로 향하던 친구들, 그리고 대학교와 직장에서 만난 선후배까지. 인생의 어느 순간에도 사람은 사람을 만나며, 그렇게 이어진 관계가 나를 오늘의 자리로 이끌었다.



그런데 이 모임에서 빠지지 않는 것은 술잔도, 커피도 아닌 당구였다. 골프처럼 비싼 장비와 긴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단돈 몇 만 원이면 충분하고, 짧은 시간 동안 집중과 긴장을 공유할 수 있다. 대학 시절, 당구비가 모자라 전자계산기나 시계를 맡기고 한 판 치던 시절이 있었다. 그야말로 피 튀기는 血球였다. 가난했지만 친구들과 어깨를 부딪치며 큐대를 잡던 그 순간만큼은 세상을 다 가진 듯했다. 허름한 당구장의 매캐한 담배 냄새와 탁구공처럼 튀는 웃음소리가 지금도 귓가에 선명하다.


어제는 추석 연휴에 모인 친구들과의 쓰리쿠션 복식경기가 있었다. 네 명이서 두 편으로 갈라 서면 그 순간만큼은 누구도 양보하지 않는다. 나를 처음 당구장으로 인도한 친구가 속한 상대 팀은 차분히 점수를 쌓아갔는데, 우리 팀은 중반부터 살짝살짝 빗나가기 시작했다. 큐대 끝이 수구를 조금만 잘못 건드리면 공은 엉뚱한 방향으로 튀어나간다. 그 작은 오차가 승부를 갈랐다. 나는 그 순간 인생도 그렇다는 생각을 했다. 순간의 집중이 흐트러지면, 공은 목표에서 벗어나고 만다. 그러나 또다시 자세를 고쳐 잡고 큐대를 든다는 것, 그것이 삶을 이어가는 힘이 아닐까.


TV에서 보는 프로 선수들은 언제나 놀랍다. LPBA 김가영 선수가 결승전에서 보여준 집중력, PBA 조재호 선수가 보여준 치열한 승부. 멀리 있는 공을 마치 바로 눈앞에 있는 듯 맞히고, 얇은 두께를 자유자재로 조절하는 모습은 경이롭다. 하지만 그 경이로움은 하루아침에 얻어진 것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시간 매일 반복된 연습, 수없이 빗나갔던 순간들이 쌓여 만들어낸 결과다. 인생의 성취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 겉으로는 단번에 이룬 것처럼 보여도, 그 뒤에는 묵묵히 쌓아온 노력이 있다.


김가영은 포켓볼 출신이었다.
조재호의 하이런은 경이롭다.

당구장의 풍경은 이제 더욱 다채롭다. 60대, 70대, 심지어 80대의 어르신들이 큐대를 잡는다. 배낭을 멘 채 등산을 마치고 내려온 사람들이 모여 한 판 즐기며, 저녁을 함께하는 모습도 낯설지 않다. 아버지도 아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여전히 친구들과 일주일에 두세 번 당구를 친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깨닫는다. 나이가 들어도 웃으며 큐대를 잡는 마음, 그것이야말로 인생을 젊게 만드는 비결이라는 것을. 결국 점수의 많고 적음이 중요한 게 아니다. 그 순간을 함께 즐겨줄 벗이 곁에 있는가, 그것이 삶의 진짜 점수판이다.


나는 친구의 권유로 첫 큐대를 손에 쥐던 순간을 기억한다. 닳아 있던 당구대, 쿠션, 큐대 끝의 감각, 그리고 첫 번째 공이 부딪히며 내는 경쾌한 소리. 그때 느꼈던 설렘은 지금도 다르지 않다.


시간 나면 TV 앞에서 프로 선수들의 경기를 보며 시뮬레이션을 한다. 공의 각도를 계산하고, 큐대의 스피드를 상상하며, 마음속에서 수십 번의 게임을 펼쳐본다.


인생은 당구와 닮았다. 한 번의 득점은 중요하지 않고 하이런이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흐름을 끊지 않고 이어가는 힘이다. 실수가 나와도 다시 자세를 고쳐 잡고, 공을 노려보며 또 한 번의 큐를 준비하는 것. 빗나가도 괜찮다. 중요한 건 다시 교정하여 잘 치겠다는 마음가짐이다.


그래서 당구는 단순한 놀이가 아니라, 우리 인생의 은유이자 철학이다. 기다림조차 즐겁게 만드는, 나만의 삶의 경기장이다.



*이미지: 네이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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