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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지방 도시 방문 소회

시코쿠 도쿠시마

by 글사랑이 조동표

일본에서 일하고 있는 딸의 생일을 축하하고 격려하러 지난 목요일에 출국했다. 금요일에는 36년간 근무했던 회사의 발상지인 시코쿠(四國)의 작은 지방 도시 도쿠시마(德島)로 이동하여 추억에 잠기는 시간을 보냈다.


저녁에는 모처럼 지인들도 만나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는데 너무나 반가웠고 기뻤다. 사람은 과거를 회상할 때가 항상 즐겁고, 또 우리는 아름다운 추억만 기억하기 마련이다.


도시는 신입사원 연수를 받았던 곳인데, '발상의 전환'과 '창의력'에 대해 귀에 못이 박히도록 배우고, 연수 동기들과 사귀었고, 또 신혼여행을 왔던 기억이 선명한 장소이다. 한국에서 온 이방인을 친구로 맞아주며 연수받느라 고생하면서도 온갖 종류의 술과 음식으로 풍류를 함께 나누던 동기들은 이제 거의 다 정년이 되었거나 벌써 은퇴도 하였다.


결혼 당시, 듣지도 보지도 못한 남편의 직장을 의심했던 아내를 위해 일본 신혼여행을 기획하고, 오사카 공항부터 프로펠러 비행기에 몸을 떨어가며 바다를 건너 이곳으로 와서 공장과 연구소를 견학하고, 게스트하우스에서 숙박을 하고 나서야 아내는 나를 믿게 되었다.


연수원에서 청운의 꿈을 꾸었던 그 청년은 이제 중년이 되어 회사를 떠나고 없다. 시내를 굽어보는 미인의 눈썹을 닮은 미산(眉山)은 의구한데, 그 시절 왁자지껄 떠들던 동기들은 오간 데가 없다. 문득 외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다시 이 도시에 오게 되었을 때에도 과연 지난날의 친구들과 동료들을 다시 만나게 될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올 때마다 변함없이 푸근하게 나를 반기는 이 도시가, 이름 그대로 덕을 쌓는 섬으로 영원히 남아 있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비 내리는 아침, 호텔 창가에서 차 한잔 마시며 물끄러미 역 앞을 바라보다 회상에 잠겨본다.


고베(神戶)를 향하는 버스에 올랐더니 버스 창으로 보이는 풍경이 새롭게 다가오고, 나의 지인들이 건강하고 또 건승하기만을 기원하며 창밖을 바라본다.



이 도시에서 만난 지인들과 오랜만에 만나 식사를 같이하던 순간을 떠올리며, 모기업이 건립한 명소를 눈으로 더듬으며 한번 더 추억에 잠겨본다.


신혼여행 왔던 게스트하우스에는 창업가의 생가가 있다. 여기서 숙박하며 인근 바닷가 경치를 감상하면서 마시던 Ridge 와인과 일본 회석요리(會席料理)의 맛은 잊지 못할 일품이다.



나의 신혼 여행지를 보여주러, 몇 년 전에는 딸을 데리고 가족끼리 놀러 와서 바닷가 뷰에서 숙박하며 힐링을 했었다. 내부 시설은 5성 호텔급이고 식사는 동서양식을 골라서 먹는 시스템인데 특급 요리가 준비되어 나온다.


게스트하우스(영빈관) 경내에는 100여 년 전에 지어진 창업가의 생가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으며, 본관의 건축양식은 적색의 별장 모습인데, 나루토 해협을 끼고 있어 운치가 있는 너무나 멋있는 건축물이다.


나루토 해협에서는 특유의 우즈시오(渦潮 바다의 소용돌이)를 볼 수가 있고, 가까이서 보면 소름을 돋게 만드는 공포감이 짜릿하다.


게스트하우스 맞은편에는 명화 1000여 점이 전시된 국제미술관이 있는데 일본 최대 규모를 자랑하며 시대별 명화를 도판화로 복제하여 실제 원본 크기로 전시하고 있다.



일본뿐만 아니라 한국의 미술 학도들에게도 필수 방문 코스이며 고대부터 20세기 작품까지 연대별로 전시되어 있어 나도 10번 이상 방문하였고, 많은 영감을 얻어간 곳이기도 하다. 그 유명한 시스티나 홀을 재현한 대형 홀은 결혼식이나 큰 행사장으로 사용되는 명소가 되어있다. 바닥의 긴 의자에 누워서 천장을 바라봐야만 전체 그림이 보인다.


이 미술관은 3대 창업가가 문화에 공헌하러 남긴 유산이다.


어젯밤, 전 세계 연구소의 총괄책임자와 위성 연구소 소장으로 재직했던 연수원 동기와 함께 식사를 같이 하였는데, 그들은 미국유학 후에 이 회사에 몸을 담고 신약 연구개발에 평생을 바쳤다. 이들이 힘써서 개발한 의약품은 지금도 전 세계 수억 명의 만성질환 환자 치료에 공헌하고 있다. 그들은 부디 한국의 의료 발전에 힘써 달라며 나를 격려해 주었다.


또 다른 선배는 중국 재임 시에 나와 생사를 함께 하며 회사를 키우던 총경리(한국의 사장 격인 직책)였는데, 안개 낀 쓰촨(四川) 성의 고속도로에서 교통사고로 부하직원을 잃고 본인은 가까스로 살아났지만, 몸에 철심을 박는 대수술을 이겨내고 중국시장 개척을 진두지휘하였다.


그는 위기와 역경을 이겨낸 매우 용감한 사람이었는데, 늘 나에게 한국의 대통령이 되어 한일관계 수복에 노력해 달라는 농담을 하며 격려해 주곤 하였다. 올해 70살이 되었는데 아직도 뇌코일에 관련한 의료기기 개발에 전념하고 있다. 나이를 먹었어도 일자리를 마련해주고 있는 본사의 환경이 부러웠다.


어느새 날은 저물고 나그네의 길은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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