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과 양심 사이
강남역 미아: 4장 8화
- 법과 양심 사이
1. 규정이라는 미로
그는 내부감사실의 문턱을 넘나들며, 숫자와 영수증의 세계를 들여다보았다.
출장비 정산에서부터, 교제비 처리, 법인카드 사용 내역, 이중 경비 청구까지.
그는 매번 같은 결론 앞에 섰다.
“규정은 명확하지만, 사람의 행동은 그렇지 않다.”
누군가는 예산을 채우기 위해 항공권을 비싸게 끊었고, 어떤 팀은 사적인 식사비를 업무비용으로 처리했다.
한 번은 마케팅부 직원이 유흥업소 영수증을 식당 영수증으로 위장했다가 감사실에 적발되기도 했다.
심지어 법인카드로 상품권을 산 뒤 되팔아 현금화한 사례도 있었다.
그는 이런 사례를 문서로 정리하면서도 숨이 막혔다.
이 모든 것이 ‘규정 위반’이었지만, 그 경계는 늘 희미했다.
2. 미풍양속과 현실의 괴리
어느 늦은 밤, 그는 책상 위에 놓인 자료들을 바라보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법이 옳다고 모두 옳은 건 아닐 수도 있어.”
일본에서도 출장 중에 마일리지를 사적으로 사용했단 이유로 좌천된 사례를 보았다.
그것은 정말 잘못된 행동이었을까?
법인카드의 경계는 과연 어디까지일까?
그는 미풍양속과 규정은 때론 서로 충돌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 충돌의 한가운데에 서 있는 것이 바로 사람이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3. 감사와 피조사자
“이 부분을 자세히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감사실의 한 담당자가 눈을 마주치며 물었다.
그는 자료를 펼치며 답변했다.
“이건 작년 출장비 정산입니다. 해당 직원들은 고객 접대를 위해 식사를 했고, 이에 대한 영수증이 제출되었습니다.”
감사 담당자는 차갑게 메모하며 물었다.
“그렇다면 이 비용은 고객 접대비인데 사내 교제비로 잘못 처리된 것이군요?”
그는 목소리가 흔들리지 않도록 애써 침착하게 설명했다.
“보고서에는 그렇게 표기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외부 파트너와의 미팅이었습니다.”
그 말은 인정받지 못했다.
감사실은 규정을 기준으로만 판단했다.
순간, 그는 깨달았다.
“진실보다 문장과 처리가 중요해졌다.”
“사실보다 규정이 먼저인 순간, 인간이란 존재는 사라진다.”
4. 양심이라는 무게
밤늦게 사무실 불이 꺼질 때쯤, 그는 또 다른 사례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중복 청구, 과다 경비, 개인 비용 처리...
하나같이 ‘사람의 선택’이 만들어낸 결과물들이었다.
“나는 어디에 서 있는가?”
그 질문이 마음속 깊이 울렸다.
그도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들이었다.
그의 손에도 지난 연말, 규정에 명백히 어긋나는 비용 결제 서명이 남아 있었다.
부하였던 PMM이 선처를 바란다며 책상에 올려놓았던 서류뭉치.
그것은 책임이었고, 동시에 부채감이었다.
5. 경계 위의 선택
며칠 뒤, 감사실에서는 최종 보고서를 정리하고 있었다.
“이건 규정 위반으로 처리됩니다.”
“이 부분은 경고사항으로 기록해 두겠습니다.”
공식 문서와 포스트잇에 적은 부속 메모가 차곡차곡 쌓여갔다.
그는 더 이상 변명하지 않았다.
이미 법과 규정을 넘어, 진정한 윤리와 양심 앞에 서 있는 것은 자기 자신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6. 끝나지 않은 질문
그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도시는 여전히 빛나고 있었다.
어떤 일들은 명확한 답을 주지 않는다.
법과 규정, 그리고 사람의 마음은 언제든지 충돌한다.
그는 혼잣말처럼 되뇌었다.
“정답은 없지만, 질문은 중요하다.”
그는 다시 자리로 돌아가 노트를 펼쳤다.
이번에는 숫자가 아니라, 질문을 기록했다.
- 무엇이 진짜 잘못인가?
- 규정과 윤리의 간극은 어디서 발생하는가?
- 사람이 사라진 시스템을 우리는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그 질문들은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이 그를 다시 움직이게 하는 힘이 되었다.
7. 규정이라는 미로
그는 아직은 중심에 서있었다.
회의에서도, 행사에서도, 보고라인에서도 여전히 그의 이름이 먼저 불렸다.
사람들은 그가 흔들릴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 자신도 그랬다.
그가 준법감시인 업무를 맡은 뒤, 그의 하루는 수많은 서류더미 속의 계약서, 그리고 숫자와 영수증으로 채워져 갔다.
출장비, 회의비, 교제비, 복리후생비, 법인카드...
사람들의 작은 편의가 서류 위에 기록으로 남아 있었는데 모두 사소해 보였다.
그러나 쌓이면 큰 죄가 되기도 했다.
임원이라도 수십 년 다닌 직장에서 쫓겨나다시피 사직서를 제출한 사례가 있었다.
8. 경계의 붕괴
대부분은 경비 처리에 악의가 없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그런데 직장을 오래 다닌 베테랑들의 화이트 범죄, 그와의 친분을 내세운 알만한 동료들이 문제였다.
“다들 이렇게 처리합니다.”
그는 그 말이 가장 무서웠다.
관행이라는 이름의 면죄부였다.
비용을 지불하는 결제(決濟)와 그것을 승인하는 결재(決裁)는 전혀 다른 문제였다.
9. 감사실의 시선
“이 부분을 상세히 설명해 주세요.”
그는 늘 감사실의 지적에 차분하고 논리적으로 대답했다.
그러나 메모만 남았고, 해명은 사라져 갔다.
어느 날 회의실을 나오며 처음으로 불안한 느낌이 왔다.
"이번엔 다르다!"
갈수록 본사의 공기가 변해 가고 있었다.
10. 판단의 시간
밤마다 그는 기록을 다시 보았다.
그리고 자기 이름이 적힌 결재란을 바라보았다.
완벽하지 않은 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그도 시스템 안의 인간이었다.
감사실의 보고서가 완성되었다.
문장 몇 줄이 한 사람의 미래를 결정했다.
그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말이 닿지 않는다는 걸 이미 알았기 때문이다.
퇴근길, 강남역 불빛 사이로 생각했다.
'법은 옳다. 하지만 항상 정의로운가.'
그는 처음으로 ‘말’이라는 자신의 무기를 의심하고 있었다.
*이미지: 네이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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