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탓인지 무더위 탓인지 여명에 눈이 떠진다. 아직도 더운 기운이 남아있지만 그래도 27도면 산책 나가기에 무리는 없다. 시계는 5시 55분.
멧비둘기, 까치, 참새들이 아침 인사를 하고, 코스모스가 눈을 내민 산책로를 따라가니 무더위에 이파리가 타버린 마가목과 마주친다.
달맞이꽃은 햇빛이 부끄럽지만 당당하게 노란색 청순미를 뿜어내고, 메꽃, 개쉬땅나무, 나무수국이 한들한들 피어있네. 배나무는 잎이 타들어가고 있다. 꼬리조팝나무, 수호초, 능소화, 긴 산꼬리풀, 꿩의비름. 플록스, 솔잎금계국...
순환기, 호흡기, 내분비, 소화기, 이비인후, 비뇨기, 관절, 근육 등에 어려움을 겪으실 듯한 어르신들이 아침 운동을 나오셨다.
어떤 분은 청력이 어두우신 듯 아침부터 너무 크게 트로트 음악을 틀고 다니시는데, 스쳐지나다 들려오는 '가슴 아프게~'를 나도 모르게 흥얼거린다. 나도 벌써 장년인가?
말라가는 습지에는 지난번 우중(雨中)에 마주쳤던 쇠물닭은 보이지 않고, 두루미만 점잖게 수초 사이를 거닐며 아침을 즐기신다.
남한산성에 걸린 먹구름이 비를 머금었나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7시 35분에 비를 뿌려준다.
빗줄기가 더위에 농익은 땅을 군데군데 어루만지자 대지는 훅~ 하고 흙냄새 풀냄새를 뿜어내며, 기다렸다는 듯 습하고 무거운 공기를 토해내기 시작한다.
여름 나기가 이렇게 힘들어졌을까?
사내는 밀짚모자를 타고 흘러내리는 빗줄기가 반가워 연신 콧노래를 불러본다.
Rain drops keep falling on my head~~
제발 타들어가는 대지와 비는 한나절만이라도 사랑을 나눠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