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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담도담 Jun 07. 2020

마음의 멍

소심하지만 행복해



왼쪽 정강이에 멍이 있다.   

두 달 정도 전이었다. 침대에 좌식책상을 올리고 일하다가 침대 바로 옆에 대충 내려놓고 잠이 들었다.

자, 누구나 예상할 수 있듯이 아침 느지막하게 일어나 화장실을 가려고 힘차게 일어서다가 힘차게 들이박았다. 

"악!" 소리가 저절로 나올 정도로 박았다. 아파도 너무 아파서 그대로 주저앉아 한참을 끙끙댔다. 

겨우 몇 시간 자고 일어났다고 옆에 책상을 내려놓은 걸 까먹다니, 분명 자기 전에 조심해서 일어나야겠다고 생각했으면서. 이런 코미디가 또 있나. 


다쳤을 당시에는 꽤 넓은 부위가 시퍼렜다. 누가 봐도 아파 보였다. 긴바지를 입고 살았으니 같이 사는 엄마도 내가 다친 줄 몰랐는데, 우연히 봤으면 열 명 중 아홉 명은 걱정했을 상처였다. 

워낙 사방에 치대고 다니는 버릇이 있어서 크고 작은 멍을 매일 같이 달고 다닌다. 대부분의 멍은 약을 바르지 않아도 시간이 지나면 사라진다. 멍이 원래 모르는 사이에 생기고 모르는 사이에 낫는 것 아닌가. 

그래서 이번에도 약을 안 바르고 그냥 뒀는데, 확실히 제법 크게 다쳤나 보다. 두 달이 훌쩍 지난 지금도 꽤 넓은 부위의 피부색이 살짝 칙칙하다. 누르면 여전히 아프다. 완전히 나으려면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한 모양이다. 




내 몸 여기저기에 이미 사라져서 안 보이는 멍들이 있다. 

몸의 조직 세포들은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며 바지런히 움직여서 멍의 흔적도 깔끔하게 만들어 놓는다. 시간이 지나면 나도 어디에 멍이 있었는지 기억도 못 한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몸에 생기는 멍처럼 마음에도 멍이 생긴다.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하거나 기대했던 일이 수포가 되거나, 세상사 내 마음대로 되는 일보다 내 마음대로 안 되는 일이 더 많으므로. 성적이나 신체적 폭력에 노출되어 말 그대로 위험했던 적도 있고, 내가 나를 정신적인 폭력으로 몰아넣은 적도 있다. 

그 전부를 벌어진 순간의 상처 크기만큼 기억하고 살면 도저히 살 수 없으니 세월이 흐름에 따라 멍은 서서히 치유된다. 흐릿해지고 옅어진다. 

예전에 그런 일이 있었지. 문득 떠올리고 눈물짓거나 쓴웃음을 지으며 살아간다. 그러다가 아예 기억의 강을 건너 흔적이 사라진 멍도 있다. 

지금 기억하는 굵직굵직한 사건들 이외에도 더 많은 멍이 내 마음을 스쳐 지났을 것이다. 멍 자체는 사라졌더라도 내 성격이나 삶에 어떤 그림자를 남겼을 것이다. 


멍이 생기는 것이 꼭 두렵고 무서운 일만은 아니다. 크게 다치거나 위험한 일이라면 최대한 안 겪고 살아야 좋겠지만 어떤 일이 있을지는 모른다. 영화로 찍으면 '지루하기 짝이 없다!'라는 평을 받을 만큼 평범한 인생을 산 나도 자칫했으면 큰일 날 뻔한 경험이 한두 개가 아니니까. 


그래도 그 모든 경험은, 그 모든 멍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자의로 혹은 타의로 생긴 삶의 흔적들이다. 그 하나하나가 모여 지금 내 삶을 만들었고, 또 만들어 가고 있다. 내 머리는, 내가 생각하고 판단할 때 쓰는 머리는 기억하지 못해도 잠재의식과 몸의 감각은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생각하면 정강이의 멍이 흐릿해져 가는 것이 조금은 애틋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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