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담도담 Jun 30. 2020

2020.6.30 내 목과 척추가 위험해



정확히 언제부터인지 모르겠는데, SNS에서 '척추 수술 얼마, 여러분 허리 펴고 목 운동도 해주세요!'라는 글이 유행처럼 번졌다. 

나는 트위터에서 봤는데 처음 시작이 어디였는지는 모르겠다. 이런 인터넷 '밈'은 순식간에 일파만파 퍼지니까.



처음에는 '척추 수술 비싸니까 허리 펴세요~'라는 단순 경고였던 것 같은데 어느새 천만 원이 넘더니 지금은 4천만 원이라는 글도 종종 보인다. 

정확히 얼마인지 모르지만 어마어마하게 비싼 가격이다. 

척추 한 번 나가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간증하는 글도 보니 두려움이 스멀스멀 차올랐다. 

인터넷의 이름 모를 사람들은 얼마나 친절한지. 일자목이나 거북목을 개선하는 운동도 올려줘서 어설프게 따라하곤 했다. 

그래도 심각하게 생각하진 않았다. 내가 생각하기에 나는 서 있는 자세도 반듯하고 목을 쭉 빼고 있지도 않으니까. 내게는 SNS의 재미있는 밈이자 단순한 생활 정보였다. 



내가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절실하게 느낀 것은 작년 말부터였다. 

그전에도 목뼈는 자주 아팠다. 하루 평균 열 시간 이상 앉아 있으니 당연하다. 마감이 코앞일 때면 웅크린 자세로 몇 시간을 꼬박 앉아 있다. 

자연히 오른쪽 목줄기의 감각이 무거워졌고 따끔따끔한 통증이 찾아왔다. 

목 통증 자체는 어려서부터 익숙했다. 자면서 아크로바틱이라도 하는지 해괴망측한 포즈로 자는 습관이 있어서 일주일에 한 번은 목을 삐끗했다. 

목이 편한 적이 오히려 드무니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어쩌면 번역하는 사람의 고질병일지도 모르겠다. 

PDF 파일을 보며 작업하는 것이 아닌 이상 원서나 출력물을 왼쪽에 놓고 보니까 고개를 기울인다. 

사람 몸은 연결되었으니 고개에 따라 어깨도 기울어지고 그에 따라 등 전체도 비뚤어진다. 그러고 오래 앉아 있으니 몸이 배기겠나. 

바보 같지만 직업병이 일을 열심히 한다는 증거 같았다. 

일어만 보면 번역 열의가 차오르거나 틀린 문장을 교정하고 싶어 하는 '똑똑한' 직업병은 찾아올 생각을 안 하니 몸이 아픈 직업병이라도 기분 좋았달까?

일상생활에 그렇게 지장이 있는 정도는 아니었으니 괜찮았다. 이삼일쯤 지나면 괜찮아졌으니까. 


하나 작년 말부터 한번 아프면 쉽게 낫지 않았다. 일주일이 뭐야, 한 달 두 달이 지나도 계속 통증이 느껴졌다. 


모니터를 보다가 고개를 돌리면 지끈! 

운동하려고 스쾃 자세를 잡으면 지끈! 

밥 먹으려고 식탁에 앉으면 지끈! 

책을 읽으려고 침대에 기대면 지끈! 

심지어 누워서 자려고 해도 지끈! 


통증이 찾아오는 빈도가 잦아졌고 심할 때는 뒤통수까지 욱신거렸다. 

아무래도 심각한 모양인데? 걱정된 순간, '척추 수술 얼마'라는 숫자가 머릿속을 스쳤다. 

굵직하게 선이 들어간 글자가 또랑또랑 눈앞에서 날아다녔다. 숫자가 주는 그 압박감이라니! 

애초에 통장에 천만 원도 없단 말이다. 천만 원이 뉘 집 멍멍이 이름이냐고요!



몇천만 원을 낼 순 없으니 도수 치료를 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예전부터 엄마는 내 몸을 걱정해서 필라테스나 요가나 도수 치료를 받아보라고 권했다. 철없는 나는 내 몸에 돈을 들이고 싶지 않아서 들은 척도 안 했다. 

꼼짝하기 싫어하는 게으른 성격 때문이기도 하고, 죽으면 썩어 사라질 몸에 돈을 투자하기 싫었다. 

무슨 헛소리인가 싶은데 정말 그랬다. 돈은 한정되었으니(그때는 이렇게 생각했다) 건강을 위해 건전하고 재미없게 쓰기보다 쾌락을 위해 방탕하게 쓰고 싶었다. 

이 정신줄 놓은 사고방식도 몇천만 앞에서는 눈 녹듯이 사그라들었다. 

몇천만을 투자하며 피눈물을 흘리는 건 더 싫었다. 그럭저럭 철이 든 셈일까? 


몸이 건강해야 뭘 해도 한다는 당연한 진실을 깨우친 나는 돈을 내고 고통을 사는 도수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다음 편에 계속?



작가의 이전글 뚱뚱한 김밥 데굴데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