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야 잘 있어

나의 첫 헤어짐

by 생각여행자


독일로 떠나기 전, 우리 가족은 복도식 아파트 7층에 살고 있었다. 한창 뛰어다니기 좋아할, 무언가를 기다리기 싫어할 나이. 엘리베이터를 기다릴 수 없었던 나는, 내려가야 할 때면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복도 중앙에 있는 계단을 쾅쾅거리며 뛰어내리가 곤 했다. 그렇게 빠른 속도로 뛰어내려 가면서, 그리고 계단의 손잡이를 잡아 반동을 주면서 짜릿함과 쾌감을 느꼈던 것 같다. 다른 동 12층에 살던 친구 집에 놀러 갔다가 집에 돌아올 때는 계단이 많아 더욱더 신이 났다.


그런데 딱 하루, 계단에서 뛰어내려오는 발걸음이 괴로웠던 날이 있었다. 친구와 작별인사를 하고 눈물을 흘리며 뛰어내려오던 날이었다. 나는 첫 단짝 친구를 초등학교 3학년 때 사귀었는데 4학년이 되었을 때 우리 가족이 독일로 이사를 가는 바람에 더는 친구를 만날 수 없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듣게 되었다. 한국 내에서 이사한다면 얼마든 마음만 먹으면 만날 수 있었겠지만, 독일은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 없는 거리였다.


한국에 있는 집, 학교, 친척, 그리고 친구들과 헤어져야 한다는 소식에 슬펐는데, 특히나 단짝 친구와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엄마와 친구의 어머니도 친구와 하룻밤을 같이 놀며 파자마 파티를 하라고 했지만 왠지 모르게 나는 고집을 부리고 싶어 졌고, 친구와 마지막 작별인사를 한 뒤 계단을 쾅쾅거리며 뛰어내려왔다. 그날따라 마음이 무거웠고, 유독 바닥에 닿는 발뒤꿈치가 아팠다. 난 그 후로 계단을 빠르게 뛰어 내려오며 즐거워한 적이 없다.


베란다에서 정성껏 키운 나의 예쁜 닭도 경비아저씨에게 잘 키워달라고 부탁했다. 매일 상추와 모이를 주며 애지중지 키웠던 병아리의 머리에 막 벼슬이 나기 시작했을 즈음이었다. 학교에서 돌아오며 사온 병아리였는데, 지금은 생각나지 않지만 그 당시 예쁜 이름도 지어주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경비아저씨는 잘 키워주겠노라 하시면서 내 병아리를 겨드랑이에 끼고 가셨다.

처음으로 나는 소중한 대상과 작별하는 법을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