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 돌아 인간관계
학기 중 처음으로 불쾌함이 느껴지는 강의 중간평가를 받아보게 되었다. 그동안 너 좋은 일만 가득했나? 평가가 잘 소화되지 않았다. 중간고사가 끝난 시점, 종종 학생들이 강의 중간평가에 코멘트를 다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는 대개 진도가 너무 빨리 나가거나, 과제가 많다거나 수업에 관한 개선사항이라 보면 된다.
그 가운데 티칭 방식으로 운영되는 독서토의 교양과목이 있었는데, 이런 중간평가가 있었다.
이전 교수님에 비해 화법이나 책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 자유로이 발언할 수 있는 수업인데, 발표 때 자신이 말한 것을 똑같이 말했다며 무안을 주었다.
이 학생이 말하는 사람은 바로 나였고, 난 이 학생이 누구인지 특정 지을 수 있었다. 내가 화법이나 설명이 부족할 수 있다는 점은 실제로 내가 부족하기에 겸허히 받아들일 수 있었지만, 무안을 주었다는 것은 너무 부당한 평가라 생각했다. 물론 이것이 내 경력을 당락 짓거나 좌지우지하진 않겠지만, 타인에게 무안을 주는 사람으로 평가했다는 데에 화가 났다. 익명으로 쓰인 글인 데다, 여기엔 답변을 할 수 없기에 더 부당하다 느껴졌다. 적어도 온라인 악플에는 댓글이라도 달 수 있지 않은가.
문제의 강의 내용은 이랬다. 강의시간에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우리나라에서의 현실과 해외에서의 현실을 비교하는 영상을 보여주었다. 해외에서 휠체어를 타고 자유로이 다니며 어린아이처럼 웃어 보이는 사람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해서 어려움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며, 사회 구성원이라는 점을 간과해선 안된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런데 조별 토의를 진행하면서, 한 학생이 조별토의 때 자신이 경험한 예를 들며 장애를 가진 학생과 수업을 받는 데에 대한 불편감을 강하게 토로하며 토의를 주도하고 있었다. 나머지 조원들은 아무 말하지 않고 조용히 그 말을 듣고 있었다. 역차별은 늘 문제가 되기에 그럴 수 있었다. 우리나라와 같은 입시전쟁통에선 그렇게 느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발언이었다.
독일에서도 문제가 많다.
하필이면 나의 영역, 속된 말로 내 구역인 독일을 언급하다니. 물론 내가 보고 듣고 경험한 것이 전부는 아니지만, 그래도 나의 어린 시절, 대학생, 대학원생 시절에 보았던 독일에는 차별을 찾아볼 수 없었다. 무지개 깃발을 걸어두고 러브 퍼레이드도 자유로이 하는 나라니까. 물론 불편해하는 마음이야 없다고 볼 수는 없지만, 엄격한 차별금지법이 있기 때문에 어떤 대상을 대놓고 차별하거나 불만을 드러내기 어렵다.
머릿속에 빨간 불이 들어온 것 같았다. <사실이 아님>
누구나에게 '급발진 버튼'이 있기 마련인데, 나는 유독 타인을 차별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경우, 그리고 증명해 낼 수 없는 일을 지나치게 확신하고 일반화해 말하는 경우 아주 큰 불편감을 느낀다. 어쩌면 무심결에 그 마음이 들켰을지도 모르겠다. '아닌데, 차별금지법이 있는데요?'라고 말할 수 없어 물었다. 아마 그때 무안을 느꼈으리라 짐작한다.
저는 어린 시절, 대학생, 대학원생 시절에 독일에서 장애를 가진 사람을 차별한 것을 본 적이 없는데, 00 학생이 경험한 독일에는 차별이 있었나 보죠?
만일 학생이 실제로 경험했다면, 설명하면 그만이었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대로 발언을 마무리하면 정말 무안할 것 같아 우리나라의 입시 중심 교육 상황에서, 학생이 말한 것처럼 수업 시간에 불편하다고 느낄 수 있겠지만, 교육을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변한다면 불편하다는 느낌을 받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 고민을 해보면 좋을 거라고 덧붙였다. 사람과 세상은 늘 변한다는 점을 잊지 않고 '어려운 일임에도 사회 구성원을 배려하는 방향으로 가면 가능할 수 있지 않을까요?' 하고 물었다. 적당히 마무리가 되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하필이면 그 학생이 발표를 하게 되었고, 그 학생은 싫은 기색을 드러내며 내가 했던 말을 그대로 반복했다. 그래서 웃으면서 '제가 아까 했던 이야기인데, 혹시 자신의 생각을 좀 더 말해줄 수 있어요?'라고 물었다. 토론을 하면서 다른 가능성도 모색해보며 마음이 열렸을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학생은 '없습니다'라고 대답하곤 자리로 되돌아갔다.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나의 수업을 복기해 보았다. 한편으론 학생의 태도에 불편한 마음이 들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학생의 차별발언을 그대로 두어야 했었는지, 혹 무안함을 느끼지 않게 하는 방법이 없을지 고민했다. 강의평가를 위해 의견이 다를 수 있는 내용은 언급하지 말아야 했던 건가. 결국 내 센스가 부족했다 싶었다. 다른 의견도 잘 풀어갈 수 있는 능력이 진정한 의사소통 능력이자 인간관계 능력일 것이다. 불편한 기분을 다스리는 것은 선생님으로서 해야 되는 일일 뿐만 아니라,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마땅히 익혀야 할 타인을 위한 배려일 것이다. 내가 배려하는 법을 몰라 결국 학생의 평가가 되어 부메랑이 되어 날아왔으니 결국 내 인간관계 스킬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조금은 분하고 불편한 마음이 남아 이렇게 글로 남기는 것 같다. 어쩌면 평가에 대해 스스로 변명하고 싶은 것일 지도 모르겠다.
결국 최종 평가는 내가 하지 않았는데, 학생은 pass 요건을 채우지 못해 fail 되었다고 한다. 나는 그래도 합격점은 주었는데 말이다. 어른이 되어서 치사하지만 내 판단이 틀리진 않았던 것 같다는 생각에 안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