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권위

잘 입는 사람보다, 잘 버티는 사람이 되고 싶다

by 봄플

차분함

회의실 공기는 이미 팽팽했다. 부대표님의 목소리는 날카롭게 높아졌고, 모두의 시선이 내게 쏠렸다. 나는 억울하지도, 분노하지도 않았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속에서는 뜨거운 무언가가 끓어오르고 있었다. 다만 생각했다.

'이 화를 어떻게 끌어내릴 수 있을까.'

내 안의 감정을 먼저 추슬러야 했다. 잠시 숨을 고르고, 차분히 말을 꺼냈다. 심장은 빠르게 뛰었지만, 목소리는 낮고 느렸다. 그 몇 마디로 공기가 가볍게 내려앉는 것을 스스로도 느꼈다.

회의가 끝나고도 마음은 복잡했다. '혹시 무기력하게 보이지는 않았을까? 막내들에게는 역량 없는 사람처럼 비치지 않았을까?' 나는 오히려 그게 더 두려웠다.

그런데 점심 자리에서 막내 직원이 말했다.


"선배님, 멋있으셨어요."


그 순간, 부대표님의 목소리보다 나를 더 놀라게 한 건 바로 이 말이었다. 막내는 당황했던 얼굴로 덧붙였다. "그 상황에서도 차분하게 말씀하시잖아요. 저는 못 했을 것 같아요."

그제야 알았다. 진짜 리더십은 화를 내는 데 있지 않고, 자신의 화를 다스리는 데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본 사람이 조용한 평가를 내린다는 것을 말이다.

이 경험은 나에게 하나의 깨달음을 주었지만, 동시에 새로운 궁금증도 불러일으켰다.


KTX

며칠 후, 출장길 KTX에 몸을 맡기고 있을 때 그 궁금증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창밖 풍경이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동안, 나는 문득 주위 사람들을 관찰하게 되었다. 신기하게도 누가 출장이고 누가 여행인지 확실히 구분된다.

여성인 나는 스스로에게 물어봤다. 누군가가 나를 봤을 때도 이렇게 구별할 수 있을 정도로 명확하게 입고 다니고 있을까?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떠올려보니, 어느 쪽이든 여성이라면 무게가 다를 수 있지만, 분명 출장 쪽에 가까웠다.

앞자리에 앉은 여성을 유심히 봤다. 명품 슈트는 아니었지만 그가 어떤 사람인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깔끔한 블레이저, 기능적인 가방, 하루 종일 걸어도 편할 것 같은 구두. 모든 것이 '일하는 사람'의 언어를 말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사실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차리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차림새에서 드러나는 것들—책임감, 전문성, 그리고 자신의 역할에 대한 이해—이 모든 게 자연스럽게 읽혔다. 물론 그렇게 차려입어도 실력은 결국 드러나게 되어있긴 하다. 하지만 이 순간 나는 확신했다. 차림새가 분명히 중요하다는 것을.


첫 번째 언어

차림새가 왜 중요한가를 묻는다면, 아마도 옷은 말보다 먼저 작동하는 언어이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입을 열기도 전에 이미 상대에게 전달되는 메시지가 있다.

특히 여성에게는 그 균형이 더욱 섬세하다. 지나치게 캐주얼하면 가벼워 보이고, 지나치게 격식을 차리면 경직되어 보인다. 매일 아침 거울 앞에서 반복하는 선택이 결코 사소하지 않다.

회의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입은 옷은 이미 내 존재에 대한 첫 번째 정보를 제공했고, 그것이 내 말에 기본적인 신뢰를 얹어주었다. 만약 지나치게 가벼운 차림이었다면, 그 이미지로 인해 아무리 차분히 말하더라도 같은 무게를 싣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알았다. 옷만으로는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을.


JUST 15 MINUTES

옷차림은 오직 첫 15분 만을 결정한다. 상대가 내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지 여부는 차림새가 좌우하지만, 그 이후는 온전히 실력의 몫이다.

KTX에서 마주친 전문가들도 같은 조건 아래에 있을 것이다. 정장이 열어준 문은 잠시뿐이고, 진짜 평가는 그들이 어떤 성과를 내고 어떤 태도를 보이는지에 달려 있다.

그날 회의실 상황도 다르지 않았다. 셔츠가 초반의 신뢰를 열어주었지만, 막내 직원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격해진 상황 속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은 내 모습이었다. 결국 차림새는 문을 여는 언어이고, 그다음부터는 격식 있는 행동이 그 언어를 이어간다.


잘 버티는 사람

이런 생각들을 정리하면서, 나는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명확해졌다. 나는 여전히 매일 아침 거울 앞에서 선택한다. 오늘 하루를 위한 차림새를, 그리고 그 안에 담을 마음가짐을.

잘 입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심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그것보다 먼저, 그리고 그것보다 더 중요하게 잘 버티는 사람이 되고 싶다. 어떤 상황에서도 내 감정을 먼저 다스릴 수 있는 사람, 첫인상으로 시작된 신뢰를 끝까지 지켜낼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진짜 목표다.

차림새로 시작해서 실력으로 완성하는 권위. 겉으로 만들어지는 신뢰와 속으로 길러지는 중심. 그 두 개의 무게를 모두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것이 회의실에서, KTX에서, 그리고 일상의 모든 순간에서 내가 추구하는 진정한 모습이다.

2025.08 작성

퇴사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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