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포티, 노처녀?

by 봄플

첫 직장을 알아본 시기는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로 인한 리먼브라더스 파산이 전 세계 금융위기로 번지던 때였다. 청소년기였던 1998년 IMF 외환위기 때는 전국의 부모들이 실직하던 시절이었다. 가정의 문화가 무너졌고, 경제적 불안이 생활의 전제가 되었다. 그 시절을 통과한 세대는 ‘위기’라는 단어를 마음속에 늘 품고 살아간다.

20대의 나는 모든 것을 불안해했다. 어릴 적부터 40대 이상, 혼자 사는 여성이 직장에 다니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결혼하지 않은 여자 선배는 드물었고, 있었다 하더라도 모두 어느 순간 직장을 떠났다. 그녀들이 부재한 기억이 내게는 예언처럼 남았다.

그래서 더욱 안정을 찾아 헤매며 애인과 직장에 매달렸다. 그것들이 얼마나 큰 리스크인지도 모른 채, 시키는 대로 따라갔고 바보처럼 쫓아다니기 바빴다. 최근까지도 그것들은 반짝이는 희망이 아닌, 미래를 약속할 수 없는 숨 막히고 막막한 밤으로 남았다. 결과적으로 ‘성실한 불안’뿐이었다.


덕분인지 지금의 나는 노처녀이자 백수로 지낸다.


개인적인 욕심에 아이가 늘 고팠다. 아이의 꼭쥔 손을 보고 아이랑 눈맞춤하는 놀이를 하고 싶었다. 추레한 모습에도 그 아이를 낳은 사람으로 인정받아 사랑받고 싶었다.

지금까지,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에게 미안해하며 혼자 울곤 했다. 나이로 인해 미뤄지는 시간과 다운증후군과 같은 생물학적 위험이 모두 그 존재에게 전가되는 듯해 늘 슬퍼했다. 때론 아이를 고대하는 친인척과 아버지를 생각하며 혼자서 울던 밤도 이었다.


또한, 늘 경제적 불안감을 지니고 있었다.


이직 사이사이, 실업 기간마다 여행을 가지 않은 것은 아니다. 27살의 첫 해외여행부터 이삼십 대에 혼자 떠났던 여행들, 모두 후회 없이 즐기고 돌아왔다. 하지만 혼자인 여자 40대는 달랐다.

어릴 때는 직장에서 남성들로부터 유리천장을 느꼈고, 나이가 들수록 기혼자와 미혼자 사이의 역차별을 느끼며 남성들과 동등하게 경쟁했다. 같은 나이의 독신 남성도 유리 장벽을 느낀다던데, 여자는 얼마나 더 심할까. 그렇게 나는 독신 여성의 40대를 은퇴 시기로 규정지었다.

그래도 직장에 다니고 있으니, 이따금 스카웃 제의를 받으며 이직을 하니, 나름 안심이라는 것을 했다. 박사 과정에 진학한 것도 같은 이유였다. 내가 원하는 전공이 아니라 사회에서 필요할 법한 전공을 택했다. 그나마 밥벌이라도 하기 위해서였다.

나이가 들수록 기혼자와 미혼자 사이의 보이지 않는 차별을 느꼈다. 비슷한 연봉과 진급 체계 속에서 출퇴근 시간과 업무량의 차이가 분명했지만, 나는 그것쯤은 감수해야 한다고 여겼다. 2009년에 가입한 주탭청약종합저축은 번번이 신혼부부에게 밀렸지만, 그들도 어려운 경쟁률일 테니 괜찮다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렇게 조금씩 경제적 불이익을 쌓아갔다. 결론은 40대 노처녀 백수가 되어 남은 것이 없다는 것이다.

퇴사 후 남은 것은 재정정리와 해약절차 뿐이였다. 여행으로 마음을 달래는 대신, 퇴사 후 한 달 동안 숨 가쁘게 재정부터 정리했다. 불필요한 OTT, OpenAI, 각종 구독 서비스, 주택청약종합저축을 모두 해지하고, 휴대전화 요금제도 가장 저렴한 것으로 변경했다. 마치 전쟁 전 피난 준비를 하는 사람처럼 절박하게 생존 체계를 손봤다. 이리 빠르게 대처할 수 있었던 것은 아마 20년 동안 수없이 시뮬레이션해왔기 때문일 것이다.


다시 직장생활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전보다 더 비루하고, 비참하게.


요즘은 계속 악몽을 꾼다. 어제도 그랬다.

꿈속에서 나는 플랫폼 회의를 주재하고 있었다. 개발자들은 이래서 안 된다 저래서 안 된다 했고, 기획자이자 팀장인 나는 대안을 제시하며 모두의 동의를 이끌어냈다. 회의가 끝날 무렵 막내에게 다른 자료를 띄워달라고 했더니, 급한 일이 있었는지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자료를 변경하고는 나가버렸다. 나는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넘기며 회의를 마무리했다.

모든 것이 해결된 듯 회의가 끝난 후, 상사가 따로 나를 불렀다. 막내의 태도가 불편했다며 내 리더십을 탓했다. 꿈속에서도 속으로 욕했다. 회의를 완벽하게 정리했더니 탓할 게 없어서 또 이러는구나. 내가 막내를 불러다 분위기를 망칠 거라 생각했느냐.

퇴사 후 이런 꿈이 무한 반복되고 있다.


이제는 결혼도, 아이도, 직장도 바라지 않는다.


나름 한결 마음이 편안하다. 모든 것에는 때가 있는데, 내게는 그때가 오지 않았다. 내가 찾던 안정감으로 결혼, 직장, 논문이 안정의 근거가 아니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만약, 애인이 결혼하자 제안한다면, 아이도 없이 무슨 의미로 동거를 시작해야 할지 되묻고는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 혼자 사는 삶을 선택할 것이다. 박사 논문이 ‘사회적 보험’이라 믿었던 것도 사실은 불안의 또 다른 형태였다.

누군가는 퇴사 직후 출판 제안을 받거나, 해외 지사로 스카우트된다고 한다. 나에게 그런 천운은 오지 않았다. 아직 오지 않았을 뿐일지도 모른다.

이 솔직한 고백이 나에게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마음을 정리하고 다듬으며, 그런 시절도 있었구나 하고 회고하는 것. 어쩌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거나 반면교사가 되어도 좋을 것 같다. 아니면 간접적인 연습의 대상이 되어도 상관없다. 내가 다른 크리에이터에게서 받았던 위로처럼.


다만 욕하지는 말아줬으면 한다.


나뿐만 아니라 어떻게든 뭘 하든,

삶을 치열하게 이어가려

애쓰는 영포티 세대에게.



2025.10.12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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