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올린 활이 현을 켜는 순간, 그 소리는 날카롭게 시작되어 부드럽게 사라진다.
요즘의 삶이 꼭 그랬다.
아침에 뾰족하게 날이 서있다가 저녁엔 깊이 가라앉았다. 많이 참았을까, 남들만큼 참지 못하는 것일까. 방향이 맞는 것일까, 다른 것일까. 말해야 했던 것을 말하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끊임없는 자문자답 속에서 활이 올라갈 때처럼 날카롭고, 내려갈 때처럼 깊이를 실어 오전과 오후의 음을 내었다.
많은 시간을 참으며 살아왔다.
그러나 그것이 인내였는지, 두려움이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때로는 말해야 할 순간에 침묵했고, 침묵해야 할 때 말로 상처를 남겼다. 아침이면 날카롭던 마음이 저녁이면 조용히 가라앉았다. 활이 내려올 때의 여운처럼, 하루의 끝은 늘 생각으로 무거웠다.
국내 출장 때문에 KTX만 타던 내가 비행기를 탔을 때였다. 문득, 교통수단 탓만 했다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건 교통수단 문제가 아니었다. KTX든 비행기든 상관없었다. 나는 일 자체 또한 한탄하고 있었다. 그 또한 진짜 문제가 아니였었다.
여태껏 타인이 나를 질질 끌고 다녔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내가 나를 부추기고 다독이며 일으켜세우고 있었다. 의지할 곳은 역시나 없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항상 사람들이 유독 내 눈치를 보고 있다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실상은 그것 또한 아니었다. 착각이었다.
그럼 대체 무엇이었을까. 조직이든 무엇이든 절이 싫으면 나가는 게 원칙인데, 내보내지도 않고 곁에 두고 원망하게 만드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 질문에 답을 찾지 못한 채, 나는 계속 일상으로 돌아갔다.
어느 날 아침, 거울 앞에서 머리를 질끈 묶으며 문득 생각했다. 내가 원하지 않은 일을 하고 있다는 게 한탄스러웠다. 거울 속의 내 모습은 피곤해 보였고, 무엇보다 생기가 없어 보였다.
더 이상 이렇게 생활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을 때, 타인에게 최선을 다해도 그런 취급을 받았을 때, 그들이 깨어있는 듯 행세했다고 느껴졌을 때,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진짜 문제는 사람이였다.
지식인이라 자칭한 그들의 세상이 웃겼던 이유가 건달만도 못 한 천박한 문화 때문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문득 이력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부산스럽게 부평초처럼 이리저리 흔들리며 살아왔지만, 그 속에서도 나름의 궤적이 있었다. 연구했고, 특허를 냈고, 끊임없이 시도했다. 웃음이 났다. ‘부평초처럼 살았더니 특허까지 있네.’ 그들이 평가한 것 이상의 가치가 내게 있었다.
세상을 바로 보게 되자, 마침 결심이 따라왔다.
그렇게 퇴사를 결심했다. 그런데 왜 나는 계속 자문자답만 하고 있을까. 의지할 곳이 없기 때문이었다. 위험한 선택일 수도 있었다. 경제적 불안에 대한 두려움도 컸다.
주변의 시선은 엇갈렸다. 누군가는 용기라고 했고, 누군가는 무모하다고 했다. 하지만 그 모든 반응이 오히려 확신을 더해주었다. 어차피 스스로의 선택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안정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불안 속에서 살았다. 매월 들어오는 월급이 주는 안정감과 동시에, 내 의지와 상관없이 흘러가는 불안감. 이제는 그 균형을 바꿔보고 싶었다. 가장 잘하는 게 무엇인지 되짚어보기 시작했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예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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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자유를 원하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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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린 활이 현을 떠나는 순간의 여운처럼, 조용하지만 확실하게. 활이 위로 올라갈 때의 긴장과 아래로 내려올 때의 이완, 그 사이에서 음악이 탄생한다. 날카롭게 제대로 된 선율을 만들어내겠다는 다짐이었다. 앞으로는 뒤돌아보지 않고 달려온 그 발걸음을, 이제는 조금 더 의미 있는 방향으로 향하게 하고싶다. 내 삶도 내 뜻대로 찾아가리라.
소리가 부드럽게 부서지기 시작한다.
2025.09.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