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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벤에셀 Apr 02. 2021

규칙적인 소란스러움이 가져다주는 고요함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

아이들의 번잡스러움은 내면의 번잡스러움을 몰아내주곤 한다. 아이들의 소란스러움은 머리와 마음의 소란스러움을 가라앉혀주고 고요를 가져다주곤 했다. 그래서 나는 조용히 혼자 있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아이들과 함께할 때의 그 고요가 좋아서 계속 아이들 곁에 머물러 있고 싶어 했던 것 같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2020년의 여름, 대학교 4학년인 나는 내 인생의 마지막 여름방학을 하게 되었고 그 시간을 나와 같이 코로나 때문에 집콕 중인 초등학생 사촌동생들과 함께 보내게 되었다.

이 시간 동안 우리는 하루의 시작과 끝을 모두 함께 했다. 아이들과 함께이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나는 여느 방학 때처럼 새벽 4시쯤에 잠이 들어 아침 11시에 일어나 아점을 챙겨 먹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과 함께 있는 동안에는 그런 자유로운 생활이 허락되지 않는다. 밤 9시면 잠이 드는 아이들 덕에 나 역시 덩달아 밤 9시가 되면 잠자리에 들었고, 오전 8시면 아이들의 소란스러움에 일어나게 되었다. 매일 8시 30분에는 같이 아침을 먹었고 아침을 먹은 욱이가 돌봄 교실에 가고 난 9시쯤에는 찬이와 나만이 집에 남게 되었다.


우리는 각자 오늘 들어야 할 수업들을 듣고 공부를 하다가 오후 1시가 되면 점심을 함께 먹었다. 점심을 먹고 난 후에 찬이의 공부를 좀 봐주다보면 어느새 시간이 지나 5시가 되었고 돌봄 교실에 갔던 욱이가 돌아왔다.

욱이가 돌아오면 우리 셋은 또 함께 이른 저녁을 먹고 마스크를 꼭 쓴 채 가볍게 집 근처로 산책을 나가곤 했다.


산책을 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온 후에는 욱이가 좋아하는 숨바꼭질을 좀 하다가 잠에 들었다. 별 일 없이 그저 이런 하루들이 반복되었다.

이 집에서 생활하는 동안에 나는 늘 같은 시간에 일어나 하루를 시작했고 늘 같은 시간에 잠이 들었다.

어느 때 보다도 단조롭고 규칙적인 생활을 했던 방학이었다.

계속 나만 졸졸 따라다니는 아이들이 귀찮았던 적도 있었지만 끊임없이 사부작대던 아이들 덕분에 나는 하루하루를 별 일 없이 잘 보낼 수 있었다.

각자의 집이었다면 혼자 먹었을 밥을 함께 먹었고, 보통 때였으면 혼자 걸었을 밤 산책길을 아이들과 함께 걸었다.

비대면 수업은 초등학생인 아이들에게도 대학생인 나에게도 모두 낯설고 새로운 일이었지만, 그 시간 동안 그래도 우리는 제법 서로를 잘 돌보며 지낼 수 있었다.

그렇게 어른들은 모르는, 우리들 만의 추억이 만들어지는 동안 나는 규칙적으로 돌아가는 내 하루가 꽤 만족스러웠다. 무엇보다 아이들의 삼시세끼를 챙겨주기 위해 나 역시 그 어느 때보다 삼시세끼를 꼬박 잘 챙겨 먹던, 아이들을 돌봄과 동시에 나를 잘 돌볼 수 있었던, 그래서 하루의 끝에서는 푹 깊은 잠에 들 수 있었던 건강한 방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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