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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벤에셀 Apr 02. 2021

너의 열두 살을 보며 나의 열두 살을 떠올려

외면했던 습관, 마주하게 된 습관, 새롭게 만들어갈 습관

습관. 누구나 자기만의 오랜 습관을 가지고 있다.


요즘 12살 찬이와 가장 많이 하는 이야기 중 하나가 습관에 관한 것이다. 생각해보면 내가 가지고 있는 습관들의 대부분이 이 시기에 만들어졌다. 무언가 해야 할 일들을 선생님이 불러주는 대로 알림장에 받아 적는 것이 아니라 내 스스로 기록하고 체크해나가던 것도, 긴장이 될 때는 손톱을 물어 뜯게 되었던 것도 12살 무렵에 만들어진 습관이었다.


그래서 나는 요즘 공부를 할 때 부쩍 실수가 잦아진 찬이에게 실수를 줄이기 위해서는 문제를 풀 때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한 번 더 생각을 하고 문제를 풀고, 문제를 다 푼 후에도 꼭 검산을 하는 습관을 들이는 게 중요하다는 잔소리를 많이 하곤 있다.

이맘때 자기도 모르게 만들어지는 습관들이 꽤나 오래 이어진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나는 어쩔 수 없이 찬이 앞에서는 늘 잔소리가 많아진다. 그렇게 낮 동안 찬이에게 이른바 ‘습관의 중요성’에 대해 열변을 토하고 나서 모두가 잠든 밤이 되었을 때, 나는 가만히 누워 내가 가진 습관은 무엇인지, 나조차 모르고 살아온 내가 그동안 외면해온 습관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나는 어떤 습관을 외면하며 살아온 사람일까?


내가 지금의 모습을 가지게 된 데는 분명 어떤 습관의 영향이 있었을 텐데 나는 어떤 습관을 가지고 어떤 습관을 애써 외면하며 살아왔기에 지금 어떤 습관을 가지게 된 사람으로 자라게 되었을까?

긴장이 될 때면 손톱을 물어 뜯는 것, 스스로 해야 할 일을 꼼꼼히 기록해 놓는 것과 같은 보이는 습관 말고 내게는 어떤 보이지 않는 습관이 숨겨져 있을까?

나 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내 오랜 습관이 무엇일지 문득 궁금해졌다. 그리고 용기를 내 보았다. 오랫동안 외면해왔던 나의 숨겨진 습관을 한 번 마주해보기로 했다.

첫 시작은 질문이었다.

나는 정말 누군가와 마음을 다해 가까워져 본 적이 있었나? 다른 사람과 고운 정이 아닌 미운 정까지도 주고받아본 적이 있었나?

생각해보면 12살 때쯤부터 나는 상처 받지 않기 위해 다른 사람들과 일정한 거리를 두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던 것 같다.

12살 때 엄마 아빠가 이혼을 했지만 나는 크게 상처를 받지는 않았었다. 부모님의 이혼이 나를 엇나가게 하거나 방황을 하게 할 정도로 힘든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크게 상처 받지 않았다고 해서, 내가 유별나게 굴며 엇나가지 않았다고 해서, 부모님의 이혼이 별 일이 아니었던 것은 아니었나 보다.


나는 내가 별 탈 없이 잘 컸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부모님의 이혼은 나도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사이에 나에게 아주 큰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나는 상처 받지 않기 위해 방어기제를 발휘하곤 했고 관계에 있어서 그런 방어기제를 보이는 것이 곧 나의 습관이 되어가고 있었다. 나는 누구도 나에게 쉽게 상처를 줄 수 없도록 모든 사람들과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려고 했다.


생각해보니 결국 내가 별 일 아니라고 여겼던 부모님의 이혼은 지금의 내가 가지고 있는 습관 중 가장 강하고 깨기 힘든 습관을 만들어준 별 일이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독립적이었다. 부모님의 이혼 후 나는 모든 것을 스스로 잘 해내려 했다. 스스로 잘 해내야만 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나 말고는 온전히 기댈 사람이 없다는 것을, 누군가에게 기댈수록 더 상처 받게 될 일이 많아지게 된다는 것을 나는 12살 그 어린 나이에 어렴풋이 알게 되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뭐든지 혼자서 감내하려 했다. 혼자 감내하는 게 힘들긴 했지만 그래도 적어도 혼자 모든 걸 감내하면 다른 사람 때문에 상처 받게 될 일은 없을 거라는 생각이 나를 안심시켜줬다.


나는 내게 주어진 문제를 스스로 잘 해결하려 했고, 대개 잘 해결해 나갔다. 어른들은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엇나가지 않고 잘 커나가는 나를 기특하게 여겼고 어른스럽다며 칭찬을 해주었다.

하지만 어른들은 틀렸다.

나는 그저 어른을 흉내 내며 누구에게도 깊이 마음을 내주지 못하는 미성숙한 아이로 자라고 있었을 뿐이었다. 어른이기보다는 아이이고 싶었던 아이에게 ‘어른스럽다’는 말은 칭찬도 위로도 되어주지 못했다.

뭐든지 스스로 감내하려 하는 것, 누구에게도 큰 기대를 하지 않는 것, 그렇기에 모든 관계에 큰 미련을 가지지 않는 것, 다른 사람이 나에게 함부로 상처를 줄 수 없도록 나만의 견고한 보호벽을 치는 것, 관계에 있어서의 갈등을 회피하고 싶어 하는 것, 누구와도 서로 상처를 주고받는 깊은 관계로까지는 나아가지 않으려 하는 것, 그리고 마치 이 모든 것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담담한 어른인 척하는 것.


이것들이 내가 마주하게 된 나의 오랜 습관이었다.
그리고 이 미숙한 습관들이 오랫동안 지금의 나를 이뤄오던 것들이었다.

나는 어른스러운 아이가 아니라, 그저 방어기제가 강한 상처 받기 무서워하는 어린아이였을 뿐이었다.

그렇게 나는 내가 의식하지 못했던, 어쩌면 오랫동안 외면해왔던 나의 오랜 습관을 마주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방어기제가 습관이 된 데는 기복이 있는 관계에 대한 두려움이 큰 영향을 미쳐왔음을 알게 되었다. 나는 기복이 있는 관계가 무서워서 모든 관계에서 다툼을 피하고 싶어했다. 다툼과 갈등이 만들어낼 관계의 기복을 피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게 불가능하다는 당연한 사실을 또래 친구들보다 훨씬 더 늦게 깨닫게 되었다.


모든 관계에는 기복이 있을 수밖에 없다. 관계에 기복이 있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고 어쩌면 더 건강한 관계를 위해 꼭 필요한 것이기도 하다.


하물며 한 사람의 하루에도 수많은 감정의 기복이 있다. 서로 다른 두 사람 사이에 관계의 기복이 있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고 문제가 될 게 없는 일이다. 그래도 나는 관계의 기복이 두려웠고 기복을 피하고만 싶어했다. 그래서 어른이 되어서까지도 기복이 없는 관계를 지향해왔다.


그러니까 결국 내가 꿈꾼 관계는 세상에는 없는 관계였다. 그래서 나는 모든 관계가 늘 어려웠나 보다.


누구에게도 미움받고 싶지 않고 상처 받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나에게 기복과 혼란스러움이 없는 관계를 꿈꾸게 했다. 그래서 나는 더 불안해졌고 외로워졌다.


그래도 지금에 와서 딱 하나 달라진 게 있다.


내가 오랜 시간 외면해왔던 내 습관을 그래도 마주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너무나 오래된 습관이기에 내가 과연 이 습관을 고칠 수 있을지 걱정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습관은 새로 만들어지기도 하는 거니까 나는 내 오래된 습관을 고치는데 집중하기보다는 다시 새로운 습관을 만들어가는데 집중해보려 한다.


기복 있는 관계를 있는 그대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습관. 그런 습관을 들이는 연습을 다시 해보려한다. 갈등과 기복이 없는 관계만을 만들고 싶다는 강박을 내려놓는 연습을 해보려 한다. 모든 다툼이 꼭 관계의 파국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어른스럽게 받아들여 보려 한다.


더 이상 열두 살 어린아이가 아니니까.

이제는 오래된 습관과 이별하고 진짜 어른으로 나아가기 위해 새로운 습관을 만들어갈 때이다.


오랜 시간 움켜쥐고 있었던 갈등 없는 관계에 대한 강박을 편히 놓아주는 것이 어른이 된 내가 어린시절의 나에게 해줄 수 있는 작은 위로가 될 것이다.

이제는 상처 받아도 그 상처에 매어있지 않을 수 있는 충분히 강한 어른이 되었다고 안심시켜 줄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나는 나와는 다른 열 두 살을 보내고 있는 찬이를 보면서 나의 열두 살을 떠올린다.


같은 시간 속에서 찬이는 자신의 첫 번째 습관을 만들어나가고, 나는 나의 첫 번째 습관과의 이별을 해나간다. 우리는 서로를 통해 새로운 습관을 만들고 또 오래된 습관과 이별한다.


그렇게 함께 하는 시간 속에서 찬이도 나도 조금씩 더 성숙해져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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