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순간 그림자와 함께였다
유독 마음이 어둡게 그늘진 날, 눈에 선명하게 들어오는 것들이 있다. 내겐 그림자가 그중 하나이다.
그림자는 빛만 있는 환한 곳에서도 보이지 않고 빛 하나 없이 어둡기만 한 곳에서도 보이지 않는다.
오직 희미한 빛과 진한 어둠이 공존할 때만 그림자는 내게 그 모습을 드러낸다.
나에게 그림자는 성찰이다.
깊은 어둠 속에서 아주 약간의 에너지만을 가지고 있었을 때 나는 마음이 밝을 때는 그 환한 빛에 가려 보이지 않았어서, 마음이 너무 어두웠을 때는 들여다 볼 힘이 없어서 들여다보지 못했던 내 솔직한 마음을 찬찬히 들여다볼 수 있었다.
매일 나를 따라다니는 그림자지만 막상 내가 내 그림자를 가만히 응시하게 될 때는 그렇게 많지 않아서, 나는 이따금 마주하게 된 내 그림자에 반가움과 아릿함을 동시에 느끼곤 했다.
그림자에는 어떠한 표정도 담겨있지 않다.
그림자는 웃고 있지도, 울고 있지도 않다.
그렇게 텅 비어 있는 그림자의 모습이 나와 가장 닮아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그림자는 항상 내 내 뒤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다.
그래서 어느 날 문득 나를 닮은 내 그림자에 시선이 가게 될 때, 여전히 내 뒤에 나만의 그림자가 있다는 것에 이상한 안심을 느끼곤 했다.
어색한 표정도, 인위적인 보정도 없이 그저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담아낸 것 같은 그림자를 바라볼 때면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림자는 내가 만들어낸 것 중 가장 어두운 나의 모습이면서 또 가장 진실된 나의 모습이다. 그래서 나는 내 그림자가 좋다.
온통 어둠뿐인 것 같은 순간에도 묵묵히 내 뒤를 받쳐주고 있는 그림자가 든든할 때가 있다.
문득 혼자인 것 같은 순간들에,
터덜터덜 걸어가는 내 뒷모습을 유일하게 지켜보며 언제나 늘 같은 모습으로 나를 따라와 줄 그림자가 있다는 것이 의지가 된다.
영영 나이 들지 않는 모습으로 조금씩 나이 들어갈 나를 뒤따라올 나만의 그림자.
영영 나이 들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림자는 마음과도 퍽 닮아있다.
시원한 2020년의 가을밤,
찬이와 함께 나온 저녁 산책길에서 나는 우리의 그림자 사진을 남겨놓는다. 영영 나이 들지 않을 우리의 마음처럼 우리의 그림자도 나이들지 않은 채 항상 같은 모습으로 남아있겠지.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