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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벤에셀 Apr 02. 2021

맥주 마시듯 그렇게 벌컥벌컥 숨 쉬면서

불안함에 속아 감사함을 잃지는 말아야 하니까

내가 찬이 나이였을 때 나에게 스물 다섯이라는 나이를 가진 사람들은 어른처럼 느껴졌다. 그들은 모든 것에 의연해 보였다. 그들을 보며 스물 다섯 정도에는 나도 모든 것에 의연해질 수 있는 어른이 되어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스물 다섯이 된 나는 여전히 내 상상 속의 어른이 되어 있지는 못했다. 어린 시절 내가 보았던 어른들은 어떤 순간에도 의연했었는데 나는 여전히 아주 사소한 것들에 연연하고 흔들린다. 이런 모습은 내가 생각했던 어른의 모습은 아니었다.


기분이 태도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 있다. 아직 흔들리는 중인 어른이인 나는 사실 하루에도 여러 번 스치 듯 우울이라는 감정을 만난다.


그래도 아이들 앞에서만큼은 이런 내 기분과 달리 늘 괜찮은 척 의연한 태도를 보이려 한다. 내가 그랬듯 아이들도 아이들 눈엔 어엿한 어른으로 비춰질 내 모습을 보며 그리고 내 태도를 보며 무언가를 학습해 나갈 테니 말이다.


이런 나를 보면서 어린 시절 내가 보았던 어른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어쩌면 매 순간 의연해보였던 그들도 그저 의연한 척을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흔들림 많은 모습들을 꽁꽁 잘 숨기고 있었던 것 아니었을까?


예전에는 어떤 순간에도 의연함을 잃지 않는 사람이 어른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요즘에는 어떤 순간에도 의연함을 연기하기를 멈추지 않는 사람이 어른인 것 같다. 그리고 그렇다면 아이들을 안심시키고 싶은 마음에 의연함을 연기하고 있는 나는 제법 어른이 되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코로나 19가 타격을 안 준 곳이 없지만 취준생에게도 코로나는 가혹했다. 되도록이면 불안감을 안 가지려 하지만 염치도 없는 불안감은 하루에도 몇 번씩 나를 찾아와 제 존재감을 드러낸다.


어느 순간엔 불안감에 잠식되어버릴 것 같다는 느낌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안함에 속아 감사함까지 잃어서는 안 되니까, 나는 모든 것이 불확실하고 불안한 시기이긴 하지만 그래도 어린 동생들하고 보내고 있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지금 이 시간에 대한 감사함만은 잃지 않으려 한다.


심적으로 불안한 시기에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같이 보내고 있는 사람이 아이들이라는 게 문득 정말 감사할 때가 있다.


곁에서 아이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내 마음에 드리워져 있던 짙은 불안함이 조금씩 옅어지곤 했다.


어쩌면 홀로 고립되었을 수도 있었던 시기에, 아이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 덕에 나는 불안함은 덜 느끼고 감사함은 더 많이 느끼며 나에게 주어진 이 어쩔 수 없는 시간들을 그래도 건강하게 잘 보낼 수 있었다.


그래서 오늘 하루도 몹시 불안했지만, 충분히 감사한 하루이기도 했다고 말하게 된다.


언젠가 지나가게 될 불안함에 속아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지금 이 시간에 대한 감사함마저 잃지는 말자.


불안함에 잠식되어 내가 좋아했던 나의 모습을 잃어가지는 말자.

또 다시 마음이 불안해지는 순간이 찾아왔을 때는 그저 벌컥벌컥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자.

때론 맥주 마시듯 숨을 벌컥벌컥 크게 쉴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위안이 될 때가 있으니까. 그렇게 쉬어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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