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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벤에셀 Apr 02. 2021

코로나 19가 불러온 열흘 간의 합숙

코로나로 모든 것이 멈추었고, 모든 것이 새로 시작되었다

코로나 19가 불러온 열흘 간의 합숙 上

-비대면 수업으로 시작된 우리의 2020년


코로나로 모든 것이 멈추었다. 대학생인 나는 이번 학기 전체 비대면 수업이 확정되었고, 초등학생인 사촌동생들은 계속해서 등교가 늦춰졌다. 우리의 2020년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흘러갔다.


원래는 일주일에 두 번 아이들과 시간을 보냈지만, 나도 학교에 가지 않고 아이들도 학교에 가지 않게 된 요즘엔 더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고 있다. 어차피 나도 집에 있게 된 거 아이들과 같이 있으면서 내가 챙겨줄 수 있는 부분을 더 챙겨주자는 생각에 이모네에 한 번 가게 되면 평소보다 더 오래 있다 오게 되었다.


코로나가 기승을 부려도 어른들은 일을 하러 나가야 하니 집에는 초등학생인 두 명의 아이들과 대학생인 한 명의 어른이만이 남게 되었다. 그렇게 우리의 꽤나 긴 코로나 발 합숙이 시작되었다.


일주일이 넘게 아이들과 같이 생활하다 보니 주말에 두 번 아이들을 봤을 때 하고는 또 다른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조금 더 아이들의 생활에 깊숙이 들어오게 되었다고 해야 할까?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며 나 때와 달리 요즘 초등학생들은 어떤 식으로 학교 수업을 듣고 있는지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되었다.


내가 초등학생이던 때는 영어 교과서에 연두색 외계인 지토와 토미가 나왔었다. 그때만 해도 우리는 영어 동영상 수업을 CD로 들었었고 그것도 그 당시에는 엄청난 ‘디지털’이었다. 그런데 요즘 초등학생들은 아예 ‘영어 디지털 교과서’라는 것도 있고 온라인 수업을 관리해주는 ‘클래스팅’이라는 플랫폼도 있다. 내가 어렸을 때와는 참 많은 것이 달라졌다. 라떼는 알림장을 챙겨 가서 선생님이 불러 주는 그날의 공지사항을 놓칠 세라 열심히 적어 엄마에게 보여주곤 했었는데… 요즘엔 클래스팅이라는 플랫폼을 통해 선생님의 전달사항이 부모님께 쉽고 편리하게 공지되었다.


‘세상 참 편해졌네’라는 라떼 같은 생각을 하다가도 접근이 편리해진 만큼 그런 손쉬운 접근에서 소외되는 곳도 더 많아졌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등학교의 등교는 계속 늦춰졌고, 더는 개학을 늦출 수 없어 온라인 개학을 한 많은 초등학교들이 아이들에게 온라인 수업을 제공했다. 아이들은 수업을 듣기 위해 ‘클래스팅’, ‘영어 디지털 교과서’ 등에 접속할 수 있어야 했고 ‘EBS 초등의 자료실(톡톡)’에 들어가 수업에 필요한 자료들을 다운받아 수업을 준비해야 했다.


아이들의 수업 준비를 도와주었던 나는 이게 정말 녹록치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 역시 비대면 수업을 듣고 있는 대학생이었지만 그런 나조차 초등학생 아이들의 비대면 수업 진행에 필요한 여러 복잡한 준비사항들 때문에 꽤나 애를 먹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었다. 우리 아이들은 핸드폰도 있고 노트북도 있고 심지어 태블릿도 있다. 이 아이들에게는 자신들의 학교 생활에 관심이 많은 부모님도 있고 똑같이 코로나 때문에 비대면 수업을 하고 있어 자신들을 챙겨줄 수 있는 대학생 언니인 나도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을 가진 우리 아이들도 처음 겪어보는 비대면 수업에 많이 혼란스러워했고 적응하기 어려워했는데 이 중 하나라도 없는 아이들은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하는 걱정이었다. 점심은 대체 어떻게 챙겨 먹고 있을 것이며, 과제 제출은 어려움 없이 잘하고 있는 걸까? 대학생인 나도 한참을 헤맸었던 EBS 초등의 자료실(톡톡)에서 자료는 잘 다운받아 수업 준비를 하고 있는 걸까?


며칠 전 코로나로 인해 아이들이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가정폭력이 늘었다는 기사를 보았다. 예전 같았으면 그저 안타깝다는 생각만 하고 지나쳤을 이야기였다. 하지만 내가 직접 아이들을 돌보며 가까이에서 지금 초등학생 아이들이 어떻게 온라인 수업을 듣고 있는지를 보게 되니 더 마음이 안 좋아졌다.


왜 늘 가장 취약한 곳이 가장 먼저 고통받아야 되는 걸까? 어른들의 도움 없이는 아이들이 지금 이 시기에 제대로 된 학습을 하기가 매우 어렵다. 모두가 힘든 시기이지만 유독 아이들에게 더욱 가혹하고 힘든 시기인 것 같아 마음이 너무 아팠다. 코로나로 인해 어쩌면 평소보다도 더 많이 마음을 다치고 있는 아이들이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제발 코로나가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다. 부디 코로나 때문에 마음이 할퀴어지고 있는 아이들이 많지 않았으면 좋겠다.


코로나 시국이 불러온 열흘 간의 합숙 中

-욱아 꿈길만 걷자, 미안해 고마워


열흘 간의 합숙은 사실 짜증이 뻗치는 하루하루이기도 했다. 대학생인 나도 비대면으로 수업을 듣는 동안 그 어느 학기보다 많은 과제 때문에 정신없이 바쁜 하루하루를 보냈다. 하지만 그 정신없는 와중에도 나는 중간중간 아이들 과제를 봐줘야 했고 때가 되면 밥도 차려줘야 했다. 또 끝없이 심심해하는 아이들과 틈틈이 같이 놀기도 해야 했다.


나는 인프제다. 혼자만의 시간이 누구보다 필요한 infj유형의 한 사람으로서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혼자만의 시간이 하나도 없이 모든 시간을 늘 아이들과 함께 보내야 한다는 것이 나에게 적잖은 에너지 소모를 가져다 주었다.


정신없는 하루의 시작과 끝에서 내가 들었던 말 중 가장 무서웠던 말은 밥을 달라는 말도, 과제를 좀 봐 달라는 말도 아닌, 욱이의 ‘놀아달라’는 말이었다. 나는 그 말이 제일 무서웠다. 분명 방금 놀아줬는데 뒤돌면 또다시 놀아 달라는 이 아이가, 이 말도 안 되는 체력이 너무 무서웠다. 욱이는 넋이 나간 내 얼굴을 보며 웃겨 했지만 나는 정말 진심으로 우리의 합숙 기간 동안 꽤나 여러 번 욱이에게 "우리 제발 사회적 거리두기 하자"라는 말을 하곤 했었다.


정말 아이를 돌본다는 것은 엄청난 일인 것 같다. 그래서 나는 가끔 이모네서 친구들과 통화를 하며 70%의 진심을 담아 내 인생에서 아이들을 돌보는 건 지금이 처음이자 마지막일 것이라고 공언을 하기도 했었다. 그만큼 아이를 돌본다는 것이 정말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이들이 잘 때 가장 예쁘다는 부모님들의 말이 무슨 말인지 1000% 이해가 되었으니 말이다. 나도 우리 욱이가 매일 꿈길만 걸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으니까. 욱이한테는 미안하지만 욱이야 너는 정말 자는 모습이 제일 예쁘다.


코로나 시국이 불러온 열흘 간의 합숙 下

-770원의 행복


한 번도 육아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내가 아이를 키우는 사람들이 아이를 잘 키워내는 것을 기꺼이 당신들 인생의 가장 큰 목표이자 행복으로 삼는 이유가 어쩌면 아주 작은 찰나의 순간에 나도 모르게 지어지는 어떤 미소 때문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단돈 770원이 가져다 준 생각이었다.


770원이라는 돈은 나에게 큰 금액으로 느껴지는 돈은 아니다. 큰 금액으로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을까? 나는 770원이라는 돈이 누군가에게 행복을 전해줄 수 있는 돈이 될 수 있을 거라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기쁨을 선물하기에 770원이라는 돈은 너무나 작은 돈이라고 생각했다. 친구들의 생일 선물을 살 때도 카카오톡의 선물하기에 들어가 기본 만 원은 넘는 선물을 고르곤 했으니, 그리고 그 정도의 금액은 되어야 누군가에게 기쁨을 선물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어른이 된 이후 누군가에게 기쁨을 주기 위해 무언가를 선물할 때 판단이 기준이 되었던 것은 많은 경우 돈이었다. 돈이 가치평가의 전부가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다른 사람에게 기쁨을 주기 위한 선물을 살 때면 가격이 가장 큰 기준이 되곤 했다.


어른이 되고 난 이후 내가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선물했을 때 770원이라는 돈은 여지 것 중 가장 적은 금액이었다.


내가 770원의 선물을 건넨 사람은 9살 욱이었다. 


욱이는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를 보고 난 이후 드라마 ost인 가호의 ‘시작’이라는 노래에 꽂혀 그 노래를 벨소리로 설정하고 싶어 했다. 그래서 나를 졸졸 쫓아다니며 계속 벨소리를 선물해달라고 졸라 댔다. 쉴 새 없이 벨소리를 사달라고 조르는 욱이가 귀찮다 가도 또 너무 갖고 싶어 하는 그 모습이 귀여워서 벨소리를 구매해 선물해주었다. 욱이한테 벨소리를 선물해주는데 들었던 돈이 바로 700원에 부가가치세 70원이 붙은 770원이었다.


벨소리를 선물 받고 난 이후 자기 핸드폰에 계속 전화를 해보라던 욱이는 자기 핸드폰에서 ‘새로운 시작은 늘 설레게 하지 모든 걸 이겨낼 것처럼’ 이라는 벨소리가 흘러나오자 방방 뛰어다니며 좋아했다. ‘그게 그렇게 좋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도 안 되게 좋아하는 모습에,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하는 그 모습에 나는 내가 이 아이에게 무언가 대단한 것을 선물했다는 착각에 빠질 뻔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해 보이는 얼굴을 하고서 말갛게 웃는 그 아이의 모습을 바라보며 나까지 미소가 지어졌으니 말이다. 심지어 울컥하기까지 했다. ‘이게 뭐라고’. 고작 770원이 만든 기쁨이었다.


그 770원이라는 작은 돈이 욱이에게 가져다준 기쁨은 최근 내가 목격한 타인의 기쁨 중

가장 크고 환한 것이었다. 그리고 누군가의 기쁨이 나의 기쁨이 된 것은 더더욱 오랜만이었다.

그때 처음으로 생각했다. 내가 감히 아이를 키우는 사람들의 마음을 모두 다 헤아릴 수는 없겠지만 아이 때문에 애를 먹어 10번이 넘게 짜증이 나다가도 또 그 아이 때문에 아주 별 것 아닌 일로 1번 웃음 짓게 될 때, 그 아이가 그들의 삶의 이유이자 가장 큰 기쁨이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다. 여전히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내게는 왠지 아주 먼 일로만 느껴지고 육아라는 것에 대해 단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한 아이에게 기쁨을 전해주는 삶을 살겠다고 다짐하는 것이 그동안 내가 어렴풋이 생각해왔던 것보다도 훨씬 더 크고 가치 있는 인생의 멋진 목표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70원의 부가가치세가 붙은 770원은 누군가에게 행복을 전달해주기에 충분한 돈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돈을 썼다는 체감도 들지 않았을 그 작은 돈이 내게 평생 잊혀 지지 않을 돈으로 남게 되었다. 한 순간에 욱이의 얼굴에 환한 웃음을 가득 띄어 준 그 돈은 어쩌면 욱이보다도 내게 더 큰 기쁨이 되어주었다. 그날의 770원은 욱이 뿐 아니라 내게도 반짝이는 그 무엇을 선물해주었다.


P.S 욱이에게

700원에 부가가치세 70원이 붙은 770원이라는 작은 돈이 너를 웃음 짓게 만들 수 있는 돈이라면, 그 돈은 나에게도 큰 기쁨을 가져다 줄 수 있는 큰 돈이었어. 너는 그렇게 아주 작은 것에도 티없이 해맑게 웃던 아이였어. 770원짜리 벨소리 하나에 세상을 다 가진 것 마냥 좋아하며 방방 뛰어 다니던 너를 보며 나 역시 참 많이 행복했어. 내 작은 선물이 너의 얼굴에 그 천사 같은, 말도 안 되는 미소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해줘서 고마워. 너는 그렇게 나에게 기쁨을 선물해준 아이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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