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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수 Mar 06. 2024

태극기의 불편한 진실 2


  인터넷에서 보니 중국의 사이트에 그려진 태극기가 엉터리라고 흥분하는 내용이 있었다. 우리의 태극기를 엉망으로 그려서 태극기의 존엄을 뭉갰다는 주장이다. 그분은 현직 교수로서 중국과 일본으로부터 우리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서 열정을 다하는 학자로 이름이 높다. 그런데 나라의 상징 태극기는 그 도안이 매우 까다로워 우리조차도 이를 제대로 그릴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 가까운 일본 국기와 비교해 보면 어지러울 정도로 복잡하고 난해하다. 한 나라의 상징물이 복잡하고 난해해서 좋을지 모르겠지만 중국 장사꾼들한테 그 복잡다단한 국기를 정확하게 그리라고 요구하기가 좀 조심스럽기는 하다. 그런데 그 바람에 중국의 상도덕(商道德)보다 더 큰 문제가 드러나지 않을까 걱정스러워 서둘러 이 글을 올린다.


 태극기는 원래 중국 음양사상인 태극도(太極圖)와 주역의 팔괘(八卦)를 융합해서 우리가 도안해낸 것이다. 이는  중국의 문화의 산물이어서 정작 우리의 상징적 요소는 찾아볼 수 없다. 한 나라의 국기에는 그 나라를 대표할 수 상징물이 있어야 한다면 태극기는 국기로서 결격사유에 해당한다는 생각이다. 설령 태극도를 받아들여 토착화했다 해도 우리나라를 대표할 수는 없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태극기는 중국문화의 차용(借用)임을 부정할 수 없다. 순국선열과 애국지사들에게 죄송스럽지만 태극기를 볼 때마다 끓어오르는 애국심보다는 목에 가시가 걸린 듯한 불편함을 느낄 때가 많다. 언젠가는 말 많은 중국인들이 태극기에 시비를 걸어올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마저 든다. 이런 형편에 태극기를 엉터리로 그려 팔아먹는 짓에 시비를 거는 것은 괜히 '긁어 부스럼을 내는 짓'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 크다. 철없는 누리꾼이나 언론들이 맞장구를 치고 나선다면 자칫 국제적인 논란거리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만약 저들이 태극, 팔괘의 지적소유권을 들고 나온다면 그것만으로도 태극기는 심각한 손상을 입게 될 것이다. 사태가 어려워지기 전에 태극기에 대한 시비를 그쳤으면 좋겠다. 이런 이야기를 혹시라도 애국심이 부족해서라거나 좌경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걸핏하면 광화문에서 태극기를 흔들어대는 사람들만 애국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동시에 韓服의 근원이 漢服에서 왔다는 저들의 주장도 흥분할 일이 아니다. 더러는 韓服과 漢服의 우리 발음이 같아서 벌어지는 해프닝일지도 모르겠다. 신라 때부터 중국의 제도와 복식(服飾)을 적극 수용했던 것이 사실이고, 그 와중에서 중국의 당복(唐服)이 우리 한복에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이 없지 않다. 실제로 우리의 궁중복식은 중국의 당복을 많이 닮았고, 그것이 정착하면서 오늘날의 한복으로 발전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면 저들의 주장에 분개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실제로 기사의 사진을 보니 韓服이 아니라 漢服이었다. 자기들의 복식을 漢服이라고 주장하는 것까지 문제 삼는다면 생트집에 해당한다. 누리꾼이나 언론매체마저 나서 양국 간의 관계를 악화시키는 것은 현명한 처사가 아니다.  


  중국인들의 중화사상은 그들 특유의 자존심이다. 유대인의 선민의식(選民意識)도 이와 유사하다. 우리도 단군사상을 긍지로 삼는다면 저들의 중화사상과 시온이즘을 구태여 비판하고 나설 필요가 없다. 다만 저들의 중화사상으로 주변의 다른 나라에까지 자신들의 우월의식을 과시하는 만행을 묵과해서는 안 된다. 중국인들의 문화침탈 행위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특히 저들의 동북공정에 의한 역사 왜곡은 우리의 역사를 약탈하기 위한 문화침략이 분명하다.  


 무릇 문화란 상위문화에서 하위문화로 유입되는 것이 역사의 당연한 이치이다. 중국문화가 우리 문화에 선진이었던 사실을 부정할 수 없고 보면 우리의 역사와 문화에서 그들의 영향의 개연성마저 애써 부정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저들의 주장에 쉽게 흥분하기보다는 일정 부분 인정하는 자세가 좋을 것 같다. 설령 저들의 억지가 분명하더라도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하여 반목할 필요는 없다. 네티즌 중에는 철부지 아이들도 많다. 일본이 우리 문화전파를 용인하듯이 우리도 저들의 주장에 대해서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개방적인 관점에서 대처하는 것이 보다 성숙된 자세일 것이다. 매사에 저들과 갈등하고 부딪친다면 저들과 다를 바 없는 수준이 될 것이다. 냉철한 이성으로 분별하는 것이 저들을 이기는 방식이다.  

 

 우리문화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은 우리의 정체성을 지켜내는 당연한 의지이다. 그러나 누구도 고유한 문화와 역사를 고집할 수 없다. 인류역사는 부단히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발전해왔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역사문화침탈과 호혜적인 문화교류를 구분할 수 있는 지혜가 아쉽다. 동북공정과 같은 역사침탈을 용납해서는 안 되지만 한복과 같은 문화교류마저 극구 부인할 필요는 없다. 중국의 한복을 수용하여 한층 아름다운 우리의 한복으로 발전시켰다면 그것으로 충분히 자랑스러운 일이다. 그것을 인류문화의 발전과정이라고 인식하는 것이 더 성숙된 역사의식과 아량이 아닐까 싶다. 일본의 모방을 비웃을 게 아니라 저들의 문화수용력과 열린 사고를 본받을 필요가 있다. 모방과 창조는 전혀 다른 것이 아니라 서로 內外 간의 관계이다. 태극기의 청홍양극(靑紅兩極)의 원리처럼-   그보다는 수구와 보수, 진보와 일탈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 지금 우리의 비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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