聽箏 아쟁 타는 뜻은
李端 732-792
鳴箏金粟柱 가야금 줄을 골라
素手玉房前◎ 고운 손 뻗어 자리 잡고서는
欲得周郞顧 내 마음 아실 이 없어
時時誤拂絃 ◎ 때로는 어깃장을 놓는다.
箏은 아쟁, 가야금, 거문고 같은 현악기입니다. 聽은 아쟁 연주를 듣다. 즉 이 시는 한 편의 아쟁연주 감상기(感想記)입니다.
5언시는 기본적으로 2자-3자의 통사구조의 단문(單文)으로 되어있습니다. 7언시가 복문(複文)을 기본으로 하는 것과는 다른 구조입니다. 대개 前2자는 종속부, 後3자는 주부에 속합니다. 예를 들면 素手는 종속부로서 ‘하얀 손’으로 수식어구를 이루고 있고, 玉房前은 주부로서 ‘자리 잡고서’라는 서술절입니다. 나머지도 대개 같은 통사구조인데 이것이 5言 한시의 기본구조입니다. 물론 다른 언어로 번역할 때에는 통사구조에 다소의 차이가 있을 수 있겠지만 대체로 이 원리를 적용하면 좋을 것입니다.
鳴箏金粟柱
鳴箏 아쟁을 울리다, 줄을 고르다. 연주하기 전에 줄을 고르는 예비동작. 金粟柱 아쟁의 줄을 떠받치는 기둥. 이를 직역하여 옮기면 자연스럽지 못하므로 우리에 맞게 '가야금'이라고 옮겼습니다. 1구는 연주하기 전 줄을 튕겨 소리를 가늠하는 장면입니다.
素手玉房前
素手 연주자의 깨끗한 손. 고운, 예쁜 손. 玉房 깔개, 방석. 前 앞으로 당기다. ‘자리 잡고서’라고 옮겼습니다. 악기를 끌어당겨 자리를 잡고서 본격적으로 연주할 준비를 마친 장면입니다. 그러나 다음 내용을 보면 순탄한 연주가 되지 않기 때문에 '자리 잡았지만'으로 옮겨도 또 하나의 번역이 될 것입니다. 한시는 보통 2단구조로 되어있으므로 여기에서 종결어미로 번역하는 것이 통례이지만 다음 행동과 인과관계가 깊으므로 연결어미로 옮기는 것이 좋아 보입니다.
欲得周郞顧
欲得 얻으려 하다. 찾다. 나를 알아줄 사람을 찾다. 伯牙(백아)가 연주하면 그 뜻을 알아주는 사람은 鍾子期(종자기)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나를 알아주는 사람을 知音이라고 합니다. 주랑과 같은 지음을 얻기가 어렵다는 말입니다. 이를 ‘아실 이 없어’로 옮겼습니다. 나를 알아 줄 사람을 찾는 것이 이 여인이 연주를 하는 목적입니다. 周郞은 삼국지에 나오는 吳의 장수 주유. 촉의 제갈공명과 동맹을 맺고 적벽대전에서 조조의 대군을 격파합니다. 주유는 전략은 물론 음악에도 조예가 깊어 음이 조금만 틀려도 바로 잡아냈다고 합니다. 그래서 周郞一顧(주랑일고)라는 성어가 생겼습니다. 당대의 여자들은 주유가 한 번만 돌아보아도 영광으로 알았다고 합니다. 顧 돌아보다, 곧 나를 알아보다. 이 시의 화자를 사랑을 찾아도는 여인이라고만 생각하면 지나치게 순진합니다. 여기에는 나를 알아주는 유력인사들을 찾아 출세영달을 노리는 시인의 간절한 소망이 뒤에 숨어있습니다.
時時誤拂絃
時時 때때로, 자주, 여기에서는 ‘때로는’이라고 옮겼습니다. 誤 틀리다. 拂絃 줄을 타다, 연주를 하다. 결국 틀린 음을 내다. 틀린 음을 냄으로 해서 내가 바라는 사람의 관심을 끌어내려는 의도입니다. 애들이 부모님, 선생님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 일부러 투정을 부리는 행동입니다. 그 의도를 보아 ‘어깃장’이라고 옮겼습니다. 자신을 알아주는 남자를 찾아 일부러 틀린 연주를 감행하는 여인의 의뭉스러운 심경을 묘사한 시입니다. 아무리 연주를 잘해도 내 소리를 알아주는 사람이 없다면 일부러 틀린 음을 내어 관심을 끌어낼 법한 일입니다.
시의 의도성을 더 확장시키면 자신의 재능을 세상이 알아주기를 바라는 시인의 마음을 쟁을 타는 여인의 심정으로 빗대어 표현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자신은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지만 세상이 알아주지 않는다면 짜증이 날 만한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