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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수 Mar 28. 2024

한시를 우리시로 읽으세요 71

한강을 건너며

 渡漢江 

              李頻  818-876     


嶺영外외音음書저絶절          머나먼 고향-  소식마저 끊겼는데

經경冬동復부歷력春춘◎       겨울이 지나서 다시 봄이 되었네.

近근鄕향情정更경怯겁          고향이 가까울수록 설렘은 걱정이 되어

不불敢감問문來래人인◎       오는 이 있어도 고향소식 묻지 못하네.     


嶺外音書絶

嶺外 고개 넘어. 고개는 大庾嶺(대유령), 대개 중국의 광동(廣東)지방을 말합니다. 漢江은 호북(湖北)에 있으므로 광동에서 아주 먼 거리입니다. 우리의 아리랑 고개보다 더 먼 고개를 ‘고개 넘어’ 정도로 옮긴다면 그 거리를 충분히 옮길 수 없을 것입니다. 그만큼 고향이 그리울 것이라는 상상이 필요합니다. 중국은 땅덩어리가 컸으므로 향수를 노래한 나그네의 思鄕詩(사향시)가 많습니다. 중국 한시의 번역에서 우리에게 낯선 중국의 지명을 그대로 옮기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우리로서는 외국의 지명이 가지고 있는 정서를 실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嶺이 대유령이건, 漢江이 우리 한강이 아니건 우리한테는 별 상관이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머나먼 고향’이라고 옮겼습니다. 音書 소식과 편지. 絶 끊기다. 切과 같음. 향수의 깊이를 말하고 있습니다.      


經冬復歷春

經冬 겨울이 지나다. 復歷春 다시 봄이 찾아오다. ‘찾다’일 때는 '복'이요, ‘다시’라는 부사일 때는 '부'라고 읽습니다. 타향에서 또 해를 넘기다. 그러나 春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귀향길'에 나섰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원작에는 그러한 글자가 없으므로 독자가 마음에 담아둘 수밖에 없습니다. 몇 해를 타향살이 했는지 알 수 없으니 고달픈 나그네 신세임을 전달할 수 있어야 합니다.       


近鄕情更怯

近鄕 고향 가까이 오다. 고향을 찾아가는 길의 과정설명 없이 압축시켜 표현하고 있습니다. 情 고향을 그리던 향수, ‘설렘’이라고 옮겼습니다. 更 다시. 고칠 때에는 ‘갱’으로 읽고, 다시일 때는 ‘경’으로 읽습니다. 怯 겁, 걱정, 근심, 두려움. 更을 따로 옮기기보다는 ‘고향이 가까울수록’으로 그 의미를 반영시켰습니다. 타향에서 귀향할 때는 그리움에 하루라도 빨리 가고 싶었지만 정작 한강을 건너 고향이 가까우니 혹시 집안에 안 좋은 일이라도 있을까 해서 기대에 부풀었던 마음이 오히려 걱정이 된다는 말입니다. 그리운 마음만큼 걱정도 더 클 것입니다.       


不敢問來人

不敢 감히 하지 못하다. 問來人 고향에서 오는 사람에게 묻다. '고향소식'이란 말은 원시에 없지만 꼭 있어야 할 말이므로 삽입시켰습니다. 고향에서 오는 사람에게 고향소식을 묻지 못하는 절실한 향수를 평이한 시어로 담박하게 표현한 솜씨가 돋보이는 시입니다. 이 시는 宋之問의 작품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만 우리에게는 누구든 크게 중요한 일이 아닐 것입니다. 

 漢江을 건넌다 하니 반가워할지 모르겠지만 여기의 한강은 우리가 아니라 중국에 있습니다. 금강도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지명이나 단어에는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중국과 같은 이름이 너무 많습니다. 신라 시대부터 우리의 지명이나 단어를 중국식으로 바꾸기 시작했는데 그러다 보니 이렇게 되었습니다. 기록은 해야 하고, 우리 고유문자는 없으니 어쩔 수 없이 중국식 지명이나 이름을 따르게 되었을 것입니다. 어쩔 수 없는 문화현상이지만 이런 장면에서 저들의 문화우월주의를 부정하기가 궁색해집니다. 지난날은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앞으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제는 미국이나 서구문화의 언어가 걱정이 됩니다. 훌륭한 문자와 언어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지금 우리가 겪는 수치감을 후손에게 물려준다면 조상보다 더 부끄러운 일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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