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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수 Apr 25. 2024

한시를 우리시로 읽으세요 73


山中送別     산중송별      

                    王維 699-761


山산中중相상送송罷파        산중에서 그대를 보내고

日일暮모掩엄柴시扉비◎     날 저물어 삽작문 닫았네.

春춘草초明명年년綠록        내년 봄이 다시 오면 

王왕孫손歸귀不불歸귀 ◎    그대 다시 오시겠지요?.     


  한시의 구성은 보통 前景後情(전경후정)이라 해서 전반부에서는 배경을 설정하고, 후반부에서는 감상, 주제를 배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는 전체가 사건 진행 위주로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사건의 진술도 아주 빠르고, 간략하고, 함축적이고, 평이한 시어를 구사하고 있습니다. 왕유의 시는 대개 이런 방식입니다. 그런 가운데에서 배경과 주제가 어우러져 이별의 아쉬움을 드러나지 않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번역에 따라서 숨어있는 주제 전달이 달라질 것입니다. 중국어에는 조사와 어미가 없지만 우리는 조사와 어미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원작에는 없는 조사, 어미를 우리말로 옮겨낸다는 것은 매우 어렵고, 섬세한 작업입니다. 조사와 어미에 의하여 詩意와 정서가 전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이러한 점에 대해서 같이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王維는 杜甫, 李白과 더불어 평가하는 대시인입니다. 특히 그는 詩書畵에 능하여 그의 시에서는 詩中有畵 畵中有詩(시에 그림이 있고, 그림 속에는 시가 있다)라는 절찬을 받았습니다. 그의 시를 읽으면 한 폭의 그림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이유입니다. 거기에 불교에 심취하여 摩詰(마힐)이라 號하였고, 그의 시에서는 늘 관조적이고 탈속적인 분위기가 가득합니다.       


山中相送罷

山中 산 속. 시인이 사는 깊은 산. 세상과 멀리 떨어진 산중에서의 이별이기 때문에 더 아쉬웠을 것입니다. 相送罷 서로 헤어지다. 상대방이 나타나있지 않지만 원작에서 생략된 ‘그대를’을 회복시켜 놓았습니다. 罷는 송별을 마치다, 끝내다. 산중에서 헤어진다는 말은 산 속의 오롯한 전원한정을 나눌 수 있는 사이였음을 말합니다.       


日暮掩柴扉

日暮 날이 저물다. 날이 저물어서야 문을 닫았다고 한 것은 이별의 아쉬움이 컸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동시에 다시 찾아올 사람도 없다는 탈속의 산중생활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掩 닫다. 柴扉. 풀로 엮어만든 사립문, 삽작문, 싸리문. 구태여 열고 닫을 필요도 없는 삽작문이지만 知己를 보냈으니 이제는 다시 열 일도 없다는 의중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위처럼 번역해 놓고 보니 이러한 시인의 의도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원시에도 없는 이런 사정을 억지로 집어넣는다면 원시에 대한 지나친 간섭일 것입니다. 극도로 압축된 한시의 번역시가 갖는 어쩔 수 없는 한계가 아닌가 합니다.      


春草明年綠

春草 봄 풀. 明年綠 내년 봄풀이 푸르다. 원작에서 운율을 맞추기 위해서 춘초와 명년을 바꾸어 놓았으니 우리말로 옮길 때에는 다시 복원하여 ‘내년 풀이 다시 푸르면’이 되겠지만 이를 다시 ‘봄이 다시 오면’으로 옮기는 것이 우리시다울 것 같습니다.       


王孫歸不歸

王孫 상대방을 높이는 말. 왕족이 아닙니다. 중국에서는 가까운 사람, 귀한 사람도 왕손이라 고 했습니다. 중국 시인 중에는 ‘駱賓王’이라는 이름도 있으니 왕의 용도가 우리와 달랐던 것입니다. 윤 대통령은 선거운동 중에 손바닥에 王자를 그리고서 왕이 되었으니 옛날 같았으면  역심을 품었다고 해서 3대를 멸족당할 일이었을 것입니다. 歸不歸 귀자를 반복시켜 의문문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돌아올까, 안 돌아올까?’ 직역하면 시가 아닐 것입니다. 다시 찾아온다는 확신이 없는 가운데에서 다시 오라는 간절한 소망이 전달되어야 할 것입니다. 만약 ‘다시 오시겠소?’ ‘다시 올지 모르겠네.’ 라고 옮기면 보내는 아쉬움이 덜할 것 같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서술어의 어미에 세심한 배려가 필요합니다. 물론 최고, 최선의 번역시는 장담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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