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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수 May 16. 2024

  한시를 우리시로 읽으세요 74

閨怨     아씨의 후회


     王昌齡                698-755


閨규中중少소婦부不불知지愁수◎         규중 아씨는 근심도 없어

春춘日일凝응粧장上상翠취樓루◎         봄날에 단장하고 누각에 올랐네.

忽홀見견陌백頭두楊양柳류色색            길가에 늘어진 수양버들 보고서는

悔회敎교夫부壻서覓멱封봉侯후◎         남편을 출세길 보낸 일 가슴 저리네.     


  이제 7언한시를 옮겨보고자 합니다. 흔히 5언시가 늘어서 7언시가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보다는 7언시가 숙련되어서 5언시가 되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우선 현전 문헌상으로 가장 오래된 <古詩19수>가 7언시라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7언시는 기본적으로 통사적으로 주어와 서술어가 2번 이루어지는 복문(複文), 중문(重文)이 기본입니다. '무엇은 무엇인데 무엇은 무엇이다'라는 통사구조입니다. 위 원시를 통사적으로 말해본다면 '규중의 아가씨가 근심을 모르고 살다가/  봄날에 화장하고 누각에 올랐네./  홀연히 길가에 버들잎을 보고서/  남편에게 벼슬길에 보낸 것을 후회하네./ ' 중국시를 번역한 것이라서 통사적으로 우리말과 일치할 수 없지만 주어 하나에 서술어 2씩 있거나 2개의 주술구조의 문장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번역문에 생략된 주어를 찾아내면 이를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는 앞서의 홑문 5언시보다는 복잡한 통사구조입니다. 중국인들은 홀수보다는 짝수를 선호하고, 漢文의 특징은 對偶(대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7언한시의 복문구조는 여기에서 비롯되었을 것입니다. 이런 근거로 7언시가 먼저 나왔을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긴 치마가 먼저 나오고 그것이 세련되어서 미니스커트가 나온 원리와 같을 것입니다. 소설의 경우 장편이 먼저 나오고 단편소설이 나중에 나온 것을 보아도 이해가 될 것입니다. 우리의 경우 만약에 평시조가 먼저 나오고, 이것이 확장되어서  사설시조가 나왔다고 한다면 이런 일반적인 원리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렇게 가르쳐왔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사고와 문화는 정리되지 않은 장형에서 세련된 단형으로 발전해왔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널리 공부하는 것은 말을 줄이기 위해서라고 했고(博學約言-박학약언), 말이 많은 사람은 말은 적게 하는 사람보다 말을 못하는 것입니다. 

  5언시의 통사구조는 통상 2자, 3자로 되어있어 '무엇은 무엇.' 혹은 '무엇하는 무엇'의 홑문구조로 번역됩니다. 7언시는 보통 2-2-3의 통사구조로 되어있어 '무엇은 무엇인데 무엇이다'이 복문구조로 번역합니다. 글자만 많은 게 아니라 통사구조가 복잡합니다. 역시 복잡구조가 단순구조의 美學으로 진화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시는 7언 절구라고 합니다. 絶句란 끊어냈다는 뜻으로 律詩(율시)나 연장시(聯章詩)에서 끊어냈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율시, 연장시가 먼저 나오고, 나중에 절구가 나왔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한시의 원형인 <詩經>은 여러 개의 시가 모여 연장시로 되어있습니다. 그러므로 단형인 절구는 장형에서 단형으로 세련된 형태라고 할 것입니다. 우리로 말하면 <청산별곡> 같은 고려의 연장시나 長時가 가 조선의 평시조로 발전했다고 해야 더 타당성이 있으니 역시 앞과 같은 윈리입니다.  

  7언한시는 압운자가 3개 있습니다. 압운자(押韻字)란 한시의 필수적인 형식으로 그 모음이 같아야 합니다. 愁, 樓, 侯는 '우'라는 모음을 맞춘 것이어서 압운자라고 합니다. 우리말은 자음중심이지만 중국어는 모음중심이라는 점도 다릅니다. 

  閨怨이란 깊숙한 내실에 거처하는 아녀자, 부녀자의 원한입니다. 부유층 여자이기에 바깥출입을 삼가고 집안에서 부녀자의 도리를 지키는 것을 덕목으로 알고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봄을 맞아 봄빛에 이끌려 나왔다가 물씬한 봄 정취에 취해 홀연 春情이 일어났고, 그제서야 남편을 멀리 떠나보낸 자신의 처사를 후회하고 있는 것입니다.  


閨中少婦不知愁  

閨中 부녀자들이 거처하는 깊숙한 방, 공간. 少婦 어린 색시, 새색시. 不知愁 근심을 모르다. 나이가 어리고, 어린 새색시가 근심이 있을 리 없습니다. 남편을 멀리 떠나보냈지만 당시에 그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春日凝粧上翠樓  

春日 봄날. 凝粧 화장, 분장을 하다. 上  동사로 오르다. 翠樓 채색된 누각, 건물.

누각이 있는 것으로 보아 대가 부잣집 아녀자임을 알 수 있습니다. 지난 겨울엔 집안에 있을 수밖에 없었지만 봄날이 오니 봄맞이하러 바람을 쏘이러 나왔습니다.     


忽見陌頭楊柳色  

忽見 갑자기 보다, 보이다. 陌頭 두렁길, 길가. 楊柳 원래 양은 묏버들, 류는 수양버들이지만 여기에서는 수양버들이 더 어울립니다. 色 버들잎이 더푸르러졌다는 뜻입니다. 푸른 수양버들잎은 여인의 춘정을 깨우는 사랑의 묘약입니다. 봄바람에 하늘대는 버들잎을 보니 갑자기 멀리 떠나보낸 남편 생각이 간절해지는 것입니다.        


悔敎夫壻覓封侯  남편 출세길 보낸 것 후회하네.

悔 뉘우치다, 후회하다. 敎 여기에서는 시키다. 夫壻 남편. 覓 찾다. 구하다. 封侯 벼슬에 봉하다. 벼슬자리를 찾아나서다. 아마도 과거시험 길에 올랐거나 공을 세우려 먼 길을 떠났을 것입니다. 새색시가 과거준비하는 남편과 별거해야 되는 것은 옛날에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더구나 과거시험 보는 長安은 몇 달, 몇 년이 걸릴지 모르는 머나먼 길입니다. 지난 겨울에는 규중에서 외로운 줄도 모르고 지냈지만 봄나들이를 나와 푸르른 수양버들을 보니 남편이 그리는 春心이 발동한 것입니다. 觸景生情(촉경생정)이란 말이 이런 경우일 것입니다. 원작에는 후회한다고 했지만 새색시의 심경은 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갑자기 밀려오는 외로움에 가슴이 저려왔을 것입니다. 

 이 시는 부녀자의 질박한 연정의 심경을 진솔하게 드러낸 수작으로 애송되던 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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