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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수 Apr 11. 2024

한시를 우리시로 읽으세요 74

   春怨      金昌緖     

                 


打타起기黃황鶯앵兒아  저놈의 꾀꼬리 쫓아내

莫막敎교枝지上상啼제  나무에서 울게 하지 마라.

啼제時시驚경妾첩夢몽  그 소리에 내 잠이 깨면

不불得득到도遼요西서  님 계신 요서에 가지 못하니-     


打起黃鶯兒

打起 때려서 일으키다, 날게 하다. 黃鶯 꾀꼬리.  兒 새끼. 참새건, 꾀꼬리건 나무에 앉아서 시끄럽게 울어대 낮잠을 깨우는 놈은 얄미운 놈입니다. 그렇다고 '새끼'까지 옮기면 시어가 험악해지므로 생략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打起는 ‘쫓아내다’ 정도로 옮겼습니다. 하는 짓이 얄미워서 '저놈의 꾀꼬리'라고 옮겼습니다.       

  그런데 꾀꼬리를 좇아내는 일을 누가 하느냐가 관심거리입니다. 그림을 보면 마치 화자가 새를 쫓아내는 것 같이 보입니다. 그렇게 해석한다면 대개 다음과 같이 번역될 것입니다.  

  요놈의 꾀꼬리 쫓아내서 

  나무에서 울게하지 못하게 하리라.

  네 소리에 내 잠이 깨어서

  님 계신 요서에 가지 못하겠구나.

이렇게 되면 여인의 행동이 적극적이기는 하나 좀 천박한 여인이 되지 않을까합니다. 이보다는 애들 시켜서 꾀꼬리를 쫓아내게 해야 화자의 품격도 높아지고, 주제를 더 자연스럽게 드러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화자가 누구냐에 따라 시의 맛이 달라지니 중요한 일입니다.    


莫敎枝上啼

莫 하지말라. 금지의 뜻. 敎는 시키다. 枝上 나뭇가지 위에서. 啼 새가 울다. 지저귀다. 나무에서 시끄럽게 울게 하지 마라. 莫敎-하지말라라고 하였으니 명령문으로 옮겨야 할 것입니다. 詩중 화자는 사랑하는 님을 멀리 떠나보낸 아낙네가 방에서 낮잠을 자야하므로 새 쫓는 아이들이 따로 있어야 자연스러울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새 쫓는 일은 만만한  아이들이 좋을 것입니다. 옛사람들은 하인이나 아이를 시키기 좋아했지만 요즈음에 함부로 그랬다가는 아동학대죄로 몰릴지도 모릅니다.      


啼時驚妾夢

啼時 새가 울 때에. 驚 놀라다. 놀라게 하다. 서술어로 삼아야 합니다. 妾은 원래 죄인, 천한 여인을 뜻하는 말이었지만 여기에서는 여인의 겸칭입니다. 남편에 대하여 자신을 낮추는 말이니 상대방은 남편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앞 구에서는 청자가 아이들이었으므로 일치하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지만 시에서는 그럴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만약 妾을 직역하면 이러한 부자연스러움이 더 드러날 것이므로 ‘내’정도로 옮기는 것이 좋을 성싶습니다. 夢 꿈은 남편을 만날 수 있는 행복의 공간입니다. 지금 이 여인은 달콤한 낮잠을 즐기고 있습니다. 꾀꼬리가 날아다니는 때는 낮이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간밤에는 고독에 잠못 이루다가 낮에야 설핏 잠이 들었는지도 모릅니다. 잠을 청하여 꿈에서나마 그리운 임을 만나자는데 새가 시끄럽게 하여 잠을 깬다면 꾀꼬리가 가증스런 훼방꾼이겠지요. 그래서 제목이 春怨이 된 것입니다. 독수공방의 여인의 한을 꾀꼬리에 투영시켜 분풀이한다는 설정이 재미있습니다. 그래봐야 낮잠이니 그야말로 허망한 백일몽(白日夢)입니다. 그래서 이 시에서는 제목처럼 심각한 원한은 느낄 수 없습니다.        


不得到遼西

不得 할 수가 없다. 到 다다르다. 꿈길이 닿는 곳. 遼西 요하 서편의 하북성. 한시는 일반적으로 결구에 주제가 드러나기 마련이지만 이 시에서는 특히 예측하기 어려운 경구(警句)에 해당합니다. 새 쫓는 이유가 낮잠을 설치게 하는 정도가 아니라 사랑하는 낭군과의 만남을 깨트리는 심술인 줄은 예상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원작에는 '遼西'밖에 없지만 그것보다는 사랑하는 님을 만나는 일이 더 중요한 일입니다. 그래서 원시에는 생략된 '임 계신'을 끼워넣었습니다. 이야말로 이 여인이 새를 쫓아내는 이유인 것입니다. 이 시는 잘 다듬어진 시라기보다는 순박하고 풋풋한 연인의 정서가 돋보이는 민요조의 악부시(樂府詩)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작자는 생몰연대가 분명치 않지만 대개 만당(晩唐)시대라고 합니다. 요서는 만리장성이 시작되는 곳인 만큼 변방시(邊方詩)의 주요 무대이기도 합니다. 남편이 변방에 가 있으니 꿈길에서나마 만나고자 하는 간절한 소망을 재치있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중국은 영토에 대한 욕심이 많아 주변국과 국경을 다퉈왔으므로 백성들은 끊임없이 전쟁과 부역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이러한 중국의 역사는 지금도 지속되고 있으니 국민은 국민대로 끊임없이 고달픈 삶을 살아야 했고, 이웃 나라로서는 가까이 하기 싫은 이웃인 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제목처럼 원한보다는 재치있고, 간결하고, 평이한 시어로 여인의 사랑을 효과적으로 구현시킨 솜씨가 돋보이는 시입니다. 

  중국에도 김씨가 있는데 周나라 때부터 시작되었다고도 합니다. 만주에도 김씨가 있었다고 하니 우리 김씨와는 무슨 관계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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