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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수 May 30. 2024

한시를 우리시로 읽으세요 75

宮詞    궁녀의 노래

   宮詞    궁녀의 노래

                                 朱慶餘  미상     

寂적寂적花화時시閉폐院원門문◎        꽃은 피었으나 문은 굳게 닫혀 더 서글픈데,

美미人인相상竝병立입瓊경軒헌◎        궁녀들 회랑에 마주앉아 봄나들이 하네. 

含함情정欲욕說설宮궁中중事사           서러운 궁중사 털어놓고 싶지만 

鸚앵鵡무前전頭두不불堪감言언◎        앵무새 앞이라서 입 다물고 있을 수밖에-     


  宮詞란 宮中詞로 궁녀들의 한을 읊은 한시를 일컫는 말입니다. 궁녀의 유일한 소망은 황제의 총애를 입는 것이지만 극소수 궁녀만이 그럴 수 있었으므로 그녀들은 한 많은 일생을 보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늙어지면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되어야 했으니 꽃피는 봄이 더 조급해질 수 있습니다. 설령 총애를 입었더라도 수천의 궁녀 중에서 총애를 유지하기는 더 어려운 일입니다. 이러한 주제를 담은 시가 내용적인 장르를 이루어 궁사라 했습니다. 그중에는 등용되지 못한 문인들이 자신의 실의를 궁녀의 처지로 비유한 시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로 말하면 정철의 <사미인곡>이 그런 경우였습니다. 그러나 궁녀들은 정철처럼 사랑의 고백을 대놓고 할 수도 없었습니다.       


寂寂花時閉院門  

寂寂 적막, 쓸쓸하다. 花時 꽃 피는 계절. 閉 닫히다. 院門 출입구. 꽃은 흐드러지게 피어 있으나 문은 굳게 닫혀 있으니 꽃도, 궁녀도 갇혀있는 신세입니다. 꽃이 피어 적적한 게 아니라 문이 굳게 닫혀있어 적막한 것입니다. 총애를 받지 못한 궁녀들에게 화려하게 피어있는 꽃은 오히려 더욱 서글프게 할 뿐입니다. 봄이 와서 꽃은 흐드러지게 피었지만 나에게는 아직도 차가운 겨울이기 때문입니다.      


美人相竝立瓊軒  

美人 궁녀이니 미인일 수밖에 없습니다. 相竝 서로 마주서서, 둘일 수도 있지만 더 많은 궁녀들이 재잘대는 장면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立瓊軒 화려하게 꾸며진 회랑에 둘러앉아서. 여인들이 모이면 할 말도 많고, 사연도 많은 법입니다. 더구나 갇혀사는 궁녀들은 더 그럴 것입니다.      


含情欲說宮中事   

含情 정을 품은, 그러나 왕의 총애를 받지 못한 궁녀들의 정이란 고달픈 궁내생활에 맺힌 한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를 ‘서러운’이라도 줄여 옮겼습니다. 欲說 말하고 싶지만. 하소연하고 싶지만. 宮中事 궁중의 고달픈 삶, 궁녀들의 소망은 임금이 총애를 입는 것이지만 대부분의 궁녀는 그 소망을 이룰 수 없으니 ‘서러운 궁중사’일 수밖에 없습니다.      


鸚鵡前頭不堪言  

鸚鵡 앵무새. 前頭 앞에서. 頭는 접사로 생략해야 합니다. 不堪言 감히 말하지 못한다. 앵무새는 사람의 말을 잘 흉내내므로 불평불만이 앵무새의 입을 통하여 그들의 불평이 탄로나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입니다. 감히 말을 하지 못한다를 달리 말하면 ‘입 다물고 있을 수밖에 없다’일 것입니다. 앵무새를 내세우기는 했지만 사실은 마주서 있는 동료 궁녀의 고자질이 더 무서웠겠지요. 앵무새는 들은 대로 흉내낼 뿐이지만 사람은 들은 말에 더 보태서 모함하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상대는 같은 남자를 두고 경쟁을 벌여야 하는 처지에 무슨 말을 마음놓고 할 수 있을까? 가슴에 품은 한마저도 마음대로 말할 수 없는 궁녀들의 원한을 희화적이면서도 날카롭게 표현했습니다. 이 시는 궁사 중에서도 절창으로 회자되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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