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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수 Feb 22. 2024

한시를 우리시로 읽으세요 69

  고향소식

雜詩 2

             王維  699-759     


君군自자故고鄕향來래◎        그대 고향에서 왔으니

應응知지故고鄕향事사◎        고향 소식을 알 것이오.

來래日일綺기窓창前전            올 때 안방 창 앞에

寒한梅매着착花화未미◎         매화꽃 피었던가요?     


  왕유의 잡시3편은 헤어져 있는 부부가 서로 그리워하는 심경을 문답형식으로 나타낸 시입니다. 민요적인 소박함과 구어적인 평이한 시어가 돋보입니다. 雜詩1은 아래에서 보듯이 아내가 집 떠난 남편에게 편지를 보내는 내용입니다. 여기에 소개되는 雜詩2는 고향에서 온 사람에게 고향소식을 묻는 내용입니다. 타향에서 사랑하는 아내의 소식을 그리워하는 심정을 매화꽃에 교묘하게 이입(移入)한 솜씨가 돋보입니다. 매화가 사랑하는 아내의 상징물이라고 생각하면 새삼 이 시의 뛰어나 솜씨를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나머지 雜詩3은 남편의 회신을 받은 아내가 다시 그에 대한 답입니다. 그러니까 이 시들은 문답의 형식으로 된 연작시(連作詩)입니다. 평이한 시어 속에서도 뛰어난 상징, 함축으로 절실한 남녀사랑을 표현해 낸 기교가 놀랍습니다. 올해는 기후이변으로 우리나라의 매화가 벌써 피었다기에 서둘러 이 시를 소개합니다.  

  

  이 시 앞에 있는 雜詩1은 이렇습니다.

    

    家住孟津河(가주맹진하)   우리 집은 맹진강이구요,

    門對孟津口(문대맹진구)    문 열면 바로 나루지요.

    常有江南船(상유강남선)    강남으로 가는 배 많으니

    寄書家中否(기서가중부)   편지 전해줄 수 있겠지요?


  이에 대답한 것이 위의 雜詩2입니다.


君自故鄕來  

君 그대. 당신. 고향에서 반가운 아내의 편지를 가지고 온 사람입니다. 自 -부터. 故鄕來 고향에서 오다. 다음 구와 연결시키기 위하여 ‘왔으니-’ 같이 인과의 어미로 옮겨야 합니다. '고향에서 왔으니 고향소식을 알 것'이라는 통사구조는 인과관계의 구조입니다. 인과관계로 옮김으로 해서 應을 생략하여 시의 압축미를 효과적으로 드러낼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應을 ‘마땅히’ ‘당연히’로 옮기려 든다면 시의 간결성을 해치는 군더더기가 될 것입니다. 원작의 글자에 얽매이는 것보다는 漢詩에는 없는 조사, 어미를 적절히 구사하여 옮기는 것이 더 중요한 관건입니다. 한시는 일반적으로 1,2구는 의미로 연결되어 종결되고, 3,4 구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크게 보면 전후 兩節 구조인 셈입니다. 이러한 구조를 밝히는 기능을 하는 것이 한시에는 없는 조사, 어미이니 한시 번역에서 매우 유의해야 할 일입니다.       


應知故鄕事  

應 틀림없이, 응당, 당연히. 그러나 이는 추측일 뿐이지 확신할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그리고 ‘왔으니’라는 어미로 그 뜻을 반영할 수 있으므로 응을 생략해서 옮기는 것이 번역의 묘미를 살릴 수 있을 것입니다. 知 알다. 故鄕事 고향 소식.       


來日綺窓前  

來日 오던 날. 내일은 明日이라고 합니다. 綺窓前 비단창 앞, 여기서 비단창이란 아내가 거처하는 규방이란 의미입니다. 그러나 비단보다는 내 집, 아내가 중요하기 때문에 ‘안방 창 앞’이라고 옮겼습니다. 안방에는 두고 온 아내가 있기 때문입니다.       


寒梅着花未  

寒梅 차가운 매화, 추운 겨울에 피는 매화꽃. 그러나 매화는 누가 말해도 추운 날씨에 피는 꽃이기 때문에 그냥 매화꽃이라고 옮겼습니다. 만약에 '차가운'을 고집한다면 아내에 대한 애정마저 식어버릴지도 모릅니다. 着花 꽃이 피다. 未는 의문사이기 때문에 의문문으로 옮겨야 합니다. '매화꽃이 피었던가요?' 시인은 고향 소식 중에서도 창 앞의 매화꽃 소식을 제일 궁금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매화 소식이 궁금했다는 것은 매화가 사군자의 하나로 스스로 군자임을 자부하려는 의도일 것입니다. 그 매화는 안방 창 앞에 피어있는 꽃이기에 아내의 그림자가 숨어있을 것입니다.      


  고향에서 아내의 소식을 가져온 잡시3은 다음과 같습니다.  


已見寒梅發(이견한매발)  매화꽃은 벌써 피었고요,

復聞啼鳥聲(부문제조성)  올해도 여전히 새소리 들리네요.

心心視春草(심심시춘초)  하염없이 봄풀 바라보노라니 

畏向階前生(외향옥계생)  어느새 계단까지 뻗어오릅디다.      


 당신이 궁금해하는 매화꽃은 벌써 피었고, 당신이 없어도 올해도 여전히 새소리가 들려옵니다만  당신이 없으니 더 서럽습니다. 하염없이 날로 푸르러지는 봄풀이나 바라보노라니 어느새 계단까지 뻗어올라 두렵기까지 합니다. 봄은 왔지만 당신이 없는 봄은 봄이 와도 봄이 아닌 春來不似春(춘래불사춘)이지요.   

  평이하고 간결한 가운데 향수를 품격있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시는 주제를 따로 언급하지 않으면서도 매화꽃으로 대유하여 시의 상징미와 절제미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제목이 雜詩라고 해서 가볍게 볼 필요는 없습니다. 일종의 겸손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심한 경우는 無題라는 제목도 있습니다. 필요 이상으로 긴 제목도 적지 않지만 일반적으로 한시에서는 제목에 크게 관심 두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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