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광곡
望月懷遠
張九齡 678-740
海해上상生생明명月월 수평선에서 명월이 떠오른다.
天쳔涯애共공此차時시 어디선가 당신도 보고 있겠지.
情정人인怨원遙요夜야 그대 멀리 외오둔 이 밤
竟경夕석起기相상思사 당신 생각에 잠 못 이루네.
滅멸燭촉憐련光광滿만 가득한 달빛에 젖어 촛불을 끄면
披피衣의覺각露로滋자 옷깃은 밤이슬에 젖어드는구려.
不불堪감盈영手수贈증 달빛 모아 당신에게 드릴 수 없으니
還환寢침夢몽佳가期기 잠자리에 돌아와 꿈이나 기다릴 밖에-
海上生明月
海上 바다 위. 그러나 이 시는 바다에서 쓰여진 것이 아니므로 그대로 직역할 수 없습니다. 이 때 시인은 낙양에서 밀려나 형주에 있었으므로 달이 뜬 곳은 호수나 장강일 것입니다. 그런데도 海上이라고 한 것은 다음 천애와 연결시키기 위하여 과장한 것입니다. 시인의 언어를 존중할 것인가, 사실을 중시할 것인가의 문제이겠지만 호수도 바다도 괜찮은 ‘수평선’으로 옮겼습니다. 그러면 바다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을 것입니다. 生 살다. 달이니까 돋다. 떠오르다. 月出. 明月 밝은 달.
天涯共此時
天涯 넓은 하늘. 넓은 세상. 멀리 떨어진 시인과 情人과의 거리. 共 같이 공유. 정인과 멀리 떨어져 있지만 저 달을 같이 보면서 애정을 공유하고 있을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此時 지금, 달이 떠오를 때. 아직 시의 청자가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당신’이라는 번역어를 끼워넣었습니다.
情人怨遙夜
情人 사랑하는 사람. 중국어로는 애인은 아내이고, 정인은 우리의 애인입니다. 형식적인 부부관계보다 더 깊은 애정관계인 것입니다. 이 시는 장구령이 정쟁에 밀려 형주로 좌천되었을 때 지어졌다고 합니다. 한시의 관행으로 보아 정인은 당시의 임금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그대’라고 옮겨 일반화 시켰습니다. 상대를 지칭하는 말도 그대와 당신을 사용해서 중복을 피하였습니다. 怨 원망하다. 遙 멀다. 夜 밤. 정인과 멀리 여의어 있는 처지를 원망하고 있습니다. 다음 구에 밤이 또 나오므로 여기에서는 夜를 생략해서 시어의 중복을 피했습니다. 물론 원망하는 것은 시인입니다.
竟夕起相思
竟夕 저녁이 되면, 날이 어두워지면. 달이 뜨면. 起 잠 못 이루고 일어나서. 그리움이 솟아나서. 相思 서로 그리워하다. 우리는 달이 뜨면 잠 못이루면서 그리워하고 있다. 그러나 당신이 군주라면 나의 짝사랑이 맞을 것입니다.
滅燭憐光滿
滅燭 촛불을 끄다. 촛불을 끈 이유는 그리움에 지쳐 잠을 청하기 위해서였을 것입니다. 憐 그리워, 서러워. 光 달빛. 滿 달빛이 가득히 비춘다. 情人은 멀리 있어 만날 수 없고, 달빛은 휘영청 밝으니 오히려 그 달빛이 서러울 것입니다.
披衣覺露滋
披衣 옷을 만지다, 覺 느끼다, 깨닫다. 露滋 이슬에 젖다. 옷에 이슬에 젖었다는 말은 달빛에 이끌려 방에서 나와 뜰을 거닐었고, 배회한 시간이 오래였다는 말입니다. 원작은 앞 구와 더불어 대우를 이루고 있지만 우리 시를 만들기 위해서 대구 번역을 포기했습니다.
不堪盈手贈
不堪 감내할 수가 없다. 盈手 두 손 가득히, 손을 들어. '손에 달빛 담아서'라는 표현은 지금 생각해도 뛰어난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贈 보내다, 바치다. 달빛을 그대에게 보내주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정인에 대한 애정을 말합니다.
還寢夢佳期
還寢 밖에서 잠자리로 돌아오다. 夢 꿈. 佳期 아름다운 꿈을 기대하다. 멀리 여읜 님을 만날 수도 없고, 애정을 표현할 길이 없으니 잠자리에 누워 꿈 속에서나마 정인을 만나고자 하는 애절한 사랑을 표현했습니다. 우리 시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충신의 戀君歌(연군가)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