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석은 노인은 현명하다.
우愚는 어리석은 원숭이에서 유래한 글자라고 합니다. 왜 그런 풀이를 했는지 설명하기 어렵지만 따는 일리가 있기도 하다는 생각입니다. 도가道家에서는 우愚는 대현大賢과 같다고 해서 오히려 지혜보다 높은 경지로 말하기도 합니다. 도가 특유의 역설적인 논리이지만 노인의 입장에서 보면 충분히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옛날과 달리 젊은이와 다투어보아야 체력은 물론 지혜에 있어서도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설사 노인이 젊은이를 이긴다 해도 결국 사회에 바람직하지 못한 일이 많으니 애써 다투려 하지 말고, 어리석은 듯 물러나는 것이 오히려 현명한 처사입니다. 얕은 재주가 있어봐야 고달프고, 지혜가 있어봐야 근심거리만 늘 뿐이라는 말도 노인에게 들어맞는 말입니다. 나이가 들어 젊은이와 경쟁을 벌이는 것은 벅차기도 하거니와 늙은이가 이긴다면 사회의 정체停滯를 가져오기 십상입니다. 병법兵法에서도 빼앗으려면 먼저 주라고 했습니다. 그런 살벌한 병법이 아니더라도 얼마 남지 않은 인생을 피곤하게 살 필요는 없으니 매사에 다투지 말고 양보할 일입니다. 양보를 하면 손해라고 생각하기 쉬우나 길게 보면 자신은 편안하고, 남에게는 기쁨을 주니 그것은 어리석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현명한 것입니다.
도가道家에서는 지혜를 화禍의 근원이라고 합니다. 어설프게 아는 것은 모르는 것만 못하다는 게 ‘선 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속담입니다. 숫제 ‘모르는 게 약’ ‘아는 것이 병’이라는 말도 있지요. 지知보다는 무지無知가 낫다는 역설논리이지만 노인에게는 썩 어울리는 말입니다. 옛날부터 바보, 미치광이 행세로 화를 피했다는 현인賢人의 이야기가 많습니다. 똑똑한 사람은 경계와 질투를 받아 위험하지만 어리숙하게 보이면 경계도 없고, 시기도 없어 안전합니다. 그러니 설령 스스로 지혜를 자신하더라도 그것을 내세울 일이 아니지요. 더구나 잔재주를 지혜로 착각하는 노인도 있습니다.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늘어나는 것이 과시욕인 것 같습니다. 그것은 일선에서 밀려난 상실감에서 오는 일종의 보상심리인데 결과적으로 얻는 것보다는 노인네 주책이 되기 십상입니다. 籌策(주책)이야 본래 좋은 아이디어라는 말이지만 과하면 주책바가지를 면키 어렵죠. 똑똑 현명한 척 잔재주를 부리기보다는 겸손한 노인으로 존중받는 것이 愚우의 미덕이며, 최소한 그 자리를 지켜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키고, 구렁이가 담을 넘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전략적 관점에서 자신의 본색과 정체를 쉽게 드러내는 것은 하책입니다. 강한 군대는 약하게 보이게 하고, 약한 군대는 강하게 보이게 하는 것이 위장전략의 기본입니다. 사람도 어리석은 척하거나 똑똑한 척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러나 기운이 쇠퇴한 노인이 강한 것처럼 위장하거나 똑똑한 척한다고 해서 곧이들을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그러니 노인은 모름지기 실제보다 더 힘이 없고, 어리석은 척하는 것이 상책입니다. 실제로 어리석다면 위장도 아니지만 많이 감출수록 위장의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못 견디는 듯 엄살떠는 것이 힘자랑하다가 칼 맞아 죽는 싸움소보다는 현명한 처신입니다. 똑똑해서 바쁜 노인도 좋겠지만 결국은 자신을 얽어매는 짓입니다. 똑똑함을 유지하기 위한 대가와 부담이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잘난 척, 아는 척, 있는 척, 잘하는 척, 예쁜 척, 젊은 척하는 데 드는 대가를 ‘척 값’이라고 합니다. 겉치레 척 값을 치르는 데 노년을 다 보내서야 정말 어리석은 짓일 것입니다. ‘어리석은 척’이 아니라 정말 미련한 것은 치癡라 해서 여기에서 같이 말할 대상이 아닙니다.
교묘한 재주가 있으면 결국 재주 없는 자의 노예가 되어 항상 바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 노자老子의 생각입니다. 옛날의 장인匠人은 뛰어난 손재주 때문에 대를 물려가며 평생 공방工房에 갇혀 사는 신세를 벗어나지 못했으며, 벼슬아치는 알량한 권세에 취하여 통치자의 종을 벗어나지 못했으며, 힘센 장수는 투우처럼 힘자랑하다가 싸움터에서 죽기 일쑤였습니다. 지금도 엔지니어의 기술로 평생 기업주의 종살이에 바쁘고, 의사가 좋다 하나 하루 종일 돈 버는 기계를 면키 어려우며, 법관이 위엄이 있다 하나 평생 남의 잘못을 따지는 악역만 해야 하니 입에 풀칠만 할 수 있다면 재주 없이 마음 놓고 살고 싶습니다.
나이가 들면 세상 일을 꿰뚫는 지혜가 생기는 줄 모르지만 그렇지 못할 바에는 무관심, 무지無知가 상책입니다. 경계도, 경쟁도, 의지도, 욕심도 없다면 무슨 재미냐고 할지 몰라도 그것은 젊을 때의 사정이고, 노년에는 무언가 해야 한다는 의지나 강박관념보다는 방심放心, 편안하고, 한가한 마음이 제일 좋을 듯합니다. 맹자는 방심放心을 엄하게 꾸짖었지만 노년에 이르면 경계심을 늦추지 않는 방심防心과는 삶의 질이 전혀 다릅니다. 방심放心은 편안한 마음으로 여유작작하는 경지이지만 방심防心은 살벌한 경쟁의 연속일 수밖에 없습니다. 적어도 노년에는 ‘바보의 행복’ ‘무소유의 행복’의 경지가 그냥 허접한 역설이 아닙니다. 적절한 스트레스는 건강에도 좋다고 하지만 그런 배려 없어도 인생길에 어차피 스트레스는 피할 수 없게 되어 있으니 그럴 걱정까지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내 일도 그런데 남의 일에 대해서, 더구나 남의 약점이나 잘못을 구태여 알려고 하지 말 일입니다. 남의 비밀 약점을 알면 송신질이 나는 사람이 많은데 그것은 자신의 마음도 편치 않고, 범상히 넘기기도 어렵습니다. 게다가 상대방은 나를 경계하게 되고, 위험해질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아는 것이 병’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상대방의 약점이나 비밀을 밝혀내기에 급급한 사람이 많습니다. 남의 비밀을 알면 입을 닫기 어렵고, 입을 열면 화를 당하기 쉬운 것이 세상 이치입니다.
다툼에서 이기려고 하지 말 일입니다. 이겨봐야 얻는 것보다는 잃는 것이 더 많습니다. 늙어서의 투지와 승부욕은 승률도 낮거니와 자칫 화를 부르기 쉽습니다. 그래서 늙은 대장원숭이는 자신의 한계를 알면 경쟁자와 다투려 하지 않고, 스스로 물러난다고 합니다. 이기지 못할 바에는 점잖게 양보하는 것이 늙은이의 지혜입니다. 젊은 놈과 싸우다가 피투성이가 되어서 죽는 것보다는 물러나 목숨을 부지하는 것이 낫다는 원숭이의 계산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원숭이보다도 못한 짓을 해서야 되겠습니까? 이긴 들 얼마나 얻을 것이며, 얻은들 얼마나 누릴 수 있을지요? 늘그막에, 똑똑한 인자仁者는 적이 있어도, 어리석은 우자愚者에게는 적이 없는 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