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살면 죽음도 천천히 온다.
老는 노인의 백발과 수염이 드리워진 모습이라고 합니다. 그런 늙은이한테는 말 같은 Speed보다는 아무래도 소 같은 Slow의 이미지가 어울립니다. 時流시류에 맞춘다고 해서 노년들이 신세대의 Speed를 따라가려 한다면 짚신 신고 오토바이 쫓아가는 격이어서 탈이 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노년에는 천천히 움직이는 것이 제격입니다. 너무 바쁜 시대에 대하여 사회 일각에서 전개되는 ‘느림의 미학’ ‘Slow City’라는 구호가 있어 ‘Slow Silver’라는 이름도 있을 법합니다. 기력이 쇠퇴한 노인이 어찌 Speed로 세상에 맞설 것인가? 자신의 형편과 능력에 맞는 수단을 짜내는 것이 그나마 사회에 적응하고 여생을 부지하는 비결일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빨리빨리’사회에서 살고 있습니다. 현대는 스피드의 시대요, 우리 현대사는 그에 걸맞게 빨리빨리로 쾌속성장을 이루었고, 그래서 온통 빨리빨리 세상이 되어버렸습니다. 빨리빨리는 국제적으로도 우리의 상징어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구태여 대기만성(大器晩成)이란 케케묵은 말을 다시 꺼낼 형편은 아니더라도 쾌속성장의 부작용 또한 분명합니다. 성장제를 뿌린 과일이나 성장주사를 맞은 동물들이 그렇듯이 영양과잉인 요즈음 아이들의 신체적 쾌속성장이 신체의 부실을 가져왔습니다. 현대의 실용적, 해체적 가치관에 의한 급격한 물질문명의 발달과 경제성장으로 일어난 사회변화는 윤리도덕적 가치관이 붕괴되어 심각한 부작용을 겪고 있습니다. 이런 세상에는 당연히 젊은이들하고는 다른 노년들의 생존방식이 따로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노년에는 우선 서두르지 말 일입니다. 기력이 떨어졌으니 서두를 힘도 없을 듯하지만 어떤 노인들은 쓸 데 없는 조급증이 더하는 수가 있습니다. 수양이 부족하면 자제력이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노인들의 무디어진 인식력, 판단력은 타당하기보다 옳지 않을 가능성이 더 많습니다. 노인들은 늘 스스로 치매라고 엄살부리면서도 정작 자신의 경험과 판단을 과신하는 이상한 행태를 자주 보입니다. 설령 자신의 판단이 서더라도 그것은 편견이나 고정관념일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신중하게 대처하는 것이 노인다운 지혜일 것입니다. 더구나 100년 인생이라면 서두를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라는 말도 있지만 노인은 미루는 것이 좋습니다. 내일 할 일은 내일 해야 당연하지만 그것도 미루는 것이 좋습니다. 어제 할 일을 어제 해서 잘했던 일이 많았던가, 후회스러웠던 일이 많았던가?
여유만만 노인에게는 조급증보다는 차라리 우유부단이 더 어울립니다. 노년이 되걸랑 바쁜 일도 만들지 말 일입니다. 젊을 때야 바쁜 게 미덕이었지만 기력이 떨어진 노인한테는 무리가 따르기 마련입니다. 아직 기운이 남아서이겠지만 ‘백수가 과로사’한다고 자랑삼는 퇴직자가 많습니다. 그것이 젊게 사는 비결이라는 말도 있고, 혹은 퇴직의 공허감을 감추기 위한 허풍이더라도 당장 과로사할 리는 없겠지만 과부하가 걸리면 오래 견딜 수 없는 것은 분명합니다. 꿀벌은 바쁠수록 수명도 짧아지고, 탐지견 안내견도 과로에 오래 살지 못하고, 누에는 고치를 빨리 지을수록 생명은 짧아집니다. 하루살이는 분주히 날다가 하루를 넘기지 못하지만 굼벵이는 꿈틀대며 7년을 산다고 합니다. 조생종은 早老(조로)하고, 만생종이 더 오래 사는 법입니다. 사람도 조숙하면 조로하기 마련이고, 바쁘게 살면 시간도 빨리 지나고, 인생도 짧아집니다. 천천히 움직이면 시간도, 인생도 여유 있고 풍부해질 것입니다. ‘인생사 모든 것은 이미 정해져 있건만 덧없는 인생이 부질없이 바쁘다(浮生空自忙)’라는 운명론은 과장되었다 하더라도 적어도 노년에는 맞는 말입니다. 인생역전이라는 말도 있지만 늙어서는 그런 무리는 삼가야 할 것 같습니다. 역전시켜서 몇 년이나 더 호강할 건가요? 혹은 바쁜 노년이 건강에도 좋다고 하더라도 건강이 장수를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건강만 믿고 바삐 살다가 저승길도 지름길로 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노인운전은 저승의 지름길을 달리기 십상입니다. 퇴임 후에 마지막 차라고 고급승용차를 산다 해도 그때면 이미 운동기능이 떨어져 위험해지기 시작합니다. 나이 먹으면 가급적 활동을 줄이고, 고급차 살 돈으로 택시타고 다니는 것이 경제적으로도, 장수에도 좋을 것 같습니다.
해괴한 소리라고 하겠지만 나이가 들수록 병원출입을 삼가야 좋습니다. 늙을수록 병원에 자주 들러야 한다고 하지만 알고 보면 병원이 명 재촉하는 일도 허다합니다. 혹시 해서 병원에 들렀다가 중병환자가 되기도 하고, 당당하게 걸어들어갔다가 누워서 나오는 노인이 적지 않습니다. 노인만 그런 건 아니지만 애초에 병원에 들어가지 않았더라면 그런 일이 없었을 불상사가 자주 일어납니다. 흔히 내시경으로 속을 뒤져 종양을 모조리 잘라내고는 죽을 걸 살았다고 좋아 하지만 그 중에는 있어도 그만이고, 심지어는 잘라내서는 안 되는 종양도 있다고 합니다. '죽을 걸 산' 줄만 알았지 '살 걸 죽거나 평생환자'로 만드는지는 모르는 겁니다. 암세포란 몸의 저항력이 떨어지면 성하고, 저항력이 강해지면 없어진다고 합니다. 의사들이야 현대의학이 아니면 암을 고칠 수 없다고 호언하지만 용하다는 병원에서 죽는 환자가 부지기수이며, 자연요법이나 기도로 의사들이 포기한 암을 고치는 일도 적지 않다고 합니다. 젊은이야 암세포가 빨리 자라기 때문에 치료도 서둘러야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암도 게을러서 식이요법이나 자연치료 같은 Slow 요법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고 합니다. 현대 기계의학이 완치율이 높다고 하지만 늙은이들에게는 자연요법과 비교해서 생존기간에는 큰 차이가 없다고 합니다. 감기약 먹으면 일주일 만에 낫고, 그냥 버티면 7일 걸린다고 하는데 살 만큼 산 노인이 호들갑을 떨면서 병원문을 쥐살나게 드나드는 것은 품격도 염치도 없어 보입니다. 그러니 우리나라 노인들의 병원이용률이 세계 최고라고 합니다. 이것이 건강보험료 인상의 주범이라 하니 노인의 장수욕심이 후손에게 부담을 주는 것입니다. 막무가내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 하루라도 더 사는 것이 삶의 목표라고 한다면 어쩔 수 없는 노인이겠죠.
노년을 지키는 비결은 역시 노년에 걸맞는 ‘Slow 노인’입니다. 그래서 예부터 소나기가 오더라도 함부로 뛰지 말고, 팔자걸음으로 천천히 걸으라고 했습니다. 엉뚱한 소리가 아니라 천천히 걷는 중에 부족한 순발력을 채우라는 뜻일 것입니다. 노인은 말도, 행동도, 판단도, 타산도 천천히 해야 합니다. 젊을 때도 아닌데 서두를 필요가 없거니와 그럴 능력도 떨어집니다. 굼뜬 것이, 둔한 것이, 어리숙한 것이 오히려 노년을 지키는 비결입니다. 거북이가 토끼보다 오래 사는 것은 Slow의 원칙을 평생 지켰기 때문일 것입니다. 나이가 들면 매사에 여유를 갖고 천천히 생각하고 움직이는 것이 병원도, 약도 필요 없는 장수비결이요, 양생술입니다. 과격하고 스피디한 활동력과 체력단련보다는 무기력해 보이지만 Slow and Soft가 노년에 보다 어울리는 생활방식이 아닐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