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쾌한 아침인데 옆 테이블은 분위기가 무겁다. 40대 초반의 여성이 비슷한 연배의 남성에게 부부 문제를 상담하는 중이다. 같은 얘기를 큰 소리로 계속 반복하니, 볼 생각 없이 틀어놓은 TV의 아침 드라마처럼 절로 내용이 입력된다.
권남희, <스타벅스 일기> 28쪽
요즘 내 작업실은 아파트 상가 1층의 작은 동네 카페다. 아침에 교문 앞에서 아이들을 배웅하고 그 길로 바로 카페로 출근해 오늘의 커피를 마시며 작업한다. 아이들을 등교시키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면 아침 설거지에, 빨래에, 거실에 굴러다니는 먼지 더미에 마음을 뺏겨 '글을 쓰는 마음'을 되찾기 어렵다. 게다가 한 번 집에 들어오고 나면 다시 현관문을 나서기가 왜 그리도 힘든지. 아무도 없는 빈 집의 포근한 소파에 누워 유튜브 알고리즘의 세계로 풍덩 빠지고 싶은 유혹이 일렁인다. 그러니 아침에 아이들과 함께 집을 나선 뒤 그대로 카페에 들어가 글을 쓰는 것이 나의 생산성을 확보하는 방법이다. 일부러 스마트폰도 집에 두고 온다. 글을 쓰는 일과 책을 읽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카페에서 한 시간을 보낸다. 그 시간에 나오는 글이 가장 정갈하고, 그 시간에 읽은 책이 가장 선명하다.
오전 10시가 넘어가면 아침 운동을 마치고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러 오는 사람들의 습격이 시작된다. 그들의 수다가 이 카페의 배경음이 되면 정갈하고 선명했던 아침의 고요는 깨지고 더 이상 글에만 집중하긴 힘들다. 그래서 오전 10시가 되기 전에 서둘러 글쓰기를 마치고 빠져나와야 한다. 그런데 오늘은 아침 9시가 아직 채 되지 않았는데 '수다 떨러 왔어요'하는 느낌의 40대 남녀 세 명이 카페에 들어와 내 옆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이런 낭패다. 작은 카페다 보니 매장 내의 테이블 개수는 몇 개 되지 않았고, 세 명이 다 함께 앉을 수 있는 자리는 내 옆 테이블 밖에 없었다. 10분 전에 내가 시킨 카푸치노는 아직 반이나 넘게 남았고, 나는 오늘 여기서 한 시간은 더 작업할 생각이었는데. 옆자리의 대화 소리가 내 머릿속을 지배한다. 오늘 제대로 집중해서 글쓰기는 글렀네.
게다가 일부러 엿들으려고 그런 것도 아닌데 대화 내용이 '너무나 내가 함께할 법한 이야기'여서 그런지 전후 맥락을 몰라도 대화 내용이 쏙쏙 이해가 갔다. 아니, 내가 그 맥락 한가운데 있었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이야기를 듣다 보니 은연중에 알아차리게 된 것들이 몇 가지 있었는데, 그들은 나와 같은 대학교를 졸업한 나의 선배님들이자 내 남편의 과 후배들이었다. (심지어 그중 한 명은 남편과 같은 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그중 한 명은 동유럽의 어느 국가에서 해외 주재원의 가족으로 지내다가 한국으로 귀국하였으며, 또 다른 한 명은 나와 비슷한 시기에 미국에서 살았다. 옆 테이블의 남녀는 모두 초등학교 1학년 자녀를 두었으며 우리 아파트 주민이었으므로, 우리는 언젠가 같은 반 학부모로 만날 운명일지도 모르겠다. (이미 만났을 가능성도 농후하다.) 이쯤 되니 그들의 대화 속에 내가 아는 이름 한두 개는 튀어나올 것 같아 온 신경이 옆테이블을 향하게 되었는데, 어느새 낮말을 엿듣는 새가 된 것 같아 오히려 내 쪽의 정체를 들키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후드 잠바를 챙겨 입고, 야구 모자를 쓰며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옆자리 남녀가 나의 인기척을 의식하며 내 쪽을 쳐다본다. 아니, 이건 자의식 과잉이지. 나를 쳐다본 게 아니라 내가 앉아있던 테이블을 본다. 저 테이블의 의자가 더 편할지, 아니면 앉아 있던 자리를 고수할지 탐색하면서. 그래도 나중에 학부모 공개수업에라도 만나면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낮말을 엿듣는 새의 정체가 탄로 나지 않기 위해 야구 모자를 다시 한번 눌러쓴다. 오늘 엄청난 쌩얼로 카페에 출근했다는 점에 안심하며. 나중에 학부모 공개수업에 갈 때는 풀메이크업에 헤어 볼륨도 빵빵하게 넣고 변신(!!)하고 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