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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국'어의 세계

<언어의 위로>에서 만난 문장

by 주정현 Mar 12. 2025


언어는 말하는 이의 주관적인 감정과 생각과 세계관을 가득 담고서 내게로 온다. 누군가의 언어를 여과 없이 흡수해 내 것으로 만든 세월이 나를 다른 사람으로 만들 수도 있다. (...) 나는 나의 프랑스어가 아닌 그의 프랑스어를 말하고, 그의 프레임으로 세상을 보면서 착각했을 것이다. 우리는 생각도 참 비슷하다고.

곽미성,  <언어의 위로> 77쪽


 해외에서 아이들을 키우는 동안, 나의 한국어는 곧 아이들의 한국어였다. 아이들은 우리 집을 벗어나면 한국어를 쓸 일이 거의 없었고, 아이들이 듣고 말하는 한국어의 유일한 대상은 우리 가족뿐이었다. 책이나 영상으로도 한국어를 접하기는 했지만, ‘모국어로 이루어지는 대화’는 오직 가정에서만 가능했다. 우리는 같은 공간에서 같은 언어를 주고받으며, 우리가 만들어낸 작은 세계 안에서만 통하는 방식으로 한국어를 쓰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이 배우는 한국어는 나의 말투, 나의 어휘, 나의 감정을 그대로 담고 있었다. 아이들에게 한국어는 모국어였지만, 세상과 연결된 언어라기보다는 오직 엄마와 연결된 언어처럼 느껴졌다. 모국어. 그야말로 엄마 나라의 언어였다.


 한국어가 모국어지만 모국에 살고 있지 않았던 아이들.


 그 아이들이 6년 동안의 해외 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왔다. 한국에 돌아온 지 이제 9개월째. 지금 아이들의 한국어는 더 이상 ‘엄마의 한국어’가 아니다. 어느 날 아이의 입에서 내가 한 번도 가르친 적 없는 단어가, 심지어 내가 모르는 단어가 나온다. '이런 단어를 얘가 안다고?'하고 의아할 때도 있고, 내가 모르는 신조어가 튀어나와 ‘그게 무슨 뜻이야?’라고 되물을 때도 있다. 아이들은 이미 학교와 친구들 속에서 새로운 언어 환경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나는 요즘 ‘K-초딩언어’와 ‘K-중딩언어’를 배우며 아이들의 언어 세계를 따라잡으려 노력 중이다.


 처음에는 그것이 일종의 ‘오염’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내가 만들어준 안정적인 한국어 환경 속에서 자란 아이들이 이제는 내가 알지 못하는 단어를 쓰고 나와는 다른 방식으로 말을 하는 것이 어딘가 낯설고 불안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줄임말이나 인터넷 신조어에 극도로 예민하게 굴었던 건 국어 논술 선생님이라는 직업병에 기인한 점도 있긴 했지만 그보다는 무슨 전염병이나 바이러스를 보는 듯한 태도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것은 오염이 아니라 확장이었음을. 아이들의 세계는 나의 언어가 가 닿을 수 없는 곳으로 넓어지고 있었고, 모국어의 영토는 확장되고 있었다.


 모국어는 더 이상 ‘엄마 나라의 언어’가 아니다. 이제 한국어는 ‘엄마의 언어’가 아니라 ‘아이들의 언어’가 되었다. 한국에서 살아가면서 아이들은 나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언어를 습득하고 자신들만의 한국어를 만들어가고 있다.


 아이들이 나를 통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언어를 탐색하고 익혀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은 한국 생활의 또 다른 기쁨이 되었다.


월, 수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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