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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시아버지의 사진을 찍는 못된 며느리가 된 이유

종가집 맏며느리 예원 일기

그간 평안히 잘 지내셨는지요?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시부모님 간병 시리즈를 9화에서 마무리를 한지 벌써 1년이 지난 듯한데요,


혹시나 제 글로 인해 이런 오해를 하지 않으셨으면 하는 마음에 조금 더 신중하게 접근한 것 같아요.

- 며느리는 반드시 시부모를 모셔야 한다? 땡!

- 편찮으신 시부모님은 며느리가 모셔야 한다? 땡!

- 시댁 어른들을 모시는 걸 자랑하려 한다? 땡!


제가 시부모님을 모셨다고 해서

그게 자랑은 아니고, 훈장도 아니며, 상처는 더더욱 아닙니다.

그저 저렇게 살아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람도 있구나~ 하고 덤덤하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제 경험들을 통해 드리고 싶은 말씀은

"인간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다!"라는 점이며,

지옥에서도 천국을 발견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법을 알려드리고 싶어요. ^^


이제 남은 이야기들을 시작하겠습니다.



' 왜 아파서 누워계신 시아버지 사진을 찍는 거야? '


네.. 그냥 편찮으신 것도 아니고, 무려 전신마비 환자시기에 비듬부터 발바닥까지 다 닦아드려야 하는 시아버지를 모시는 건, 마치 80kg짜리 신생아를 24시간 돌보는 것과도 같다고 이전 글에서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아기 키워보신 분들은 아실 거예요.

우리 엄마들은 진짜 밥도 화장실도 겨우겨우 해결하시죠?


저도 오죽하면 밥 먹을 시간도 없어 하루 종일 편의점 삼각김밥이나 과자 몇 봉지로 끼니를 간신히 때웠을까요.

그 와중에 사진까지 찍어야 하는 건 정말 피곤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찍어야 했던 건..

시아버지가 남들처럼 목과 허리 수술을 하신 후에 갑자기 중환자실에 입원하신 그날로 돌아가면 답이 나옵니다.


남들은 수술하고 다음날 바로 퇴원한다며 아버지가 직접 트럭을 몰고 병원에 주차하실 정도로 허리 통증을 제외하면 무척 건강하신 편이었습니다.


그런데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아버지를 보는 담당 교수님의 표정은 뭔가 이상했습니다.

막 헛기침을 하시며..

" 어.. 어..? 왜 이렇지?? " 이 말만 반복하셨으니까요.

눈에 띄게 당황하셨으나 그걸 애써 숨기려는 주치의의 표정에 보호자인 제가 더 당황스러웠습니다.


수술 후 멀쩡히 일어나야 할 타이밍임에도 환자가 손가락 발가락 하나 까닥하지 못한 채 72시간이 지나도록 움직이질 못했으니까요..


게다가 아버지는 모든 감각은 다 살아있었으나, 전혀 움직이질 못하는 전신마비 상태라는 것을 그때까지도 인지하지 못하셨기에..

당시 저희 가족들은 억장이 무너지고 당사자이신 아버지는 충격을 받아 사경을 헤매고 헛것이 보여 헛소리도 많이 하셨어요.

그저 연세가 있으시니 회복속도가 느려서 그런 거라고만 믿고 싶었지만.. ㅠㅠ


아.. 영화에서만 보던 ' 숨 막히는 순간 '이라는 게 이런 느낌이구나..


진짜로 숨이 턱 하고 막히며

서울 가서 다시 방송활동을 하기는커녕, 들어온 인터뷰나 교수직, 스타킹이나 힐링캠프 같은 굵직한 프로그램들도 모두 거절하는 것은 물론 있는 일도 다 거절하고 수입 0 원인채 살아야 하는 시간이 또 반복되는구나..


남편의 말대로 시댁에서 1년만 살기는 개뿔,

이젠 시어머니에 이어 시아버지까지 병시중을 들어야 하는 건가..

30대 중반의 파랑파랑한 내 인생은 또 이렇게 망가지고 늙어가야 할 팔자인 것 같아..

어떨 때는 화가 나고,

어떨 때는 눈물이 나고,

또 어떨 때는 모든 걸 포기하고 싶었다가,

결국엔 여기까지 왔습니다.


어쨌든 당시엔 72시간이 지나도 꿈쩍도 못하시는 아버지와 가족들의 숨 막히고 목 막히는 검은 시간들이 흘러 흘러 일주일.. 한 달.. 이 지났습니다..


아무리 부정해도 결국엔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네, 주말 신파극에도 잘 안 나오는 전신마비 환자를 시아버지로 둔 며느리에 당첨.


아버지가 수술 다음날 직접 운전해서 귀가하실 거라며 병원주차장에 세워둔 트럭부터 처분했습니다.

아버지는 더 이상 트럭을 몰며 공장을 운영하실만한 형편은커녕.. 화장실 대소변도 혼자 못 보는 상태로 이젠 평-생을 사셔야 하니까요.


네, 병원에서 평생 전신마비 환자로 살아야 한다는 판정을 받았습니다.

이미 시어머지의 희귀 암 투병으로 현금 재산은 모두 날린 상태였고, 저와 남편의 보험까지 모두 처분해도 간병인 비용은커녕 병원비 내기도 힘든 상황이 왔습니다. (물론 80kg짜리 할아버지를 간병한다 지원하는 분도 안 계셨고요.)


그렇게 우린 병원 붙박이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후 추가 검사를 통해 아버지의 경추뼈가 환자와 보호자 동의 없이 제거되었고,

그 제거한 사람도 수술을 집도하기로 약속한 주치의가 아닌.. 펠로우도 아닌.. 레지던트가 수술 연습용으로 아버지의 경추뼈를 제거한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간간히 뉴스에 나오지만 '불법 대리수술'이었습니다. ㅜㅜ


저희는 처참한 운명을 받아들여야하나 슬퍼만하다..

저희가 그 사실을 알게 된 후에도 뻔뻔하게 모든 수술비용을 다 내라며 청구서를 날린 병원 측 시스템에 화가 머리끝까지 난 상태였지요.


그래서 관련 증언, 사진, 모든 병원 기록과 재활 기록을 '사진'으로 남겨야만 했습니다.


뭐.. 의료사고로 인한 수술은 과실을 입증하기 너무도 어려웠으나, 당시에 행동심리전문가인 남편의 심문 덕분에 주치의가 대리수술 사실을 고백한 녹음본을 확보했기 때문에 뭔가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가졌던 것 같아요.


그래도 어차피 분쟁에서 이길 확률은 낮지만.. 수술 당시 영상 확보는 안되더라도, 이후 재활여부나 보상차원에서라도 사진 증거는 필수였습니다.


그렇게 저는 욕창이 생긴 아버지를 간호사와 함께 낑낑대며 뒤집어드리고,

새벽에 마비가 온다며 잠을 깨우는 아버지의 다리를 자다 일어나 붓고 빨개진 눈으로 마사지를 해가며..

밥보단 잠이 급한 생활 속에서 사진을 남긴 겁니다.


유난히 좋아했던 셀카도 그때 이후 거의 찍지 않게 되고,

온욕을 하며 스트레스를 풀던 습관이 없어진 것도 바로 그때였습니다.


사치..라는 게 꼭 백화점 명품관에서만 행해지는 게 아니었습니다.

제가 일상 속에서 아무렇지 않게 먹던 밥, 자던 잠, 창 밖을 통해 보는 하늘이 아닌 직접 보는 하늘을 보는 것조차 '사치' 였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게 되었으니까요.


그런데 저는 어느 날.

갑자기 저는 " 행복 "이라는 감정을 온몸으로 느꼈습니다.

얼굴이 미소가 번지고, 잠 드는데 뒤척이는 시간도 없이 편안하게 잠에 들 수 있었습니다.

시아버지도, 환경도 아무것도 변한 것은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지요.


이야기는.. 또 다음 시간에 만나서 이야기 들려드릴게요 ^^

인생 참교육을 받을 기회를 주신 시아버지께 진심으로 감사와 존경, 그리고 사랑을 올립니다.


우리 구독자 선생님들도

모두모두 건강하시길 기도할게요.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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