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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집 개가 죽으면 문상객이 온다지만.. 시아버지간병

죽은 사람 취급도 못 받는 전신마비 환자 ㅣ진짜 내편 구별법




정승댁 개가 죽으면 문상하러 오는 사람들이 많지만, 정작 정승이 죽으면 문상객은 없다고 했던가? 

딱. 우리 집이 그랬다. ​​


시어머니 암 투병 때도 시아버지는 건장하셨고,

시아버지 팔이나 다리가 조금만 다쳐도 병문안 오는 분들은 줄을 이었다.


그분들이 가져온 각종 두유, 오렌지 주스들이 박스째로 쌓여있어 다른 병실 환자분들께 나눠드릴 정도였는데..


살아계신 아버지가 전신마비 환자가 되자 상황이 달라졌다.

 

두유 한병 구경하기도 힘들어질 줄이야..




그간 시아버지를 찾아온 분들 중엔

살려달라는 분들, 돈 빌려달라는 분들,

돈 그냥 달라는 분들, 일 달라는 분들 등

워낙 친구 많고 인정 많기로 소문난 아버지시다 보니 우린 내심 기대를 했던 것 같다.


그간 똑 부러지는 시어머니의 반대와 어려운 가정 형편에도 불구하고 성심껏 도와드린 분들도 넘치게 많았으니까.


하지만 차라리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면 모를까, 아니면 조금 다치셨다면 모를까.

전신마비 환자가 무슨 도움을 청할까 싶어 겁이라도 먹으셨던 걸까?


아무리 간병비를 많이 드린다 해도 모두 거절하는 80킬로가 넘는 전신마비 환자 간병을 온전히 도맡아서 한다는 건..

음.. 안 해본 사람은 상상도 못 한다.


모든 감각은 살아있지만

한 톨도 움직이지 못하는 시아버지의


머리 비듬, 세수, 코털,

식사, 약 복용, 양치,

욕창 방지 혈액순환 마사지,

배변과 배뇨처리,  

손톱발톱이나 목욕 등 위생관리까지도

남편과 나 말고는 할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 제대로 된 식사도 포기하고,


- 잠 잘 권리도 포기하고(새벽에도 물 드시거나 기저귀 관리, 욕창 처리를 돕거나 마사지를 해야 했으니..)


- 여자로서 누리고 싶은 결혼식, 해외 신혼여행, 화장, 옷, 구두, 가방 같은 것들도 포기하고,


- 젊은 부부가 함께 웃으며 즐겁게 살 기회도 포기하고,


-  무엇보다 사람과 동물을 돕는 일을 하고 싶다는 꿈도.. 포기해야 했다.


매일 병원 병실에서 눈을 뜨고, 녹초가 되어 눈을 감는 지친 이 일상이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채 꿈을 갖고 있으면 오히려 더 고통스럽고 억울한 마음만 드니까.. ㅜㅜ  


이런 상황에 두 팔 걷어올리고 도와주실 분들이 안 계시는 게 어찌 보면 당연하기도 하겠다..




담보도 없이 돈을 빌려간 친척? 

돈 때문에 식구 간 싸우기 싫다며 시아버지의 산을 그냥 받아간 친척?

몇 십년지기 죽마고우라는 친구? 


시어머니는 식당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힘들게 일하시고, 시아버지는 공장에서 힘들게 일하시는데..


그저 받아갈 때만 살려주셔서 고맙습니다~ 넙죽 엎드려 절이라도 할 기세지. 그때 시아버지 앞에서 무릎 꿇고 도움 청하던 분들은 다 어디로 가셨을까? 


그간 시어머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친척들 친구들 챙기기 바빴던 시아버지도 대놓고 말씀은 안 하셨지만..

충격을 많이 받으신 것 같았다.


종갓집? 그 많은 고향 친구들? 중 단 한분도.

단 하루, 아니 단 한 시간만이라도 대신 아버지를 돌봐드릴 테니 식사라도 제대로 하고 오라고 말씀하시는 분은 안 계셨으니까.


시외가 쪽 큰 이모님과 고모님들이 유일하게 우리 먹을 김밥이며 반찬을 만들어주시고, 아버지의 재활운동을 격려하며 걱정을 해주신 걸 빼고는 글쎄..




보통 사람들이 결혼하면 40, 50대 이상이나 되어야 겪을법한 시부모님의 간병 문제를 결혼 초 30대에 겪는다는 건 지옥이나 다름이 없었다.


덕분에 남편이 종손이고, 나는 종부지만

다른 집처럼 왜 자식 없냐는 핀잔을 듣지 않는다. 


지금 집안의 큰 어른이 생사를 넘나드는데 도와주지는 못할 망정, 이 와중에 애까지 낳으라고 강요하는 건  미친 짓이니까.


아무도 도와주고 싶어 하지 않는데 도움을 청하는 것도 실례이니.. 우리끼리 아등바등 끝이 안 보이는 터널을 기어가는 와중에 남편까지 병을 얻어버렸는데 자식은 무슨..


인생 꽃 필 나이인 30대 초에 시집와서 이런 상황들이 버거운 나 역시 46kg에서 62kg까지 살이 붙었다.

인생 최대 몸무게라는 고3 때도 55kg을 넘기진 않았는데..


뭐 어차피 간병생활 하하려면 여자이길 포기해야 한다.

아이크림? 선크림? 트리트먼트? 그런 거 필요 없고, 있다 해도 쓸 여유 따윈 없으니까.

신생아 돌보는 것보다 더했음 더 했지, 덜 하진 않은 생활이니까.



덕분에 인간의 삶과 사람의 본성에 대해 많은 공부가 되었고,

진짜 내 편이 누구인지 정확히. 알게 되었다.

한참 방송활동하고 잘 나가면 옆에 슬~ 붙으려 하고,

지방 시골에서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전신마비 환자를 간병하고 있으면 사람 우습게 보려드는 그 인간의 야비한 잣대에 휘둘리지 않을 자신은 생겼으니까.



" 인생에서 시련은 하나님이 진짜 내 편을 걸러내라고 주신 기회일지도 모르겠다. " 라는 드라마 별 그대 천송이의 마지막 대사처럼,

인생에 큰 위기를 한 번쯤 겪는 건 필요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시련을 이겨내는 사람은 더 강해지니까. ^^





며느리의 시부모님 간병일기


개 같은 남편


종갓집 며느리의 생각 한 자락


동물변호사


https://naver.me/xSN4Dd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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