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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갓집 맏며느리 인생이란.. 시어머니 이야기

고생하다 떠나는데 도대체 뭐가 행복해?



시어머니는 행복한 삶이었다고 하셨다.


20살 어린 여자가 전라도에서 경상도로 시집와 시부모에, 시댁 식구 9남매를 보살피는 게 뭐가 그리 행복하셨을까?


그 9남매 입에 풀칠해 주느라 정작 당신은 부엌 구석에서 밥풀 몇 개 섞인 바가지 물로 배를 채우셨다고 한다.


어려운 시절에 태어난 남편은 후에 8남매가 된 삼촌들 몫까지 챙겨야 하는 통에 잘 못 먹고 자라서인지 도련님보다 체구도 작다.


시아버지는 신혼을 즐길 틈도 없이 그 많은 식구들 먹여 살려보겠다며 홀로 사우디로 가버리시고, 시어머니 혼자 추운 겨울에도 시골 냇가에서 갓난아기 업고 이불 빨래하는 삶이 어지간히도 좋았겠다..

가족들 먹여 살리려고 사우디까지 일하셨던 우리 시아버지는 참 성실하고 부지런하신 분이셨다.


독립군 집안의 후손답게 용감히 해외로 떠나신 시아버지는 기술력이 탁월해 많은 수입을 가져다주셨지만.. 밥 먹을 식구는 너무도 많았다.


그래서 다 같이 잘 못 먹고 못 입던 시절.. 식구들끼리 소소하게라도 챙겨주는 그 마음이 고마워서 참 좋았다는 어머니의 말씀.


정말 행복했다는 어머니의 말씀들은 모두 진실이다.

동네분들 모두 도망갈 거라 했던 시어머니는 끝까지 남편과 자식의 곁을 지켰으니 말이다.



또 그 말이 진실이 아니고서야..

시한부 인생인 암 환자가 된 시어머니에게 커피를 타 달라는 막내 삼촌을 꾸짖기는커녕, 그런 삼촌을 말리려는 남편을 도리어 호되게 혼을 내셨으니.


시골에서 같이 고생하며 키운 삼촌들이라 자식처럼 생각하셨기에 가능한 일이었을까?



심지어 시아버지 몰래 형편이 어려운 삼촌에게 돈도 빌려주시고, 받을 생각도 없으셨다.


그런데 그건 어머니가 식당에서 아침저녁으로 일하시며 어렵게 번 돈이었다. 이건 어머니가 남편에게만 말씀하신 거라 아직 시아버지도 모르시는 일이다..^^;


명절이나 종갓집 제사 한번 할 때마다 최소 50분에서 100분 넘게 오는 친척분들을 마음으로 챙겨주시고, 심지어 최소 1박 2일, 2박 3일씩 놀다 가느라 매 끼니에 간식에 술안주까지 모두 챙겨주시면서도 즐거워하셨다.



이것도 시댁 식구가 아니라, 진짜 가족이라 생각하셨기에 가능한 일이었을까?


그러고도 스트레스받는다며 시아버지와 다투는 일도 없으셨고, 우리 어머니처럼 쇼핑으로 푸는 일도 없고, 홀로 어디로 떠나는 일도 없었다.

시댁 제사를 위해 머리에 음식을 이고 지고 문중 산을 오르내리셔야 했던 종갓집 맏며느리인 울 시어머니..


우리 어머니는 시댁이 미국에 있기에 한국에서 챙길 식구가 별로 없는 데다, 종갓집도 아니라 제사 횟수도 시댁보다 훨씬 적음에도.. 제사 때마다 스트레스받는다며 저 3가지는 다 하셨다.


그래서 나는 원래 여자들은 결혼하면 힘들고, 특히 명절 제사는 더 고통스러운 것이라 학습해 버렸다.



하지만 시댁에선 명절날 모이면 다들 웃기 바쁘고, 놀기 바쁘고, 먹기 바쁜 게 너무너무 신기했다.


그래서 울 남편은 어릴 때부터 명절이란 다들 즐겁게 웃고 맛난 거 먹다 끝나는 신나는 행사로 알고 있다.


시어머니는 저 많은 일을 웃으면서 해내셨고, 한숨 푹 주무시고 다음날 콧노래를 부르며 식당 일까지 나가실 정도였으니..


굳이 일을 안 해도 되는 상황이었고, 시아버지가 남 밑에서 서럽게 일하지 말라며 가게 계약까지 해주셨지만, 그냥 편하게 일하고 싶다며 어머니가 취미 삼아 하시는 일이었다.


나로선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상황이지만.. 시어머니는 나이 들어서도 누군가의 필요와 인정을 받는다는 걸 진심으로 즐거워하셨다.



어떤 사람은 저런 상황에서 시댁과 원수가 되고도 남을 텐데, 고생하다 병 걸린 거라며 가족 친척들을 원망할 수도 있을 텐데.. 어째서 울 시어머니는 행복했다고 말씀하시면서 눈을 감으실 수 있으셨을까..?


도대체 그런 힘은 어디서 나왔을까?

시어머니께 수여하는 명예로운 어머니상. 이걸 받으신 어머니는 많이 우셨다..


그 이야기는 < 결혼식 보다 결혼생활 > 연재글에서 이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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