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 시댁에서 살자고 하는 남편의 말에 지금 내 귀가 제대로 듣고 있는 건지 의아했다.
내 부모님이랑 사는 것도 갑갑한데 이게 무슨 소린가 싶기도 했다.
하지만 남편이 오랜 시간 부모님과 떨어져 살았던 데다, 편찮으신 어머니가 신경 쓰여 단 1년만이라도 함께 살고 싶어 하는 그 마음을 모른 채 할 수 없어 난감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남편은 연애하기 전엔 내가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스승님이었다.
그런 남편과 시댁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컸던 나로서는 단칼에 뿌리치기 어려운 부탁이었다.
엄청나게 걱정했던 것과는 다르게 다행히 남편은 행동학 스승답게 행동학의 기법들을 사용해 소극적인 내가 본가에 잘 적응하도록 마술을 부리기 시작했다.
일명 체계적 둔감화.라고 불리는 방법인데 불안하고 무서운 자극에 대해 서서히 적응시키는 기법으로 사람과 동물 모두에게 적용 가능한 방법이다.
남편은 내가 시댁으로 아예 오기 전 일주일에 1번씩 시댁 근처에서 맛있는 것 실컷 먹게 하고 바닷바람 쐬며 도시에서만 살았던 내게 자연의 신선한 경험들을 하게 해 주었다.
그렇게 주변 환경에 적응부터 시킨 후에 서서히 시부모님을 소개해주었고, 막상 직접 만나 뵙고 나니 너무 좋은 분들이라 불안감에 요동쳤던 마음도 조금 진정이 되었다.
그렇게 결국 나는 신혼을 시댁에서 함께 하기로 결정했다.
1년? 눈 깜짝할 새면 지나갈 거라 믿었고,
다가올 앞날은 그땐 미처 몰랐으니. ^^
그리고 시가 & 시외가 어른들의 90%가 같은 지역에 살고 서로 왕래도 잦아 우리는 명절 이외에도 시가, 시외가 모두 방문하여 인사를 드리곤 한다.
심지어 시어른들은 명절 때 2박 3일 내내 놀다 가셔서 어머님이 3끼 밥부터 간식까지 다 챙기시느라 바쁘셨다.
조부모님 살아생전에는 문중 산소에서 제사를 올리느라 시어머님은 음식을 하신 후 그걸 머리에 이고 지고 산을 타고 올라가셨다.
나중에 제사를 집에서 하게 되어도 친척분들이 평균 50분, 많으면 100분 정도 오셨다고 하니.. 참으로 후들후들한 시집살이를 하신 셈이다.
종갓집에 시집가는 나를 걱정했던 언니와 친구들이 왜 그랬는지를.. 나만 몰랐었던 거다.
그저 남편과 시부모님만 좋은 분들이면 행복한 결혼생활이 되지 않을까?라고 막연하게 믿었던 내가 순진했던 셈이다.
무엇보다 어릴 때부터 시골 공동체 생활을 하며 자랐던 남편과 내가 자란 환경은 180도 다른 걸 간과했던 게 가장 큰 실수였다.
우리 엄마는 결혼 전부터 미국에 시댁이 있었기에 엄마가 시부모님께 어떻게 말하고 행동하는지를 보고 배울 일도 잘 없었고, 한국에 친척이 많은 편도 아닌지라 어른들과 어울려 지낸 경험이 드문 나였다.
그래서 마음을 표현하고 예의를 갖추려 노력해도 어른들의 기준에선 예의 없어 보이는 것들이 많아 남편에게 혼이 나는 일이 잦았고, 과일 깎는 법부터 인사하는 법까지 모두 우리 집과 달랐다.
사방에서 못 배운 애 취급을 하는 것 같아 나도 모르게 자격지심이 들다 보니 나중엔 어른들이 진심으로 도와주시려 하시는 말씀까지도 쓸데없는 간섭이나 잔소리처럼 들렸다.
어느 날은 도망치고 싶었고 실제 도망쳤다 남편한테 잡혀온 적도 있다. 허허
혹시.. 저처럼 시댁 식구들과 함께 사는 분들이 또 계실까요??
며느리의 시부모님 간병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