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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종갓집 맏며느리 일기
Mar 29. 2024
끝까지 좋은 일도 없고, 나쁜 일도 없다.
남들 보기에 좋은 일이 때론 독이 될 수도 있고
남들이 싫어서 피한 일이 내겐 득이 될 수도 있다.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안다고 했던가?
결국엔
이
세상에
모든 일들은
끝까지 좋은 일이 아닐 수도, 끝까지 나쁜 일이 아닐 수도 있다.
능력 없는 남편 먹여 살리느라 뼈 빠지게 고생했는데 그 남편이 로또 복권 1등에 당첨이 돼서 노후를 보장받았다면?
부실한 남편 선택한 건 오히려 " 득 "이 된 셈이다.
아들 의대에 보내려고 영유부터 학원 과외에 실컷 공부시켜 의대 합격해 기뻐했는데 그 아들이 신입생 환영회 때 술에 취에 학교 연못에 빠져 죽었다면?
의대 진학을 강요했던 엄마는 평생 자신을 원망할 수 있다..
시골 가난한 시부모님 모시고 사는 일을 불행이라 여겼는데 어는 날 그 집 마당에서 땅을 파다 골동품 항아리를 발견했고 그 가치가 100억이라면?
가난한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길 택한 걸 잘했다 여길 것이다.
남의 지식을 훔쳐 승승장구했는데 알고 보니 실력은 개털이었다는 게 서서히 드러나면서 자신의 목을 조인다면? 그래서 몸도 아파지고 예민하게 굴면서 가정도 파탄이 났다면?
그 승승장구는 자신에게 오히려 " 독 "이 된 셈이다.
예전에 다단계 다이아몬드라는 직위를 가진 사람이 나에게 왜 이런 좋은 일을 하지 않는지 자기들은 이해할 수 없다며 면전에서 대놓고 말한 적이 있다.
그분들의 신념은 그분들의 것일 뿐, 타인에게 강요하는 모습이 별로 좋게 보이진 않았다. 아무리 나이 많은 어른이라도 꽤나 무례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당시 나는 사람들이 좋다며 인산인해를 이루던 그 다단계의 모임에 몇 번
가볼
정도로 약간의 관심은 보였지만
저절로 돈이
들어오는꿀직업이
래도
결국
나는
택하지 않았다.
그리고
동물 행동학 공부를 시작했다.
4년제 대졸이 일 하기엔 인지도와 연봉이 턱 없이 낮다는 이유로 결사 반대하는 부모님의 말씀을 뒤로하고,
동물 친구들의 마음을 공부하려고 모은 적금까지 탈탈 털어 서울과 부산을 오갔다.
나이 먹고 시집갈 자금 털어 별 미래도 없어 보이는 동물 공부한답시고 허우적대는 내 모습이 당연히 부모님의 눈에도, 친구들의 눈에도 썩 좋지 않게 보였던 건 충분히 이해한다.
무척이나 걱정스럽고, 어리석고, 한심해 보였으리..
나 역시도 새파란 어린애들 앞에서 서럽게 구박받아가며 주변인들한테 인정도 못 받는 일을, 미래가 보장되지도 않은 일을 내 의지만으로 끌어가는 것에 무수한 한계를 느꼈다.
하지만
30대 초반에 통장 잔고 7천 원인가?
남아도 이상하리만큼 겁이 나지 않았고, 오히려 행동학 공부할 때만큼은
드디어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지금 생각해
봐도
내 영혼의 강한 이끌림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물론
그
과정은
험난한
가시밭
산길을
홀로
얇은
배낭
하나
매고
오르는
느낌이었지만..
가족과 친구들이 보기엔 그 하찮은 동물들의 행동과 마음 따위가 내게 있어서만큼은 금 보다 고귀하고, 죽어도 후회 없을 길이란 확신은 있었다.
그래서 맞아서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는 오뚝이처럼, 남들 연애하고 시집갈 준비할 때에 잡초처럼 이 길을 버텨왔다.
실제 당시 내 별명도 ' 잡초 '였다.
그때 나를 가장 힘들 게 하는 건 사랑하는 부모님의 반대와 한심하기 짝이 없다는 그 눈빛, 그 비수 같은 말들이었다.
다들, 정말 다들 내게 그때 독을 먹고 있는 거라며 걱정하고, 지적했지만.. 지금 와서 보니 사실 나는 하늘이 내려준 동아줄을 잡고 있던 셈이었다.
여러모로 그리도 무시당했던 내가 이제는 어디 가면 그래도 대놓고 무시하진 않는 직업을 가졌으니 말이다. 그
것도
이 분야에선 몇 명 있지도 않은 희귀한 사람이 되어버렸으니..
남들이 싫어서 피하는 일을 택한 결과가 마침 운이 맞아떨어져서인지, 아니면 눈물겨운 노력 때문인지 어쨌든 좋게 마무리되었다.
만약에 당시 아버지가 무려 10년 동안 강요하신 그 공무원 시험을 쳤더라면 지금쯤 나는 아버지를 원망하며 불행한 삶을 살고 있었게 틀림없다.
공무원이란 직업 자체는 참으로 가치 있고 누군가의 소중한 직업이지만, 적어도 내게 있어서만큼은 숨이 턱 막힐 만큼 답답한, 굳이 해보지 않아도 아는 걸 청춘 버려가며 할 필요가 없다고 느꼈으니 말이다.
지금도 누군가의 부모란 이름으로,
남편 부인이란 이름으로,
친한 친구란 이름으로
..
' 자신들이 보기에 좋은
것'을 강요하는 사람과,
그 강요로 인해 고통을 느끼는 분들이 계실 것이다.
지금 시대는 빠르게 변하고 있고, 예전과는 아예 다른 시대가 되어버렸다.
무엇이 좋고 나쁜지 예전의 잣대로만 판단할 수 없는 시대이다.
그러니
남들 좋다는 거 따라가다 후회하는 것보다는 내 마음이 이끄는 대로 가다 후회하는 게 조금은 더 낫지 않을까.
물론 각자의 인생은 각자의 선택이고, 그 결과도 온전히 자신의 몫이지만.
살면서 지금 좋은 것이 끝까지 좋을 수도 없고,
지금 나쁜 것이 끝까지 나쁠 거란 보장은 없으니
..
때론
자신의 가슴속에
고요하게 울리는 영혼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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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나 연구소
01
끝까지 좋은 일도 없고, 나쁜 일도 없다.
02
부자 부모 vs 가난한 부모
03
눈치 보지 마라. 어차피..
04
천장에서 물이 새는 집에서 산다는 건
05
딸 같은 며느리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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