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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가 모자라도 한참 모자란 것 같은 내 남편

이런 남자와 산다는 건



통잔 잔고가 0원이라 하루종일 일 하고도 밥 먹을 돈이 없어 굶고 있다고?


이는 연애시절의 에피소드이다.


한창 연애하던 시절엔 장거리 커플인지라 마음은 하나였지만 자주 보지는 못해 힘든 상황이었다.


어느 날 친구에게 남자친구의 존재를 알리면서 이 남자는 내게 목숨 건 사람이라고, 그만큼 믿는 사람이라고 말을 했더니..


친구는 혹시 그가 말로만 그런 건 아닌지 시험해봐야 하는 거 아니냐며, 악마의 속삭임 같은 제의를 던졌다.

" 진짜 그 남자가 널 사랑한다면~ 당연히 이렇게 해줄걸? " 하면서 말이다.



그건 바로 당신 통장의 모든 금액을 나에게 입금시켜 보세요.라는 말이었다.  


아.. 이렇게 남자 마음을 테스트해 보는 방법도 있겠구나~ 싶어 솔깃했다.

솔직히 이렇게 하는 남자가 세상에 있을까 궁금하기도 하고, 아무리 멀리서 일한다지만 그래도 오랫동안 나를 보러 오지 않는 것에도 슬슬 불만이 쌓이던 찰나였으니.


그렇게 고민하다 결국 나는 그 말을 내뱉어버렸다.  


그런데 예상과는 달리 당시 이 남자는 정말 모든 금액을 내게 입금했다.

심지어 단 1초도 망설이지 않았단 것이 오히려 더 충격이었다.


그렇게 그날은 마무리되었다.


그런데 그다음 날 저녁에 둘 다 퇴근하고 통화를 하는데.. 식사했냐는 말에 아직 못했다는 답이 왔다.


그래서 점심을 많이 먹어서 저녁을 굶느냐고 했더니 점심도 안 먹었다고 했다.

그럼 아침을 먹었냐고 했더니 아침도 안 먹었단다.  


응???



알고 봤더니 진실로 통장 잔고가 0원이라. 식당 갈 돈도 없고, 사무실이라 밥을 해 먹을 수도 없었다고 한다.


하 참나.

아무리 전액을 입금하라고 했어도, 그래도 다른 통장엔 돈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바보같이. 적어도 자기 먹고 살 건 남겨놓고 준거라 생각했는데.. 진짜로 전재산을 다 준 거라고??

이게 도대체.. 말이 안 나왔다.


그 말을 듣는 즉시 얼굴이 빨개지며 받은 걸 모두 돌려주고, 앞으로 다시는 이런 바보 같은 일은 시켜도 하지 말라고 했다.

그리고 너무너무 미안했다.


남의 귀한 집 자식에게 도대체 내가 무슨 짓을 한 건지.. 참을 수 없을 만큼 부끄러웠다.


동시에 이런 남자라면 프러포즈할 때 들었던 그 비 새는 반지하에 살아도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확신도 생겼다.


이후 장거리 연애에 더 이상 불만이 생기는 일은 없었다. 인간이라면 없어야 했다.

지은 죄가 있기에..ㅜㅜ 주변의 가벼운 말에 넘어가 세상 소중한 사람을 괴롭게 하는 어리석음을 반복하고 싶진 않았다.



나중에 살아보니.. (남들이 보기엔) 이보다 더 바보 같은 일도 많았다.


지금 20대 이상 전 국민은 다 아는 그 노래를 본인이 직접 작사 작곡하고도, 그 작곡가가 산 술 한잔에 그냥 줘버린 적도 있다. (그분은 그 곡 하나로 빌딩을 샀다는 소식을 들었다.)


친한 형의 부탁으로 당시 유명 아이돌 가수의 노래에 무료로 기타 반주 녹음을 해주는 건 예삿일이었고, 그 팀의 리더가 고맙다고 선물해 준 운동화 한 켤레를 잘 신고 다녔다.


그렇게 남편을 만나면 잭팟이 터진다는 소문이 났는지?

심심하면 유명 작곡가분들에게 연락이 오곤 했고, 어떤 월드컵 가수로 유명한 분은 식사 대접한다고 집에 초대를 했지만.. 당시 반려동물 박람회에 참석했던 우리 제자들을 보러 오기 위해 다음으로 미뤘다고 한다.


남들은 만나지 못해 안달 난 사람들, 벌지 못해 안달 난 돈에 대한 욕심 없이

오직 자신이 가야 할 길과 집중해야 할 것들에 대한 선을 묵묵히, 고집스레 지켜가는 남편이 때론 답답하고 모자라보인다.


하지만 이런 분을 내 스승님으로 모실 수 있어 감사하고, 부부의 연까지 맺었다는 것은 때론 영광이란 생각까지 든다.


아무튼 시골 출신답게 우직하고, 때론 영화 맨발의 기봉이 같은 구석이 남편과의 결혼을 결심하게 된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함께 살기엔 무척 답답한 이유 중에 하나이기도 하다.


우리 남편은 참 '개' 같다.


- 부자든 빈자든 상관없이 꼬리 흔들며 좋아하는 개처럼, 상대의 돈보다는 마음을 볼 줄 아니까.


- 비싼 사료나 방석이라고 더 좋아하지 않고, 저렴한 사료나 장난감을 선물해도 신나 하는 개처럼, 상대의 작은 배려에도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니까.


- 아무리 가난한 집에 살아도 행복할 수 있는 개처럼, 풍족하지 않아도 행복한 사람이니까.


덕분에 호텔 애프터눈 티를 좋아하고 도심의 안락한 생활에만 젖어있던 내가

어릴 때부터 놀았던 곳이라 추억이 많고, 깨끗하고 편리한 호텔을 좋아했던 나였지만..

이젠 이렇게 검소하고, 어떤 면에선 많이 모자라 보이는 남편의 영향을 받아 천장 구멍 뚫린 집에서도 잘 살고 있다.

오래된 본가의 주택엔 현재 천장 구멍난 곳만 5곳이고, 2곳은 고쳐서 현재는 3곳만 뚫려있다.


이런 남편이 얼마나 좋으면 울 남편이 좋아하는 시골 촌집까지 좋아졌을까 ^^

화장실도 불편하고, 호텔보다 안락하지 않아 싫어했던  촌집..

여기서 먹는 컵라면도 더 맛있다.. 라면 그건 거짓말이지만^^;

이젠 이것도 충분히 감사하고 맛있게 즐길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처음엔 모자란 부분이 있어 보이는 이런 남자와 함께 사는 것이 많이 불편하고, 답답하고, 억울했던 시절이 있지만.. 그 시간들을 잘 보내고 나니 이젠 어디서든 어떤 상황에서든 잘 살 자신 있고, 전보다 자존감이 더 높아졌다.


우리가 불편하고, 싫은 그 사람의 특정 부분은 상황에 따라 장점이 되기도 하고, 단점이 되기도 한다.


그 불편함을 참을 수 없다면 참지 않을 권리 또한 우리에게 있겠지만, 만약 참을 수 있다면 참아보는 것도 길게 보면 인생의 큰 교훈을 얻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인간은 고통속에 성장하고, 불편함 속에 깨닫는 게 더 많으니까. 이게 바로 사람들이 인도가서 수행하고, 칠레의 산티아고 길을 걷는 이유가 아닐까.


어쩌면 그 모자람과 불편함을 이겨낸 우리는 과거의 우리보다 더 강해지고, 행복해질 수 있지 않을까? ^^



혹시 오늘은 어떤 일이 여러분들을 힘들게 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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