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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o 떼오 Dec 17. 2020

이것은 돼지고기인가? 소고기인가?


높고 푸른 하늘과 한결 여유로운 분위기가 복잡한 리마를 벗어나 한적한 시골동네 와라즈에 도착했음을 알렸다. 


사람들의 얼굴에서는 벌써부터 순수함이 녹아있었고, 페루 전통의상을 입은 분들도 간혹 보였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은 의식하지 않은 채 각자만의 방식으로 시간을 흘러보내고 있었다. 나도 나만의 방식으로 와라즈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숙소에 코카인 잎이 나열되어 있을 정도로 이곳은 유명한 고산지대. 효과를 설명할 수는 없겠지만, 다양한 방식으로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니 인간이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자연은 '인간의 위대함' 을 결코 바라만 보지 않는다. 고산지대를 여행하며 자연에 굴복하며 쓰러지는 사람들을 종종 보았기에, 우리는 천천히 또 천천히 그들과 대화를 하며 가까워지기 위해 노력해야한다. 



멕시코에서 잠깐 만났던 동행들과 헤어지고 다시금 혼자의 시간. 굶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멕시코에서 공수해온 라면과 와라즈 시장에서 구입한 '그라나디야' 를 후식으로 곁들여 먹었다. 그러던 중 어디선가 들려오는 한국어. 눈은 라면을 향해 있었지만, 귀는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한 한국인 한분이 내 옆자리에 앉는 것이었다. 나는 용기를 내서 말을 걸었다. (사실 너무 반가웠다)


"안녕하세요."


"아! 안녕하세요."


대화를 이어갈 찰나, 한 한국인 무리가 그쪽으로 모여드는 것이었다. 나는 그대로 침묵.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나는 다시 라면을 먹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귀는 그쪽으로 쫑긋.


그때, 내 귀를 때리는 한 마디.


"혼자 여행오셨어요? 이따 저녁에 같이 삼겹살을 사서 구워먹기로 했는데 같이 먹을래요?"


그렇게 성사된 저녁식사자리. 와라즈에 와서 69호수 트레킹을 같이 갈 동행을 구한 상태이고 현재 같은 숙소에 있다는 것을 말하지 못했다. 자연스럽게 알게 되겠지...



혼자 와라즈 동네 산책을 마치고 오후 5시쯤이 되었을까 오늘 저녁을 같이 먹기로 한 동행들과 만나 다시 숙소를 나섰다. 아르마스 광장쪽을 한번 더 구경하고, 각자 구입할 식재료를 분담한 뒤 흩어졌다. 나와 69호수 동행은 쌀과 맥주 등 기본 식재료를 구입했고, 다른 쪽은 환전을 하고 고기를 사러 갔다. 먼저 숙소에 도착한 나와 69호수 동행은 먼저 요리를 시작했다. 밥을 하기 위해 쌀을 씻어 물을 맡어 불에 올렸다. 과연 밥이 잘 될까 걱정이 되었지만... 


역시나 밥이 완전히 설익어버렸다. 어릴때 쓸 수 있는 핑계는 "여기 고산이라 그래!" 우리는 그 밥을 살리기 위해 고분분투했다. 나는 이런 밥만으로는 부족하겠다 싶어 멕시코에서 사온 라면을 가져와서 같이 요리하기로 했다.


그때 고기팀이 도착했다. 양만 봐도 엄청났다. 이게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삼겹살이 맞는건가? 너무 질겨서 잘 썰리지도 않았다. 거의 고기를 찢는다는 느낌이 가까웠다.



너무 두꺼워서 몇 번 뒤집고 자르고 다시 뒤집고 하는 과정들을 거쳐 대충 완성되어 가는 고기들. 이건 아무리 봐도 소고기 같다. 그렇지만 이런 요리과정을 거치면서 조금은 동행들과 친해진거 같았다. 거의 한시간을 넘도록 이어진 주방에서의 전쟁. 이러다 우리 절친되겠다.



고기가 완성이 되어갈 무렵 라면을 끓이고, 소세지까지 넣었다. 부대찌개 느낌으로. 


"맥주 꺼내자!" 오늘 들었던 말 중 제일 신나보이는 목소리. 이렇게 자리를 세팅하고 하나 둘씩 자리를 잡았다. 다 만들어진 모습을 보니 그럴싸 했다. 



"잘 먹겠습니다!!" 


고기는 풍선껌마냥 씹으면 씹을수록 더 질겨지는 느낌이었지만, 다같이 먹어서 그런지 맛있게 느껴지는 착시가 있었다. 밥 역시 라면국물에 같이 말아먹지만 따로 노는듯한 신기한 맛. 그럴때면 맥주로 입가심을 한번 한다. 


서로의 여행이야기를 들으며 깊어지는 밤. 대부분이 장기여행자라 여행지에서 있었던 흥미진진한 에피소드들을 많이 들을 수 있었다. 나도 동남아 중에 미얀마가 제일 좋았다는 말을 살짝 얹는다. 



낯선 곳에서 만난 반가운 한국사람들과의 저녁식사. 혼자 여행을 오게 되었지만, 혼자가 아닌 함께 하는 이 순간. 절로 따뜻해지는 밤이다. 내일 일찍일어나야되는 걱정은 살짝 밀어둔 채 여행자로서 공감하며 와라즈에서의 밤을 보낸다. 사실 여행을 하는 이유가 처음에는 좋은 곳을 보고 맛있는 것을 먹고 하는 것이었다면, 이제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다양한 이야기를 들으며 간접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 좋아서 하게 되는 것이 커진거 같다.


지금 나는 혼자이고, 또 나만 힘들다고 자책하지말자. 주변에는 너와 함께 걸어가는 사람들이 있고, 함께 힘내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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