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모니 여행기
안시에서 샤모니는 버스를 타고 한 시간 반 가량 걸린다. 버스를 타기 위해 안시역 앞에 있는 정류장으로 갔다. 낯선 곳이기 때문에 버스 정류장 앞에는 30분 전쯤 도착했고, 15분 전에 버스를 타는 곳 앞에서 대기했다. 13시 버스. 지금 시각 13시 5분 전. 우리가 타야 할 버스는 보이지 않는다.
허겁지겁 뛰어온 한 한국인 여성분이 우리에게 묻는다.
“샤모니 가시나요? 버스 아직 안 왔죠?” 우리는 태연하게 “네!”라고 대답한다.
버스가 늦는 거 같다는 묵언의 암시.
비슷한 버스가 오면 샤모니행 버스를 기다리는 듯한 사람들이 모두 모인다. 샤모니를 가려는 사람들은 겉치장만 봐도 바로 알 수 있다. 대부분의 목적이 트레킹이기 때문에 아웃도어 복장에 배낭을 메고 있다. 그리고 또다시 그들은 버스에서 한 발자국 뒤로 떨어진다. 샤모니행 버스가 아니었기 때문에.
15분 정도 기다렸을까? 드디어 샤모니행이라고 적힌 버스가 도착했다. 하지만 여전히 가시지 않은 의심. 우리가 예약한 버스가 아니었는데 티켓을 보여줬더니 이 버스가 맞다고 한다. 같이 기다린 외국인 친구와 함께 안도했다. “Finally.” 같이 웃으며 버스에 탑승했다.
우리가 예약한 좌석에 어느 한 어르신께서 앉아 계시길래 “Mon place…”라고 했더니, 좌석을 확인하시고는 자리를 내어주셨다. “메흐시 마담.” 알고 보니 Place는 여성형 명사였다. 그러므로 "Mon" 이 아니라 "Ma"였다. 갑자기 무슨 말을 하냐고? 쉽게 말하면, 프랑스어에는 남성형 명사와 여성형 명사가 있는데 성별에 따라 문법이 달라진다.
어쨌든, 우리는 버스 좌석에 잘 탑승했다.
샤모니는 스위스의 융프라우, 마테호른과 함께 알프스의 3대 미봉인 ‘몽블랑’ 이 있는 곳이다. 그렇게 때문에 샤모니로 가는 길은 웅장하면서도 아찔했다. 반득하게 깎아놓은 절벽 옆에 상대적으로 좁아 보이는 길을 따라 올라간다. 우리와 같은 버스 탑승객들은 이 장면을 카메라에 담기 바쁘지만, 버스기사님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운전을 한다.
그리고 우리의 버스는 주유소 같은 곳에 잠시 대기했다.
그리곤 한껏 상기된 목소리로 기사님이 소리친다.
“다음에 또 봅시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승객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다 함께 대답한다. “메흐시!!”
이제야 풀리는 의문. 원래 우리가 타려던 버스에 문제가 생겨서 다른 버스가 우리를 태우러 온 것이었다. 자기 근무 시간이 아닌데 운전을 도와주신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지금까지 느낀 프랑스인들의 일에 대한 생각은 평소에 일보다 개인의 시간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동료나 어떤 일에 문제가 생기면 자기 일처럼 거리낌 없이 도와준다는 것이다. 평소에는 가족처럼 일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다가 급한 일이 생기면 모르쇠 하는 우리나라와는 전혀 다르다. 이런 걸 진정한 ‘프렌치 시크’라고 하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에 빠져 있을 때 창 밖으로는 설산이 보이기 시작했고, 어느새 샤모니에 도착했다. 날씨가 너무 좋아 우리가 계획했던 첫 번째 플랜(?)을 진행시키기로 했다. 우선 숙소에 짐을 맡기고, 버스 정류장에서 미리 저장해 둔 케이블카가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트레킹을 시작하기엔 늦은 시간이어서 사람이 거의 없었다. 케이블카 티켓을 구매하면서 직원분이 한번 더 강조한다.
“17시 30분이 마지막 하차 시간입니다!”
아기와 함께 온 엄마, 산악자전거를 끌고 온 세명의 친구, 그리고 우리. 케이블카가 출발했다. 10분 정도 올라갔을 때 목적지에 도착. 내리자마자 우리를 반겨주는 웅장하면서 아름다운 알프스의 전경. 도착하자마자 카메라를 놓칠 수가 없었다. 우리에게 시간이 별로 없다는 것을 잠시 잊은 채.
원래 트레킹의 목적지는 의미가 없어졌다. 그녀와 단 둘이 이곳을 걷고 있다는 자체가 황홀한 경험이었다. 그러면서 가족생각이 났다. 드넓은 초원과 웅장한 설산에서부터 작은 꽃몽우리까지. 그리고 이곳에 있는 우리. 나중에도 기억해낼 수 있는 모든 수단을 활용하여 이 순간을 기록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인지하는 순간, 작은 스낵바가 보였다. 나는 맥주를 하나 구입했고. 그녀는 주스를 골랐다. 야외 좌석에 앉아 마지막으로 알프스 전경을 두 눈으로 담았다.
샤모니 알프스의 전경을 눈에 담기까지 ‘예상치 못한 만남’ 이 많았다. 그 만남은 ‘사람’일 때도 있었고, ‘상황’ 일 때도 있었다. 돌아보았을 때 예상할 수 없어서 더 즐거웠다.
예상가능한 일만 벌어지면 심리적으로 평온하겠지만 재미가 없을 것이다. 재미 하나만으로 인생을 사는 건 아니라도 ‘재미’라는 것은 인생에 큰 부분을 차지한다고 생각하고, 특히 여행에서는 더욱 그렇다.
어쩌면 나는 예상 가능한 상황을 계획하고, 그 계획이 깨지기를 바라는 것은 아닐까? 여행에서만 누릴 수 있는 소소한 일탈이라고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