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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o 떼오 Jul 08. 2024

파리에서 만난 사람들

결국 기억나게 하는 것은 사람들이다.

  파리에 머무른 지 두 달 여가 지났다. 

모든 것이 새롭고 낯설 때는 작은 호의와 친절에도 '내 안에 있는 세포 하나하나'가 반응하여 가슴 깊이 기억에 남았지만, 지금은 조금 익숙해졌다고 그 기억들이 희미해지기 시작한다. 그들의 호의를 잊지 않기 위해, 나도 그들처럼 남에게 좋은 기억을 줄 수 있도록 이제서나마 기록으로 남기기로 한다. 이미 기억에서 희미해진 많은 이들에게 죄송할 따름이고, 이 글을 쓰는 도중에라도 생각이 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 첫 번째 숙소 근처 피자집 아저씨


  한국 음식보다 유독 느끼한 게 당길 때가 있다. 오늘이 바로 그날이었다. 하지만 냉동피자는 먹기 싫었다. 갓 화덕에서 나온 피자가 먹고 싶었다. 그래서 숙소 근처에 피자집이 있는지 찾아보았고, 근처에 평점이 괜찮은 작은 피자집이 있어 더 늦기 전에 숙소에서 나와 피자집으로 갔다. 


내가 아는 피자란 '마르게리타' 밖에 없기에 그걸로 주문했다. 주문과 함께 피자도우를 힘차게 돌리더니 우리가 보는 바로 앞에서 둥글게 퍼진 도우를 둥글게 쭉쭉 늘린다. 거기에 토마토소스를 바르고, 치즈와 간단한 채소를 올렸다. 그런 행동들에 흥이 넘쳐 있었다. 피자가 화덕으로 들어갔다. 피자집 아저씨는 우리에게 흥이 채 꺼지기도 전에 계산을 받았고, 그 흥을 그대로 이어 화덕에서 피자를 꺼냈다. 


이런 과정들이 하나의 공연 같았다. 피자를 포장해서 가는 우리의 기분이 절로 좋아졌다. 사실 그 아저씨는 평소 하던 대로 피자를 만들고 계산을 받았을지 모르지만, 이 모든 게 낯선 우리로서는 기분 좋은 하나의 순간으로 남았다. 



# 발자크 박물관 안에 있는 작은 카페에서 만난 그녀


  이날도 어김없이 프랑스어 공부를 하러 카페에 갔다. 다만 항상 가던 스타벅스가 아닌 16 구 쪽에 있는 발자크 박물관 정원에 있는 작은 카페로 갔다. 자리가 마땅치 않아 이미 노트북 작업을 하고 계신 한분 옆에 조심스럽게 앉았다. 사실 나에게 자리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헤드폰을 쓰면 주위와 싶게 차단이 되는 스타일이라 바로 집중해서 공부를 할 수 있었다. 


헤드폰을 쓰면 내 말소리가 얼마나 큰지 알아차리기 쉽지 않다. 스크립을 노트에 옮겨 적으며 혼자 중얼중얼 입 밖으로 꺼냈다. 역시 내 말소리를 가늠하기 힘들었고, 사실 잘 신경 쓰지도 않는다.


헤드폰을 벗고 아내와 가벼운 수다를 떨며 쉬고 있던 중 옆에서 노트북을 하던 그녀가 주섬주섬 짐을 가방에 넣고 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우리를 보더니 하는 말, 


“프랑스어를 공부하는 너네 너무 아름답다.” 


나는 “프랑스어 어렵네. 고마워.”라는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그녀는 떠났다. 


나와 아내는 마주 보며 웃었다. 아마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겠지, 오히려 그녀의 사소한 말 한마디가 너무 아름다웠다. 나의 감정을 더 솔직하게 드러내기 위해서라도 프랑스어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



# 두 번째 숙소 코코 직원 분


  첫 번째 숙소에서 한 달을 보내고 두 번째 숙소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15 구 쪽 아래에서 7 구로 가게 되었다. 보통 에어비앤비는 개인과 개인과의 거래이지만, 우리가 구한 에어비앤비 집은 회사에서 관리를 하는 거 같았다. 연락을 취하는 것도 개인이 아닌 회사(‘코코’라는 회사였다)와 연결이 되었고, 계약서 같은 간단한 서류도 작성했다. 사실 나도 이런 적은 처음이라 연락을 취하면서도 계속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다. 


사실 그전에 다음 집은 에어비앤비를 구하기보다 파리 부동산 사이트나 프랑스존에서 한인들에게 집을 구하려고 했으나 그 집주인과 연락을 하던 중 뭔가 시원치 않는 것들이 계속 밟혀서 계약을 못했던 경험이 있어서 더 신경이 쓰인 게 사실이다. 


어쨌든 이사당일 새로운 숙소 주소로 갔다. 우리는 이전 숙소를 체크아웃하고 이 많은 짐을 가지고 어디 가 있을 곳이 없었기에 숙소에 짐을 먼저 맡길 수 있냐고 요청을 했었다. 코코 측에서 직원 한 명이 숙소 앞으로 갈 거니 걱정 말고 오라는 답변을 받았다. 그래서 체크아웃하자마자 바로 새로운 숙소로 갈 수 있었다. 


우버에서 내리자마다 한 남성분이 우리를 맞아주었다. 코코 측 직원분이었다. 그때까지도 경계를 했었다. 스몰토크를 하긴 했지만, 묘한 침묵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우리가 영어와 프랑스어가 잘 되지 않자 그분이 번역기를 써도 되겠냐고 물어봐서 우리는 ‘좋다!’라고 했다.


그때부터 그분은 숙소에 대해서 하나하나 자세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아니 번역기에 적어서 들려주기 시작했다.


“세탁기.” “냉장고.” “식기세척기.” 


집에 있는 가전제품과 가구들을 하나씩 번역기를 돌리며 우리에게 들려주었다. 이제야 그에 대한 의심이 사라졌다. 전정으로 우리에게 호의를 보이는 그의 모습에 결국 웃음을 참지 못했다. 1층에서 분리수거 쓰레기통까지 알려주고 그는 밝은 인사와 더불어 떠났다. 


우리는 만나보지도 못한 사람을 혹시 나쁜 사람이 아닌가 의심하고 있었다. 그게 뭐 나쁜 건 아니지만, 사람은 직접 만나서 대화를 해보기 전까지는 모르는 것이다. 덕분에 기분 좋게 체크인을 마치고, 새로운 숙소에 무사히 들어올 수 있었다.



# 보주광장 옆 히든장소에 있는 서점 직원과 어르신


  프랑스에 오기 전부터 즐겨보던 유튜브 채널이 있다. 바로 ‘조승연 작가님의 탐구생활’이다. 다양한 나라의 공간, 음식, 문화 등을 재미있는 역사적 사실과 더불어 설명해 주시는데 관심이 없던 곳도 자연스럽게 관심을 가지게 되는 매력이 있다. 보주광장의 히든장소도 이렇게 알게 된 것이다.


L’hotel de sully라는 곳인데 보주광장 바로 옆에 있는 작은 문으로 들어가면 아름다운 장소가 펼쳐진다. 그리고 그 광장을 지나 건너편 입구로 들어가면 조용한 서점 하나가 나온다. 고요하지만 뭔가 모를 신비한 느낌이 가득 차 있는 서점을 보고 결국 궁금증을 참지 못한 우리는 서점으로 들어갔다. 


조용히 서점구경을 하고, 마음에 드는 POP-UP 책이 있어 하나 사기로 결정했다. 나는 진열되어 있는 거 말고 혹시 새 책이 있는지 궁금해 프랑스어로 꾸역꾸역 새 책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그런데 직원분은 진열되어 있는 것도 새 책인데 왜 새 책을 달랐는지 이해를 못 하는 양 고개를 기우뚱거렸다. 나는 꼿꼿이 서서 새 책이 있느냐고 다시 물어보았다. 그제야 뭔가 느꼈는지 잠시 옆으로 가더니 비밀로 싸인 새 책을 가져다가 두 손으로 소중하게 내 앞 진열대에 놓아주셨다. 나는 크게 환호하며 “OUI!!”라고 하였다. 


이런 과정을 가만히 보고 있던 한 마담은 흥미롭듯이 어느 나라에서 왔느냐고 물어보고 여행으로 왔는지, 공부하러 왔는지 등등을 여쭤보셨다. 사실 나는 대부분 이해하지 못했지만 우리가 한국이라는 먼 나라에서 왔고, 이렇게 고군분투 하고 있구나, 그래도 잘하고 있단다 라는 마음이 느껴졌다. 그리고 마지막에 “BON CORAGE” (행운을 빌어)라는 말을 듣는데 너무 마음이 벅차올랐다.


프랑스어로 공부할 때 스크립으로만 들어봤지 실제로는 처음 들어봤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말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예상하지도 못한 곳에서 큰 힘을 얻었다. 


“마담! 지금은 비록 프랑스어를 잘 못해서 이 아름다운 나라에 대해 감사를 전하지 못하지만, 공부를 열심히 해서 꼭 내 마음을 전할게요 감사합니다!”



# 르봉마르셰 백화점 샤넬코너의 직원과 폴로 직원


  프랑스에서 가장 큰 세일행사가 시작되었다. 작은 상점들 뿐만 아니라 대형 백화점에서도 할인 행사를 진행한다. 이런 기회를 놓칠 수 없지! 우리는 르봉 마르셰 백화점으로 향했다. 


첫 번째 목표는 아내 립스틱이다. 평소 사고 싶었던 샤넬로 간다. 고심해서 색깔을 고른다. 처음에는 색깔들의 차이점이 보여서 ‘이건 밝아서 뭐랑 잘 어울리겠다.’ ‘이건 어두워서 어떤 계절에 잘 어울리겠다.’ 의견을 말해주지만 점점 색깔의 차이가 없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점점 눈빛이 희미해져 갔다.


하지만 우리가 립을 고를 때 옆에서 도움을 주는 직원분은 자신이 고르는 것처럼 진심으로 도와주었고, 몇 번이고 새로운 립을 바르는 것을 서포트해주었다. 아내가 마음에 드는 것을 골랐을 땐 ‘역시 그걸 고를 줄 알았다. 그게 가장 이뻤거든요~’라는 표정을 지으며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다. 계산을 마치고는 한국말로 ‘이쁘다’라고 해주셔서 깜짝 놀랐다. 그리고는 마음이 따뜻해졌다. 우리가 새로운 나라에 여행 갈 때 간단하게 라도 그 나라 말을 배워가야 할 이유이다. 


아내가 립을 샀고, 그다음에 내 셔츠를 사러 폴로로 갔다. 기본적으로 쇼핑을 못해서 마음에 드는 게 많지는 않았지만 그중에서 내 눈에 띈 흰색 셔츠가 있어서 한번 입어보고 그걸 구매하기로 결정했다. 역시 어색한 프랑스어로 계산을 마쳤다. 우리가 귀여워 보였던지 직원분이 어디서 왔냐고 물어봤고, 우리는 한국에서 왔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그녀는 여행으로 온 거냐면서, 프랑스어 진짜 잘한다고 칭찬을 해주었다.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가게를 나왔다.


이런 말 한마디 한마디가 하루를 정말 기분 좋게 만들어주는 거 같다.



  지금까지 파리에서 지내면서 감사해야 할 사람들을 많이 만났지만 이 정도로만 기록해두려고 한다. 사실 기록하려면 끝도 없을 것이고, 그분들의 사소한 행동과 말 덕분에 낯선 이 나라에서 즐겁게 여행을 하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프랑스에 온 이유 중 하나도 이것이었다. 그들의 자세, 태도를 배우고 싶었다. 사람의 눈을 바라보고 진심으로 감정을 전하고, 상대방의 말을 천천히 기다려주고. 처음에는 프랑스인의 이런 모습들이 보이지 않았다. 그냥 차갑게만 느껴졌었다. 하지만 그들의 눈을 보게 된 순간, 그들의 말을 기다려 본 순간 느꼈다. 차가움 속에 감춰진 진심으로 따뜻한 그들의 마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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