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

라파엘로, "아테네 학당"

by 룡하

(자화상을 보고 쓴 시입니다. 시와 자화상을 같이 보시길 바랍니다.)



절망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닭 한 마리를 빚지고 있으니

크리톤에게 잊지 말고 갚아달라고 한 소크라테스


죽음을 통해 삶이라는 질병에서

치유된 것에 대한 감사 의례인가


애초의 순수함과 건강을 회복하게 될 영혼

육체적 실존은 영혼의 병적인 조건이라네


영원하고 불변하는 사물의

본질적인 원형인 이데아여


절망적인 현실 속에서 지향해야 할

이상적인 세계를 나에게 보여 다오



라파엘로, 아테네 학당, 프레스코화, 1510~1511년, 5m x 7.7m, 바티칸 사도 궁전


라파엘로의 그림 <아테네 학당>의 중앙에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등장한다. 그림에서 왼쪽 무리는 플라톤의 사상을 지지하는 철학자들이, 오른쪽 무리는 아리스토텔레스 사상을 계승한 철학자들이 배치되어 있다. 그리고 근경과 원경을 기준으로 원경에는 철학자들이, 근경에는 과학자, 수학자 및 예술가들이 배치되어 있다. 이는 모든 학문의 기본이 철학에서 시작되었다는 르네상스적인 사상이 나타나 있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림의 중앙을 확대한 위의 이미지에서 왼쪽에 있는 플라톤은 오른손으로 하늘을 가리키고 있는데, 이는 이상세계의 관념론을 주장한 것을 상징한다. 오른쪽에 있는 아리스토텔레스는 윤리학 책을 들고 현실 세계의 행복을 중시했기에 땅을 향해 손바닥을 펼치는 몸짓을 하고 있다. 여기에서도 흥미로운 부분은 플라톤의 얼굴이다. 눈썰미 있는 독자들도 알 수 있듯이 어디선가 본 듯한 플라톤의 얼굴은, 바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얼굴이다. 아마도 라파엘로가 자신보다 연장자이며, 존경하는 선배인 다빈치를 이상세계를 주장한 플라톤의 얼굴로 표현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다면 그림 속의 숨은 작가 라파엘로는 어떤 모습일까? 그는 그림의 전경 오른쪽 끝에서 관객들을 보듯이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라파엘로는 자화상에서도 검은 모자를 쓰고 있곤 했는데, <아테네의 학당>에서도 자신의 모습을 흡사하게 표현했다.


왼쪽은 라파엘로의 자화상, '아테네 학당'속의 검은 모자를 쓴 라파엘로.


라파엘로는 역사 속에서 시대정신을 주장한 철학자들과 예술가들을 그린 <아테나 학당>에 자신의 얼굴을 의도적으로 삽입함으로써 자신도 이들의 정신과 융합되기를 바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모든 작가가 자신을 그림 속에서 위대한 사람으로 표현한 것은 아니다.


출처 : 정철훈, "라파엘로는 왜 자신을 그림에 남겼을까", 더칼럼니스트, 2023.01.22, https://www.thecolumnist.kr/news/articleViewAmp.html?idxno=1820


독배를 든 소크라테스와 사람들


자크 루이 다비드 (1748~1825년)는 신고전주의 양식에 속하는 프랑스의 탁월한 화가로 평가 받고 있다.

그가 그린 이 그림<사진>은 그림이 그려졌던 당대에 상찬을 받았다. 왜냐하면 부르주아 혁명으로서 당시 프랑스의 분위기는 소크라테스로 대변되었던 플라톤의 법에 대한 이해, 즉 맹목적으로 법문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올바름과 훌륭한 삶에로 지향, 다수 의견에 견주어 분별력을 문제 삼는 숙고의 필요성 등이 새로운 시대를 활짝 여는 중요한 시대적 요청이라고 판단했었기 때문이었다.


부르주아 계급은 새롭게 만들어지고 있었다. 세습되고 전승되었던 사회계급이 아니라 스스로가 새로운 질서를 세우고 따르면서, 새로운 사회적 계약관계를 통해 자신들의 계급 타당성을 증명해야만 했다.


무엇인가 새로운 기준이 필요했고, 기존 세력들과 계급에 비해 도덕적으로 월등히 우월해야만 했다. 그래야 자신들이 열어 보이고자 하는 세상이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 내고, 그 관계로부터 새로운 인간들이 정립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그것을 두고 계몽의 시대, 근대 이성중심주의 사상이 계획한 근대프로젝트로 이해하고 있다.


다비드는 그런 시대 흐름을 이해하고 있었다. 물론 다비드에게 <크라톤>이거나 최소한 소크라테스, 플라톤의 이야기를 전해줄 수 있는 정도의 사람(들)이 친분관계를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림을 감상하는 일에서 중요한 것은 이 그림에서 화가가 이 시대의 요청을 어떻게 이미지화 시키고 있는 살피는 일이다. 화가는 독배를 전해주는 극적인 시간을 그림에서 잡아챈다.


소크라테스는 한 손을 들어 자신이 피력하고자 하는 말을 강렬하게 전하고 있다. 그림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사람들은 절망에 빠지거나, 차마 이 순간을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없다. 그런데 비통한 모습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나 과장된 모습으로 몸짓을 한다.


출처 : 이섭, "소크라테스의 죽음 ‘법에 대한 플라톤의 이야기’", 용인시민신문, 2013.11.05, https://www.yongin21.co.kr/news/articleView.html?idxno=42214


1483년 4월 6일, 이탈리아 우르비노에서 서양 미술사의 큰 물줄기를 바꿀 천재 화가 라파엘로 산치가 태어났다.


라파엘로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와 함께 르네상스 전성기(High Renaissance)의 3대 거장으로 불린다. 짧은 생애에도 불구하고 서양 고전 회화의 완성형을 제시하며 미술사에 불멸의 발자취를 남겼다.


라파엘로의 업적 중 가장 독보적인 것은 선배 거장들의 장점을 흡수하여 자신만의 '완벽한 조화'로 재탄생시킨 능력이다. 다 빈치의 부드러운 명암법(스푸마토)과 미켈란젤로의 역동적인 인체 표현을 결합하여, 극도로 안정적이면서도 우아한 구도를 확립했다. 그의 대표작인 바티칸 궁전의 '아테네 학당'은 복잡한 인물 배치를 완벽한 원근법과 대칭 구조로 풀어내어 인문주의 철학의 정수를 시각적으로 구현했다는 찬사를 받는다.


그는 종교화에서도 혁신을 일으켰다. 이전 세대의 성모상이 다소 경직되고 엄숙했다면, 라파엘로의 '시스티나 성모'나 '검은 방울새의 성모'는 인간적인 자애로움과 이상적인 아름다움이 공존한다. 그가 그려낸 성모의 얼굴은 이후 수백 년 동안 서구 미술계에서 '여성미의 표준'으로 통용되었으며, 종교적 상징을 넘어 보편적인 인간의 감정을 전달하는 데 성공했다.


라파엘로의 화풍은 단순한 개인의 스타일을 넘어 서구 미술 아카데미의 근간이 됐다. 명료한 구도, 정제된 인체 비례, 그리고 조화로운 색채 사용은 19세기 신고전주의에 이르기까지 화가들이 반드시 익혀야 할 '교과서'였다.


그는 37세라는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으나, 그가 남긴 질서와 절제의 미학은 시대를 초월하여 시각 예술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경지로 평가받는다. 혼란스러운 현실 속에서도 인간이 지향해야 할 고귀한 '질서'와 '품격'을 화면 속에 완벽하게 담아냈기 때문이다. 그의 예술은 르네상스 인문주의가 꿈꿨던 이상적인 세계를 보여 주고 있다.


출처 : 김정한, "르네상스의 정점, 라파엘로 산치 탄생 [김정한의 역사&오늘]", 뉴스1, 2026.04.06, https://www.news1.kr/life-culture/general-cultural/6125965


이데아(idea)는 플라톤 철학의 중심 개념으로 모든 존재와 인식의 근거가 되는 항구적이며 초월적인 실재를 뜻하는 말이다. 근대에는 인간의 주관적인 의식, 곧 ‘관념’을 나타내는 말로 사용되었다. 이데아(idea)는‘보다, 알다’라는 뜻의 그리스어 ‘이데인(idein)’에서 비롯된 말로, 원래는 ‘보이는 것’, 곧 형태나 모양을 나타내는 말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는 마찬가지로 ‘보다’라는 뜻의 동사 ‘에이도(eido)’에서 비롯된 ‘에이도스(eidos)’와 이데아의 의미를 구분해서 사용했다. 둘 다 ‘형태’라는 의미를 지니지만, 에이도스가 구체적으로 현상되고 감각되는 사물의 형상(形象)을 가리키는 데 비해서 이데아는 육안이 아니라 마음의 눈으로 통찰되는 사물의 순수하고 완전한 형태를 가리킨다. 곧 이데아는 인간이 감각하는 현실적 사물의 원형으로 모든 존재와 인식의 근거가 되는 항구적이며 초월적인 실재를 뜻한다.


이데아를 철학에 처음 끌어들인 사람은 플라톤이다. 플라톤은 이데아를 영원하고 불변하는 사물의 본질적인 원형(原形)이라고 보았으며, 구체적인 현실의 사물은 단지 이데아의 모사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또한 현실에 존재하는 사물들은 끊임없이 변화하며 일시적인 속성을 지니지만, 이데아는 불변하며 항구적인 속성을 지닌다고 보았다. 그리고 진정한 철학자는 가시적인 사물의 세계가 아닌 사물의 본성과 원형에 대한 인식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플라톤은 정신, 곧 ‘지(知)’를 통해서만 이데아를 인식할 수 있다고 보았으며, 정신이 이데아를 발견하는 방식을 세 가지로 제시했다. 첫째는 상기(anamnesis)이다. 그는 인간의 영혼은 육체와 결합되기 전에 이미 이데아들과 친숙했다고 보았다. 따라서 인간의 영혼에는 이데아에 대한 지식이 선험적으로 존재하고 있으며, 인간은 사물과의 감각적인 접촉을 통해서 망각되었던 사물의 본성에 대한 인식을 다시 상기하게 된다는 것이다. 둘째는 변증(辨證)이다. 인간은 사물의 본성에 대한 지적인 탐구를 통해서 사물들의 상호 관계를 발견하고, 사물의 본질을 추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셋째, 사랑(eros)이다. 어떤 특정한 대상에 대한 사랑은 그와 유사한 모든 형상들에 대한 사랑으로 확장되고, 나아가 외형적인 것에서 정신적인 것으로 발전한다. 곧 지(知)에 대한 사랑은 인간의 인식을 항구적이고 보편적인 이데아의 세계로 단계적으로 이끌며, 무지를 일깨우는 일에 참여하게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플라톤은 감각적 사물들로 구성된 가시적인 세계와 별도로 정신으로만 인식할 수 있는 이데아계가 객관적으로 실재한다고 보았다. 나아가 이데아야말로 궁극적인 참된 실재라고 보았다. 이러한 이데아론은 물질적 요소를 중심으로 세계의 본질을 이해하였던 그리스의 자연철학적 전통에서 벗어나 가치 중심의 형이상학적 철학의 전통을 낳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플라톤은 비물질적이며 항구적인 속성을 지니는 이데아가 참된 실재라고 주장함으로써 물질적 세계를 초월하는 절대적인 가치 판단의 기준과 진리가 존재한다고 보았다.


출처 : 오미경, "특별한 경험, 이데아", 한국경제, 2017.11.12, https://www.google.com/amp/s/www.hankyung.com/amp/202103237019Q


이 글은 플라톤의 대화편 『파이돈』에 나오는 소크라테스의 마지막 말에 대한 한 가지 해석을 제시하고자 한다. 파이돈에서 소크라테스는 독약이 온몸에 퍼진 것을 느끼는 마지막 순간 얼굴을 덮고 있던 것을 벗기며 다음과 같이 마지막 말을 남긴다. “크리톤, 우리는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닭 한 마리를 빚지고 있네. 부디 갚아들 주게. 잊지 말고.” (파이돈, 118a7-a8)1) 희랍어로 보면 11개의 단어에 불과한 이 말을 두고 한 연구자의 정리에 따르면 21가지의 서로 다른 해석들이 존재할 정도이니, 참으로 수수께끼같은 말이 아닐 수 없겠다.2) 그도 그럴 것이 소크라테스가 이 말을 죽기 직전에 그것도 불쑥 남겨놓는 까닭에 다른 대화편은 물론이고 파이돈의 해당 대목 전후에서도 해석의 단서를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 오늘날 많은 이들의 지지를 받는 한 해석은 사실 신플라톤주의까지 거슬러 올라간다.3) 이 전통적 해석은 우선 아스클레피오스가 질병의 치료와 관련된 신임에 주목한다. 따라서 소크라테스가 갚아주길 부탁하는 닭은 질병의 치료의 대가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 질병은 무엇을 가리키는가? 그것은 다름 아닌 ‘삶’이라는 질병이다. 파이돈편 전체가 이러한 해석을 뒷받침하는 것처럼 보인다. 즉 삶이란 철학자에게 장애물과 같으며 ‘철학은 죽음의 연습’이라는 그의 말이나 죽음 앞에서 의연한 그의 태도는 소크라테스가 삶을 질병으로 보았을 것이라는 해석을 뒷받침하는 것이다. 그리고 만약 삶이 질병이라면 역설적이게도 그것의 치유는 죽음이 된다. 따라서 전통적 해석에 따르면 소크라테스는 마지막 말에서 죽음을 통해 삶이라는 질병에서 치유된 것에 대한 감사의 의례로 크리톤에게 자신을 대신하여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닭 한마리를 바치기를 부탁하고 있는 것이다.4)


1) 전헌상 (2013), 164. 번역 일부 수정. 이하 이 글에서의 파이돈의 인용은 앞의 책을 따르되 쪽수 표시는 생략하고 스테파누스 쪽수만 적기로 한다. 더불어 이 글에서 인용한 변명, 크리톤, 파이돈의 스테파누스 쪽수는 OCT 신판을 기준으로 하였다.

2) Peterson (2003), 33. 그가 제시하는 해석들을 경향에 따라 대략 정리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1)소크라테스의 마지막 말에서 의미 있는 내용을 발견하기 어렵다는 입장이 있다. 예컨대 소크라테스가 죽음을 앞두고 정신착란에 빠져 한 말이라거나 의도적으로 수수께끼처럼 말하고 있다는 해석이 그것이다. 2)모종의 과거의 사건과 관계있을 것이라는 해석이 있다. 예를 들어 아테네를 휩쓸었던 전염병에서 살아남은 것이나 소크라테스(와 크리톤)가 과거에 진 빚과 관계있을 것이라는 추측이 그것이다. 3)아스클레피오스에 대한 의례를 감사보다 청원에 가깝게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즉 소크라테스는 지금 죽음이나 죽은 뒤 겪게 될 불행 혹은 오르페우스교적 환생을 피하고자 의례를 부탁하고 있다는 것이다. 4)그 의례를 감사의례로 보면서도 감사의 이유를 질병 및 치료와 연결짓지 않는 경향이 있다. 신체적으로 고통 없이 죽게 된 것 혹은 도덕적으로 건강하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게 된 것에 대한 감사라거나 나아가 평생 그를 돌보아 준 것에 대한 감사로 보는 해석이 이에 속한다. 5)아스클레피오스의 치료에 대한 감사로 보는 해석에서도 문제의 질병과 치료를 둘러싸고 다양한 해석이 있다. 삶 자체, 불사에 대한 의심, 논변 혐오, 심지어는 플라톤이 소크라테스의 죽음 당시 앓고 있었던 병 등이 아스클레피오스가 치료해준 질병으로 거론된다. 이에 대해서는 Peterson (2003), 34-35 참조. 물론 Peterson 자신 또한 새로운 해석을 보태고 있기에 실제로는 21개 이상의 해석이 있는 셈이 된다.

3) 소크라테스의 마지막 말에 대한 고대 로마 주석가들의 해석과 신플라톤주의적 해석에 대해서는 Edelstein (1945), 131-132 참조.

4) 예컨대 Archer-Hind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소크라테스의 마지막 말은 그의 앞선 이야기의 전체 취지와 완전히 일치한다. 그의 영혼은 몸, 그리고 그에 따라 다니는 질병들로부터 해방되기 직전이며 곧 자신의 애초의 순수함과 건강을 회복하게 될 것이다. 육체적 실존은 실제로 영혼의 병적인 조건이며 죽음은 바로 그것에 대한 치료인 것이다.” Archer-Hind (1883), 180.


출처 : 진성철. (2022). 소크라테스의 마지막 말에 대한 해석 —자기돌봄의 관점에서—. 서양고전학연구, 61(2), 2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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