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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아렌트, "고독"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by 룡하

아렌트는 우리가 ‘혼자’일 때 갖는 감정을 세 가지로 나눈다. 우선 고립감이다. 고립은 세상의 질서와 공적 영역에서 소외되어 있다고 느끼는 감정으로, 개인이 공적 존재로서 철저하게 배제된 상황과 관계가 있다. 그래서 아렌트는 “고립은 테러의 가장 비옥한 토양이며 고립은 그 자체가 전체주의의 예비단계이다”라고 말한다. 다시 말하면 전체주의는 고립된 사람들이 드러내는 잘못된 충성심의 결과로 퍼져 나가는 재앙이다.


반면에 외로움은 소통과 공감의 부재로 인한 감정이다. 타자들과의 관계에서 소외감은 물론이고 사람들과 함께 있어도 혼자라고 느낀다. 더 나아가 외로움은 타인은 물론 내면의 ‘나’마저 대화의 상대가 되지 못하는 자기부정의 감정이다. 이런 의미에서 외로움은 외적 고립과는 관계없이 자기 자신과의 내면적 대화의 불가능 상태와 연결된다.


아렌트가 말하는 나와 또 다른 나의 객관적 분리의 어려움으로 스스로가 ‘나’의 동행자가 되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자아 상실의 토대 위에서 더 깊어지는 외로움은, 불합리하고 설명되지 않은 현실에 직면할 때 외면과 도피 쪽으로 쏠리기 쉽다. 스스로 생각하는 대신에 즉흥적이고 일방적인 타인들의 판단에 휩쓸려서 소통이라고 믿으며 외로움을 떨치고자 하는 것이다.


세 번째로 혼자 있는 상태는 고독이다. 아렌트가 말하는 고독은 외로움과 어떻게 다른가? 고독은 혼자이기를 스스로에게 요청하며 자기 자신과 대화하고 사유하는 실존적 삶의 다른 이름이다. 그래서 혼자 있다고 해서 그것이 곧 고독이라고 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고독은 자신과 함께하며, 자신과 질문하고 대답함으로써, 한 개인이 삶의 주체로서 자기기만과 허상을 내려놓는 시간과 공간이다.


이런 의미에서 고독은 자아 부정을 극복하며 외로움에 굴복하지 않는 최선이라고 아렌트는 말한다.


즉 고독은 외로움이 두려워서 밖으로 향함으로써 왜곡되고 굴절되었던 시선을 내면으로 돌리고 자신에게 회귀함으로써, 공동체 관계에서도 자신을 주체로서 정립하는 과정이다.


출처 : 심옥숙, 광주일보, ‘나’와 마주하는 고독으로의 초대, 2020.07.06, http://www.kwangju.co.kr/article.php?aid=1593961200699150078


대학 졸업을 앞두고 있는 지금 혼자만의 시간이 많아졌다. 이는 한나 아렌트에 의하면 혼자 있으며 나의 내면과 대화하기 때문에 외로움이 아닌 고독의 상태라고 생각한다.


고독의 상태에서 나의 내면의 목소리를 들었다. 나는 내가 한국의 복지를 누리고 사는 것은 윗세대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도 다음 세대가 더 나은 삶을 살도록 기여하고 싶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아니 움직일새 꽃 좋고 열매 많나니 샘이 깊은 물은 가뭄에 아니 그칠새내를 이뤄 바다에 가나니

-용비어천가 제2장 해석문-


뿌리 깊은 나무를 기초가 튼튼하다는 뜻으로 해석한다면 기초가 튼튼해야 흔들리지 않고 열매를 맺을 수 있다. 튼튼한 기초의 조건으로 역사를 아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여 헤리티지 미디어아트 갤러리를 생각했다.(궁금하면 이키가이 편을 보기 바란다.) 또한 미래 세대가 더 나은 삶을 사는 것에 기여하고 싶어 친환경과 관련된 사업을 하고 싶다.


돌아보면 10대의 나보단 지혜도 경험도 많아지긴 했지만 지혜와 경험이 많아진 만큼 내가 알지 못하는 지혜와 내가 해보지 못 한 경험이 많다는 걸 더 뼈저리게 느낀다. 이럴수록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혼자 묵묵히 나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좋아하는 불교 경전으로 글을 마무리하겠다.


홀로 행하고 게으르지 말며

비난과 칭찬에도 흔들리지 말라.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진흙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숫타니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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