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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따라 왜 이러지...
요즘.. 내 기분이 왜 이러지?
심리상담에 찾아오는 이들에게 가장 먼저 묻는 것 중 하나는 바로 "계기"이다.
어떤 상황, 어떤 것으로 인해 상담에 찾아올 정도로 고통을 경험한 것인지, 혹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를 의미한다. 그래도 상담을 찾아온 사람들은 최소한 <자신의 고통을 덮어두지 않고 싶은> 마음이 있는 사람들이다. 여전히 한국에선 상담을 찾는 것이 어색하고 원치 않은 것 중 하나이기에.
사람들은 찾아와서 나에게 묻는다.
"제 기분이 왜 그런 거죠?"
"왜 이런 기분이 드는 거죠?"
"어떻게 하면 이걸 없앨 수 있죠?"
그렇다 그들이 가장 자주 많이 묻는 것은 <원인>, <해결책>이다. 고통을 크게 느끼는 사람일수록 이를 아주 갈구한다. 왜냐하면 너무 힘들기 때문이다. 당장에 뭐라도 하지 않으면 미칠 것만 같기도 하고, 이상한 이 기분을 안고 하루하루를 건너가는 게 너무 힘겹기 때문이다.
이것이 누적되고 쌓이면... 이를 경험하는 나 자신조차 너무 마음에 들지 않고, 나에게 무슨 엄청난 하자가 있는 것 같게도 느껴지고, 내가 무슨 잘못을 했길래 이런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인지 원통하기까지도 하다.
그래, 당신은 원인을 알고 싶고 당장 이걸 해결하고 싶다 말한다
더욱 답을 못 찾고, 답을 알아도 실천하지 못하는 자기 자신이 너무 괴롭다.
그렇다... 당신은 원인을 알아야만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느끼고 요구한다.
그래서 어떻게 하라는 거지?
그래..
그래서?!
그게 어떻게 된다는 거지?
많은 상담자들이 있다.
당신이 건네는 질문을 마주하고 답을 내리는.
그들은 때로 당신이 왜 그런 기분이 드는지, 한두 마디 말을 들은 뒤에 건네기도 하고, 진단을 내리기도 한다. 그게 어떤 감정인지 당신이 알지도 모르고 대답하지도 않았음에도 그 감정이 <무엇>이라고 말한다.
"슬픈 거네요." "화가 났네요"
"그러면 당신은.... 해야 돼요. 그렇게 하면.... 될 거예요."
그럴까? 필자도 상담자 이전에 상담을 받아본 내담자이기도 하다. 그 기분이 어떤지 아주 잘 알고 있다. 과연 그런 번지르르 한 <해결책>으로 둔갑한 말이 당신의 고통을 낮춰주었는가? 그게 오랫동안 유지되던가? 며칠, 몇 주 만에 다시 되돌아오진 않았는가?
당신이 괴로운 이유 중 하나는 그 감정이 무엇인지 몰라서이기도 하겠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당신이 괴로워하는 그 감정이 무엇인지를 넘어서, 이를 어떻게 대하고 다뤄왔는지가 지금의 고통에 이르게 했다. 필자는 이에 꽤나 확신한다. 지금 잠깐 돌아보자. 내가 지금 고통스러워하는 감정을 느낄 때 이전에는 어떻게 다뤘는가?
혹시 그냥 묻어버리거나,
이건 그게 아닐 거야 하고 부정하거나,
내가 이런 생각을 하니까 이런 기분이 드는 거겠지 뒤돌아 버리거나, 누구나 이 정도는 이러지 않나 하고 합리화하거나 일반화하면서 지나오지 않았나?
필자가 가장 먼저 당신의 고통에 반응하는 처음은 그저 그 <감정, 정서>에 머무르는 것이다.
잠깐! 조금이라도 느끼고 있으면 속이 타들어가는 것 같고 머리가 혼미한데 거기에 머물러 있으라고???!
그렇다. 당신의 고통을 모르는 것이 아니나, 그것이 지금 상담자인 내가 당신의 어려움을 변화시키기 위한 첫 단계이다. 쉽지 않은 것은 물론 믿고 싶지 않고 따르고 싶지 않은 거부감이 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여기 최소한 상담에서만큼은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이전에 당신이 거쳐 지나온 괴로운 순간과 고통 속에서는
혼자였을지 모르지만, 그래서 혼자서 삼켜내고, 아닌 척 괜찮은 척 웃어 보이고,
감정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약자가 되어버리고 패자가 되어버린다고 여겨왔을 수 있다.
얼마나 힘들었고, 힘겨웠을까..
얼마나 외롭고 고독했을까...
하지만 여기선 잠깐이라고 해도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그것이 상담에서 이뤄지는 과정이다. 상담자인 나는 당신이 이전처럼 스스로 상처 입히는 방식으로 고통을 가중시키는 방식으로 당신을 내버려 두지 않는다.
당신의 호소하고 있는 그 감정이 어떤 모습이길래, 어떤 것에 대한 슬픔인지, 분노인지, 원통함인지, 찌릿함인지, 무너 내리는 느낌인지.... 무엇에 대한 것인지 기꺼이 나누고자 한다. 그것이 그 감정을 있는 그대로 만나는 시작이 된다. <해결책> <결론>이 아니다. <시작>이다.
정서중심치료 (Emotion-Focused Therapy, EFT)
수많은 사람들이 경험한 치유적 변화 과정을 연구하고 정립한 이론인 정서중심치료에서 보는 변화의 첫 시작은, 감정/정서를 진단하고 평가해서 그것에게 해결책을 선사하는 것이 아니다. 진정으로 깊이 있는 유지되는 변화가 형성되는 시작은 정서를 있는 그대로의 <허용>하는 것에서 시작된다고 설명한다.
당신이 어떤 감정에서 벗어나고 싶은 <변화>를 만들고 싶을수록 그것을 강제로 밀고 당기고 덮고 쫓아내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봐주지 못했고 매몰차게 뒤돌아야 했던 숱한 과정에서 이해받고 싶었던, 공감받고 싶었던 그 감정을 있는 그대로 충분하게 마주하고 받아들여주는 것이 필요하다.
여기서 받아들임은 <수용>이 아니다. 어떻게 보기 싫고 힘겨운 어떤 것을 마음으로 바로 받아들이겠는가? 여기서 말하는 받아들임은 그저 "그렇구나" "내 이것은 이거구나" "이런 감정이었구나" "이런 아픔이었구나" 하고.. 그저 '먼저' 인정하는 것이다.
잘했다 못했다 어떻게 해야 한다 어떻게 하지 말아야 한다.. 이런 요구사항이 아니라, 이것이 여기에 이렇게 있구나 하고 그냥 봐주는 것. 바라보는 것. 그곳에 그것이 있다는 것을, 나에게 이런 감정이 이런 모습으로 있다는 것을 알아주는 것이다.
당신의 감정은 지금까지 숱하게 거칠게 다뤄졌다.
올라올 때마다 매몰차게 무시당하고 부정당했을지도 모른다
느껴질 때마다 아니라고 잘못된 거라고 느끼면 안 된다고 내팽겨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누구보다도 먼저 누구보다도 진심으로 그 감정을 이제는 무시하고 부정하는 방법이 아닌, 이해받고 공감받고 싶은 당신의 그 마음처럼 조금만 조금만이라도 잠시만이라도 짧은 순간만이라도 바라보자. 약간의 위안을 허락해 주자.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바로 여기에 당신은 물론 상담자인 나도 기꺼이 함께 할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