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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휘둘리는 이유는 못나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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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지

당신이 휘둘리는 이유는 못나서일까?

... 아니, 몰라서다




거기, 당신..!

혹시 오늘도 지금도 휘둘리고 있는가?

다름 아닌 누군가 때문에 말이지




우리는 휘둘린다. 언제 어디서나 그렇다. 그건 이상한 것도 잘못된 것도 아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휘둘리기 마련이니까. 특히 걱정되는 것을 앞두고 있을 때, 불안이 넘쳐흐를 때 말이다.



어느 날 전화가 왔다. 여김 없이 밤에 말이지, 필자가 가깝게 지내는 친구였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다급하면서도 짙게 깔려있는 무기력함을 전하고 있었다. 솔직히 의외였다. 왜냐하면 그녀는 필자의 주변 지인들 중 꽤나 자신의 감정이나 마음 상태를 잘 돌보는 편이었고, 그래서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 그러니까 고민이 있을 때 스스로 큰 어려움 없이 선택하는 사람이었으니까. 그리고 누구보다도 자신의 선택에 대한 책임을 가볍게 여기지 않는 사람이다.



그녀의 고민은 그랬다. 헤어진 전 연인에게 문자를 해야 할지 전화를 해야 할지 고민된다는 것이었다. 바로 올라오는 말을 머금고 물었다. 지금 그러고 싶은 그 마음의 이유, 혹은 목적이 무엇인지 나는 먼저 물었다. 그녀는 지금 자신의 마음을 모르겠다며 나의 질문에 대답하길 상당히 어려워했다.



나는 대신 답을 주고 싶지 않았다. 음.. 솔직히 답을 주기 싫다고 하는 게 맞겠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도 너무 잘 안다. 나도 그래봤으니까. 상대방일 때는 답을 주기 꺼려지는 마음이지만, 당사자 입장에서는 누구에게 조언과 선택을 대신 듣고 싶은 그 마음. 그녀는 분명 그랬을 것이다.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기보단 자신의 상황을 잘 알고 있는 누군가, "이렇게 해봐, 다들 그렇더라" "내가 들었는데.... 하면 보통은 상대가.... 할 거래"라고 조언해 주고 답을 주길 말이다. 그래서 지금 자신을 짓누르는 고민과 걱정의 무게에서 당장 벗어나고 싶은 거겠지. 너무 알겠는 마음이다 진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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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를수록 뻗게 된다. 그게 인간의 본능이다.

휘둘리고 휘청일 때 손을 뻗어 주변의 무엇이든 움켜잡는 것



눈앞이 깜깜할수록 밖으로 뻗어 더듬거릴 수밖에 너무도 당연하다. 당신도 그렇다. 여기에 예외란 없다. 혼자서는 지금 당장 버겁기 때문에, 답이 안 나오기 때문에 일단 뭐라도 움켜잡기 위해서다. 그러면 당장의 두려움과 무서움을 덜어낼 수 있고 어디로 갈지 갈피라도 잡을 수 있을까. 잡게 될 무엇이 조금이라도 괜찮게 만들어 줄 거란 기대로 위안을 삼는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이 "그렇더라"에 휘둘린다. 그리고 그에 따라 선택을 내리고 책임을 지기도 혹은 책임에서 온 힘을 다해 도망가기도 한다. 누군가와 얽혀있는 관계에선 더 많은 고민과 생각, 마음앓이가 오간다. 누구는 이를 시련이라고 부르기도, 아물어가는 과정, 빛을 보기 직전의 순간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 밤, 그 순간은 다시 떠올려봐도 정말 길었다. 지금 이 순간만 시간이 늘어져 버린 게 아닐까 할 정도로 말이다. 나는 고민하고 있었다. 전 연인에게 구구절절 마음을 전하기 위해 적은 메시지를 보내야 할지 말지, 방구석 한쪽에 쪼그려 앉아서는 핸드폰 화면을 멍하니 보고 있었지만 속은 타 들어갔다.


"뭐라고 생각할까?" "마지막에 쿨하게 잘 인사했는데, 찌질하다고 보는 거 아냐?" "더 질려버리면 어쩌지?" "씹히는 거 아냐?" "보내지 말까?"


수많은 생각이 오갔고, 답답한 마음에 연락을 통하지 않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답을 요구했다. 보내야 할까 말까. 보낸다면 어쩌고, 안 보낸다면 답답한 이 마음은 어찌할지 구구절절 떠들어댔다. 마치 막힌 골목을 앞에 두고 발만 동동 구르면서 그 자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아린 아이처럼. 난 그 순간에도 문뜩문뜩 그 친구가 날 어떻게 볼지 떠올리면서 얼굴을 붉혔지만, 그 순간엔 그 친구가 어떻게 볼지 보단 날 짓누르는 무게에서 벗어나고 싶은 게 먼저였다.




"다들 그러더라"라는 환상일 뿐이다 나는 그렇게 말하고 싶다.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실연 후 분노 5단계'처럼. 실체 없는 -카더라'만 떠돌아다닌다. 그건 사람들의 걱정과 불안이 빚어낸 환상일 뿐이다. 이렇게 하면 전 여자친구/남자친구에게 이런 답이 오더라' 등 말도 안 되는 자들이 돌아다닌다. 그건 연약하고 빨리 벗어나고 싶은 사람들이 만들어낸 불안 덩어리일 뿐이다. 조금이라도 당장 안심하고 싶은 사람들이 만들어낸 허상이다. 그래서 실체가 없다. (특히 그런 것들은 연구를 통해서 제대로 밝혀진 것들이 하나 없다!)


어쩌다 누구 하나가, 한 번 맞아떨어지면 그건 그 사람에게 실제'가 되기 때문에 현실이 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에겐 흩어져서 사라진다. 수많은 과학적 연구를 통해서 밝혀진 사실 중 하나는, 인간은 어느 동물보다도 감정이입을 잘할 수 있으며, 풍부한 상상력을 가졌으며, 실체가 없는 무엇에 깊은 믿음을 가질 수 있는 존재라는 거다. 그래서 그런 실체가 없는 환상에 혼을 불어넣어 껍데기를 입혀서 '자신만을 위한' 실체인 것처럼 믿을 수 있는 것이다. 수많은 변인과 변수로 만들어진 것이 사람의 마음이고 정신이며,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이고 세상이다. 이를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많은 이가 조금만 자기와 관련이 있다고 여기는 순간, "이건 내 얘기잖아!"라고 확신하며 실제로 맞지 않는 옷에 스스로를 짓이겨서 끼워 맞추곤 (순간적으로) 만족해한다. 마치 그 옷이 정말 자기한테 맞는다고 여기면서.


정말 그게 당신이 원하는 스스로의 모습인가?

내가 원하고 바라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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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아니다. 아마 당신은 아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어느 누구도 자기 자신을 으스러져서 사라지길 바라지 않는다. 누구보다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돌보고 중심을 잃지 않는 게 먼저이다. 마음과 정신은 휘둘릴 때 주변의 것에 무작정 매달릴수록 당장은 약간의 위안이 찾아오는 듯 보일지라도 나의 중심을 으스러뜨리는 균열이 돼버린다.



휘둘릴 거 같은 느낌이 넘실댈 때 중심을 세워야 할 곳은 밖이 아니라. 안이다. 내면의 중심을 더 단단히 세워야 한다. 그럴 수 있으려면 스스로를 알아야 한다. 상대방을 분석하고 상황을 내가 만든 환상에 끼워 맞추고는 여전히 남아있는 마음속 까끌까끌함을 덮어버리는 게 아니다. 나를 제대로 알고 돌볼 수 있어야 한다. 나 자신을 알아야 하는 순간이 필요한 것이다.



내가 정말 간절히 원하는 것, 지금 나의 상태가 정말 어떤지는 주변의 그 무엇으로 알 수가 없다. 알 수 있을 거라 믿고 싶은 것이지. 자기 자신에게 등을 지고는 제대로 알 수 없다. 나를 알고 싶다면 무엇보다도 먼저 제일 나를 바라보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안다 알고 있다. 이는 쉽지 않다. 너무도 어려워서 버텨 내기 힘들 때가 대다수다. 그렇다고 내가 나를 포기할 수 없지 않은가?



인정하고 이해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나 자신이 이런 마음을 품고 있다는 것이, 이런 생각과 욕구가 넘쳐난다는 것이.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그 내용을 먼저 보려고 하기보다, 그 마음을 품고 있는 자신이 가장 원하고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들어줘야 한다. 그리고 그 무엇이 얼마나 나에게 중요하고 의미가 있는지 살피는 것이다.



약간의 침묵이 흐르고 난 뒤, 그녀는 말했다.


"...... 뭔가 하고 싶은 건 아닌 거 같아. 그냥 연락을 하고 싶어. 지금 난 힘들어서 그래. 뭔가 당장 그 사람이랑 뭘 하겠다는 목적은 모르겠어.."


반가웠다. 진짜 그녀가 원하는 것에 더 가까워진 거 같았다. 그 후로 나와 그녀의 대화가 조금 더 오갔고 나는 마지막 대답으로 다음과 같이 말하면서 대화를 마무리했다. 그녀에게 언급은 안 했지만 약간의 가벼움이 그녀의 목소리에서 묻어났던 거 같다.


"그게 네가 원하는 것이고 바라는 거면 그걸로 된 거야. 네가 원하고 힘들어서 그렇다는 것 자체가 중요한 거지 그 외 뭐가 더 있겠어. 연락을 하고 싶은 건 그 때문이지. 그렇다면 그냥 연락하고 싶은 것 자체가 그 목적이 되는 거야. 너도 나도 모든 사람들이 모든 말과 행동에 목적을 찾으려 하지만 때론 그 자체가 목적인 거 같아. 그 자체가 중요한 거지"




나를 돌보는 건 쉽지 않다. 대신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수많은 위로의 글과 공감 글귀들이 넘쳐난다. 서로가 위로하고 위로받는다. 하지만 누군가의 말, 대신 내려주는 선택이 따뜻한 위로가 될 수는 있지만 스스로 하는 위로만큼 뭉클하진 않다.



나를 돌보는 방법은 수없이 많다. 중요한 건 내가 무엇을 원하고 무엇에 위로를 받는지는 내가 나를 돌아보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다. 남에게 조언을 구하고 핸드폰을 들어서 검색하는 건 어렵지 않다. 아주 순식간에 이뤄질 수 있고 그렇기에 가볍게 사라진다. 진짜 와닿는 위로는 마음에 꽂히면 사라지지 않는다. 필자는 실제 경험에서도 그랬지만, 내가 나를 돌아보고 지금 이 순간에 느껴지는 감정과 느낌에 집중하고 이해하고 받아주고 수용할 때 그 위로는 절대 다른 것과 비교할 수 없다.



당신에게 없지 않다. 단지 해보지 않아서 어색할 뿐. 어색하다고 당신을 계속 휘둘리도록 내버려 둘 것인가? 아닐 것이다. 당신이 어려워하는 이유는 못나서가 아니라 몰라서다. 당신 자신에 대해서, 그리고 그 방법을 몰라서다. 몰랐다면 이제부터 해보면 될 뿐. 지금이 바로 그 시작이 되길 바란다. 더 이상 휘둘리지 않고 자신만의 중심을 세워갈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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