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숲 나들이는 어땠나요? 생각보다 따님의 발걸음이 아주 가볍더군요. 피곤한 기색도 없이 시종일관 즐거운 얼굴로 걷는 것을 보고 많이 달라졌다고 느꼈어요. 집 근처 공원으로 산책을 나가자고 해도 휴대폰만 만지작 거리던 예민한 여자애가 저렇게 변했구나 하고요. 운동을 싫어하던 따님이 요가를 하고, 종종 친구들과 산에 오르는 걸 보면서 아빠는 '얘도 나이가 드는구나' 하시더군요. 예, 따님도 슬슬 건강을 돌보기 시작할 시기입니다. 아무튼, 저는 좋았어요. 뿌듯하고 보람찬 기분이 드는 것이 내 몸에 뭔가 좋은 것을 선사한 기분이 들었어요.
산길을 걷는 부녀
재미있는 얘기 하나 할게요(어른들이 이렇게 시작하면 백발백중 재미없는데,라고 생각하고 있죠?). 저의 새끼발톱이 변형돼서 모양이 이상하게 변한 건 알고 있지요?(모르시나? 나한테 관심도 가져요). 조금 불편하긴 했지만, 통증도 심하지 않고 눈에 잘 띄는 부위도 아니라서 오래 방치해 두었어요. 당연히 발톱은 점점 더 변형이 심해졌어요. 그러던 차에 이사한 친구 집에 갔다가 그 동네에서 우연히 변형된 발톱을 치료해 주는 업체 간판을 봤어요. 그리고 무심코 들어가서 치료를 받았어요. 치료를 마치고 나오는데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이게 뭐라고. 이 간단한 일이 뭐라고 이걸 못하고 살았나'. 이 간단한 행동을 하는 데 몇 년이 걸렸습니다. 통증도 없고 눈에 띄지도 않아서 그랬겠죠. 그래도, 그렇다고 이걸 그렇게 오래 방치해 둘 일이었나 하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어요. 그래서 결심을 했죠. '통증이 심하거나 그렇지 않거나, 눈에 띄거나 안 띄거나 내 신체 중에 불편한 곳이 있으면 즉각 치료하기로 하자.' 예, 제 나이면 본격적으로 건강을 돌봐야 합니다.
어디 건강뿐이겠습니까. 저는 이제 해야 할 일 때문에 하고 싶은 일을 미루지도 않습니다. 사람이 천년만년 살지 못한다는 엄연한 사실을 자각했거든요. 그래서 하고 싶은 것을 미루면서 그로 인한 만족을 지연시키며 살지 않지 않겠다고 다짐했어요. 좀 괴상한 생각이지만, '죽을병에 걸렸다면 무엇을 가장 먼저 할까?'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는데 그 생각 끝에 '왜 꼭 죽을병에 걸려야만? 지금은 왜 안되는데?'라는 생각이 따라 나왔어요. 그 후로는 가능한 하고 싶은 것을 '즉각' 하려고 애쓰고 있답니다. 언젠가 따님이 요가가 하고 싶다고 했을 때 '하고 싶다'는 말을 하지 말라고 한 것, 하고 싶다고 말하기 전에 어서 해버리라고 한 말도 이런 맥락에서였습니다. 그렇게 하고 있나요? 아, 코로나가 창궐하던 시기에 여행을 가고 싶다고 해서 제가 눈을 흘기긴 했죠.
사는 게 그래요. 뭐가 그리 바쁜지 나를 위해서 시간을 내기가 쉽지가 않아요. 치과 치료를 미루는 일은 숱하게 많았고, 친구들과 약속 하나 잡기도 힘들죠. 그렇게 정신없이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은 소중해요. 어떤 노력의 결과이니까요. 그러나 그 일상을 지속시키기 위해서라도 나를 돌보는 시간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일상을 잘 살아갈 수 있도록 나의 심신을 가다듬는 일은 바쁘고 정신없는 일상에 숨 고르기를 하는 일입니다. 몸과 마음에 이상 신호가 오기 전에 잠깐 멈춰 서서 가쁜 숨을 가라앉히는 일이죠. 요즘 젊은 친구들 사이에서 일상의 리추얼을 만드는 것이 유행인 것 같더군요. 유행에 뒤질 수 없는 저도 아침 산책과 하루에 한 편의 시를 필사하는 것을 리추얼로 삼고 있습니다. 그 작은 행동들이 일상에 큰 변화를 가져오지는 않아요. 그래도 그 시간만큼은 먹고사는 일과 고민에서 벗어나 나에게 집중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그냥, 계속해 보려고요.
따님은 어떤 일상을 보내시는지요. 옛날보다 한결 건강해진 모습을 보고 무척 흐뭇했어요. 500미터 남짓한 불암산을 마치 에베레스트 등정한 것처럼 떠버리는 모습은 약간 어이가 없었지만, 산행도 계속하고 요가도 시작하신다니 든든한 마음입니다. 몸을 움직이니까 마음도 함께 단련되는 것 같지 않으십니까? 그렇죠. 멘털은 피지컬로 관리하는 겁니다. 그래도 살아가다 보면 이런저런 일로 마음이 힘들 때가 많이 생길 거예요. 등산이나 요가로 해결이 안 되는 일 말이에요. 그럴 때야말로 심호흡이 필요해요. 시간도 필요하고요. 시간을 두고 호흡을 가다듬다 보면, 나를 힘들게 하는 문제가 스스로 사라지기도 해요. 그러나 시간을 두고 심호흡을 해도, 등산을 하고 요가를 해도 마음이 계속 나아지지 않으면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몸에 이상 신호가 올 때 언제나 몸의 회복을 우선순위에 두어야 하는 것처럼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은 정신치료나 상담이 과거처럼 어려운 일도 아니고 사람들의 인식도 많이 달라졌지요. 달라진 세상에서 따님의 심신을 돌볼 수 있는 자원들을 잘 활용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손을 뻗으면 바로 닿을 수 있는 곳에 제가 있다는 사실도 꼭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말은 이렇게 해도 살다 보면 먹고사는 것과 관련된 눈앞의 급한 일을 처리하느라 심신을 돌보는 일은 여전히 뒤로 밀리기 일쑤입니다(친구 집에 방문하지 않았더라면 지금도 제 발톱은 흉한 모양새를 하고 있었을 거예요). 그럴 때는 이런 주문을 함께 외워보면 어떨까요? '세상은 나 없이도 잘 돌아간다'. 불행하게도 혹은 다행스럽게도 이건 명백한 사실입니다. 그러니 우리,세상의 주인으로 살지 말고 그냥 내 몸과 마음의 주인으로 삽시다. 따님이 어른이 되어 가니까 이런 말도 하게 되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