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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원 Oct 13. 2022

혼자여서 좋은 생활

혼자의 삶을 불완전한 것으로 여기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따님.

오늘은 날이 아주 맑아요. 아빠는 친구 딸 결혼식에 가시고, 저 혼자 한가한 토요일 오후를 보내고 있습니다. 요즘은 결혼식이 아주 잦아요. 코로나로 잠시 미뤄두었던 식을 올리는 커플들도 많고, 우리가 어느새 자녀를 출가시키는 나이에 이르고 보니 주말마다 결혼식에 참석할 일이 생기는군요. 주변에서 '딸내미 결혼 안키냐'는 질문을 종종 받기도 해요. 그런 질문에는 '시키긴 뭘 시켜요. 결혼은 스스로 알아서 하는 거지' 하고 시큰둥하게 답하곤 하는데 말이 나왔으니 오늘은 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해봅시다. 


요즘에는 잘 안 쓰는 말인데 '과년(過年)하다'는 말을 들어보았지요? 흔히 결혼할 시기를 지난 나이, 대개는 결혼 적령기를 지난 여성의 나이를 지칭할 때 많이 쓰였죠. 결혼을 인생에서 꼭 해야 할 과제라고 여기는 생각하에 성립되는 말이어서 잘 안 쓰기도 하지만, 결혼을 한다 해도 적령기의 개념이 사라져 가고 있는 요즘 시대에 상용할 수 있는 말은 아니에요. 그런 때가 있었답니다. 결혼을 반드시 성취해야 할 인생의 과업쯤으로 생각하던 그런 때 가요. 그러나 요즘은 비혼주의자들을 만나는 것이 어렵지 않지요. 제가 일하는 사무실에도 비혼을 선언한 친구가 있어요. 사무실에서 저 같은 꼰대들이 결혼 이야기하는 것이 성가셨는지 아예 공표를 하더군요. 비혼주의자라고(시간이 좀 지난 얘기예요. 요즘 이런 사적인 이야기 하면 큰 일나는 거 알아요. 걱정마요. 안해요). 요즘에는 비혼주의자가 아니더라도, 굳이 결혼을 해야 하는가 하는 생각을 가진 친구들이 많은 것 같아요. 여러 사회적 요인들이 작용한 결과이기도 하겠지만, 혼자의 삶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이 많이 유연해지기도 했어요.


국내여성 독신율 전망


주변에 '과년한 딸'을 둔 사람들 특히, 제 또래의 여성들은 말해요. '능력만 되면 혼자 사는 게 좋지 뭐.' 이 말이 혼자 사는 게 좋다는 건지 아닌지 헷갈릴 때가 있었는데, '능력만 되면'이라는 단서가 붙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여기서 능력이란 경제적인 능력을 뜻하는 것이죠. 맞아요.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의지와 여건이 되어야 혼자 살아갈 수 있어요. 이 조건은 여성과 남성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조건이에요. 저 말은 또한 여러 의미를 내포하고 있어요. 저 말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우리 사회에 잔존하고 있는 가부장적 문화의 폐해를 감당하며 살아온 여성들이에요. 그래서 '능력만 되면 혼자 사는 게 좋지 뭐'라는 말에는 결혼과 함께 부과될 부담과 고통을 딸들이 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엄마들의 바람이 담겨있기도 해요. 세상이 많이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가정 내에서 은연중에 여성에게 부과되는 부당한 의무과 강요가 여전히 살아있는 것도 사실이에요. 이때의 능력은 원치 않는 의무와 희생과 봉사를 거부할 수 있는 조건이 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혼자의 삶이 주는 자유로움과 해방감도 결혼을 미루거나 선택하지 않는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 같습니다. 누군가에게는 비혼의 가장 큰 매력이 이것이지 싶어요.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고, 먹고 싶을 때 먹고 싶은 것을 먹고, 치우고 싶을 때 치우고, 자고 싶을 때 자고, 내 취향에 맞는 음악을 듣고, 마음이 내키면 가까운 친구들을 초대해서 소박한 파티를 열고, 그 외 기타 등등. 누군가와 함께 살면서 이 사소한 것들을 아무렇지 않게 하기란 어려울 거예요. 혼자의 삶이 주는 기쁨은 이런 소소함을 일상적으로 만끽할 수 있다는 점에 있을 겁니다. 가장 작고 기본적인 생활의 단위를 내 뜻대로 하는 것. 거창하지 않은 아주 작은 것들이 주는 생활의 기쁨과 위안들 말이죠. 제가 혼자 살고 싶은 이유기도 합니다.


혼자인 삶에 대해 사람들은 외롭지 않을까를 염려합니다. 둘이 함께 산다고 외롭지 않은 것은 아니라고 말하기도 하고요. 외로움은 혼자 살거나 함께 살거나 어쩔 수 없는 일 같아요. 그건 우리가 사는 내내 감당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나 어딘가 몸이 아프거나, 시시껄렁한 수다를 떨고 싶거나, 이유 없이 기운이 가라앉았을 때 무심하게 도움을 청할 사람들이 주변에 있다면 외로움이 우울하고 어두운 정서만은 아니게 될 거예요. 오히려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충만한 시간이 될 수도 있어요. 그래서 혼자 사는 데 필수품은 마음을 교류할 있는 좋은 이웃이 아닐까 해요. 따님의 주변에 좋은 이웃들이 많으면 좋겠어요. 물론 그들에게 따님도 좋은 이웃이어야 하겠고요. 좋은 환경은 물리적인 조건이 잘 갖추어진 환경이기도 하지만, 사람과 사람들이 함께 서로에게 좋은 것을 만들어 나갈 수 있는 환경이기도 하답니다. 그렇게 마음을 맞춰가는 사람들이 따님의 주변에 많았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이냐고요? 제가 따님의 인생에 개입해서 결혼은 미친 짓이니 혼자 살아라, 혼자는 외롭다 결혼을 해라, 이래라저래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그냥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습니다. 굳이 의도를 밝히자면, (그럴리는 없겠지만) 분위기에 이끌려 덜컹 결혼이란 걸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한 결혼을 어떤 것의 대안으로 선택하는 일도 없어야 합니다(이 또한 그럴 리 없겠지만). 무엇보다 혼자의 삶을 불완전한 삶으로 여기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혼자의 삶이 충분히 만족스러울 때 함께 사는 삶도 좋은 것이니까요. 따님이 어떤 선택을 하든 그 과정이 자연스럽고 편안한 것이면 좋겠습니다. 어떤 쪽이든 저는 따님의 선택을 존중할 겁니다. 이 말이 하고 싶었어요.


어떻게 결혼을 하게 되었냐고요? 저요? 아, 저는 잠시 눈이 멀어서... 모쪼록 따님은 눈을 바로 뜨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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