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원 Oct 13. 2022

政治생활

부당하다고 느끼는 것에 목소리를 내세요.

따님.

국정감사 시즌입니다. TV에서 잠깐 본 화면에는 정치인들의 고성이 오고 가네요. 정치생활이라. 좀 어색한 표현이지요? 마치 노회한 직업 정치인의 이야기 같이 느껴지기도 하고요. 정치인들 이야기가 아니니 미리 따분해하지 마세요. 사는 이야기입니다.


한국에서는 사람들이 모였을 때 조심해야 할 주제가 있어요. 바로 정치와 종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너무 첨예하게 의견이 갈리는 주제라서 공통의 화제로 올리기가 매우 민감한 주제입니다. 이 둘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쌓아온 신념과 연결되어 있어서 옳고 그름, 정의와 같은 삶의 철학에 영향을 줍니다. 또한 서로 다른 삶의 철학과 신념을 가지고 살아가면서 서로 다른 정치적, 종교적 의견을 개진하기도 하고요. 그런 과정에서 상대방에 대한 비난과 공격을 불사하기도 하지요. 그만큼 정치와 종교는 삶에서 중요한 영역입니다. 그러니 우리도 이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봐야지요. 


저의 오래된 일기장을 한 번 공개해 보려고요. 따님이 등장하거든요. 


아이랑 집회에 나갔다. 학교에서는 절대 나가지 말라고 했다는데 말 잘 듣는 모범생(?)이 군말 없이 따라나선 이유는 문제의식을 갖고 있어서라기 보다 호기심이 발동해서 일 것이다. 도대체 사람들이 모여서 뭘 어떻게 하는지 궁금하기도 했을 것이다. 게다가 이번 집회에는 청소녀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한다고도 하니 집회에 참석한 아이들이 무엇을 어떻게 하는지 직접 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아이는 집회 내내 불편해했다. 어색해했다고 해야 하나, 아빠 옆에 딱 붙어 앉아서 내내 굳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집에 가고 싶어? 응. 오는 길에 물었다. 무슨 생각해? 몰라!



날짜를 보니 따님이 중학생 때였던 것 같아요. 아마도 따님의 첫 집회 경험이었을 겁니다. 그때의 장면이 또렷하게 생각나는데 따님도 기억하나요? 저는 사회의 정치적 쟁점이 우리의 생활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따님에게 알려주고 싶었어요. 집에서 TV를 보면서 욕하고 투덜거리는 것 말고, 생각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한 데 모여서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는 현장에 따님과 함께 있고 싶었나 봐요. 그런데 다소 긴장하고 불편해하는 따님의 모습을 보면서 어떤 의견을 갖는 것과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이 꼭 일치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답니다. 부모가 아이에게 어떤 가치(그것이 아무리 옳은 것이라 해도)를 일방적으로 주입시키려 해서는 안된다는 것도요. 대신 따님이 선거권을 획득한 뒤로는 지지하는 후보들에 대한 호의를 은근한 분위기를 통해 내비치게 되었죠. 따님도 간접적으로 투표의 결과를 암시하는 액션을 취하기도 했고요. 우리는 그렇게 요란하지 않게, 은근히 정치적인 견해를 교류했습니다. 한 번은 아빠와 제가 지지하는 후보가 달라서 집안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따님이 중재를 했나, 어쨌나 하는 기억도 있네요. 애당초 중재가 가능한 사안이 아니라서 결국 그 해에 아빠와 저는 각각 다른 후보에 투표했습니다. 민주적인 가정입니다.


이런 집안 얘기를 하려던 것이 아닌데, 옛날이야기를 한 번 시작하면 끝이 없네요. 정치가 우리 생활 곳곳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보니 국회가 아닌 우리 집 안방에서도 이런 일이 발생하는군요. 맞아요. 그래서 정치가 우리의 구체적인 일상에 어떻게 작동되는지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정책적 결정과 법률이 우리의 삶을 더 윤택하게 하는 것인지, 우리를 주변인 취급하고 소외시키는 것은 아닌지 눈을 바로 뜨고 살펴보아야 합니다. 정치에 대한 무관심과 냉소는 내 삶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것과 같습니다. 그 결과는 고스란히 내 생활과 나를 둘러싼 사회적 환경의 낙후성으로 돌아오고요. 다 아는 이야기를 또 하고 있군요. 아, 왜 이 주제에 대해서 이렇게 잔소리가 많아지지요? 네, 요즘 제가 나라 걱정이 많아요.


어린 따님과 함께 집회에 참석했던 것은 모종의 정치적 사안에 대해 의견을 내고, 그 의견이 다루어지는 과정을 자연스럽게 체험할 기회를 주고 싶어서였습니다. 이것이 우리 같은 평범한 시민이 할 수 있는 정치생활이고요. 저는 따님이 이런 의미의 정치생활을 아주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으로 여기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런 태도가 일상에서도 발현되기를 바랍니다. 따님이 부당하다고 느끼는 것들에 대해서 목소리를 내고 저항하면서 누구도 따님의 삶을 함부로 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은 개인적 차원에서의 정치생활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런 태도가 사회적으로 확장되면 우리 사회의 시스템이 부당한 방식으로 작동되지 않도록 타인과 연대할 수 있겠지요. 이렇게 정치생활은 결국 나의 삶을 위한 것입니다. 


마지막 말은 다시, 오랜 전 일기로 대신할까 해요.  

집회 현장에는 화염병 대신 촛불과 휴대폰이 등장했다. 드레스 코드를 정해주는 시위라니. 격세지감. 일상을 살아내면서 사람들은 타인들과 길 위에서 만나고 광장에서 성장한다.


정치는 분명한 목적이 있는 활동입니다. 평범한 우리의 정치생활은 어떤 목적을 실현하는 방편에 그치지 않고 좋은 삶을 위한 일상의 태도로 여겨지길 바랍니다.

이전 09화 社交생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