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로 살아가는 시간
따님의 시간 속에서 부디 평화롭기를 바랍니다
따님.
이제 편지를 마무리할 때가 된 것 같군요. 매일 듣는 잔소리를 편지로 까지 읽으려니 좀 따분하지 않던가요? 저에게는 참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저의 생활을 가다듬는 계기도 되었어요. 이 긴 편지를 통해서 따님께 정말로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이었을까, 다시 한번 생각해 봅니다.
언젠가 팟캐스트로 정혜윤 작가의 대담을 듣고 있었는데 진행자가 이런 질문을 했어요. '다시 태어나면 무엇을 하고 싶으세요?' 평범한 질문이잖아요. 이 질문을 정혜윤 작가는 이렇게 받더군요. '이건 정말로 겸손하게 말하는 것인데요. 저는 충분히 저로 살고 있어요'. 너무 멋졌어요.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제가 따님께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말도 바로 이것입니다. 또 한 번, 따님이 싫어하는 소리를 해야겠어요. 화내지도 슬퍼하지도 말아요. '부모가 없는 사람처럼 살아라'. 이 말은 부모나 다른 어른들의 기대에 부응하려 하지 말라는 의미이고, 다른 사람의 감정과 생각을 내 것 인양 착각하지 말라는 의미이며, 인생에서 어떤 결정을 할 때 그 기준이 부모(를 포함한 다른 사람들)의 인정과 선호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입니다. 감당할 수 있겠냐고요? 걱정하지 마세요. 그건 저(와 아빠)의 몫입니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기보다 누군가 걸어간 길을 조심조심 살펴 걷는 따님에게 오래오래 좋은 친구가 되어 주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많은 시간을 함께하다 보니,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제가 갖고 있는 어떤 것이 따님에게 너무 많이 넘어가버린 것 같아요. 그래서 경계하게 됩니다. 그래서 어려운 결심을 하려고 합니다. 따님이 따님의 시간을 살 수 있도록, 따님이 스스로 자신의 영토를 일굴 수 있도록, 그래서 따님이 '충분히 자기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저는 이제 따님의 시간에서 빠져나와 저의 시간을 살아 보려고 합니다. 편지를 쓰면서 깨달았어요. 따님이 부모로부터 독립을 못한 것이 아니라 제가 따님으로부터 독립을 못하고 있다는 것을요. 우리 이제 각자의 시간을 살아갑시다. 제가 이 긴 편지를 통해서 하고 싶었던 말은 바로 이것입니다.
나이가 들면 부부간에도 별로 말이 없어집니다. 이심전심 뭐 그런 건 아니고요. 특별히 할 말이 없어요. 한 때는 세계 평화와 정의사회 구현을 위해서 열띤 토론을 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저 뉴스를 보고 둘이 함께 혀를 끌끌 차는 게 전부입니다. 이리저리 TV 채널을 돌리다가 분위기를 전환해 보려고 따님 이야기를 꺼내면 부친의 표정이 밝아져요. 그러던 어느 날엔가 이 말을 툭 던지더라고요.
'자식이 행복하면 부모는 성공한 것이에요'
흘끗 쳐다보고 속으로 생각했어요. '어머 이런 훌륭한 소리를 다 하네'. 그리고 그 멋진 말을 가슴에 새겼습니다. 저의 생각을 아주 깔끔하게 대신 정리해 준 말이었거든요. 그래서 인생 성공에 눈먼 저는, 따님의 행복을 기원하는 것으로 편지를 마무리하게 되었습니다.
'따님의 시간 속에서 부디 평화롭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