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도 좋지만, 제주는 나에게 숲과 나무이다. 인공적인 그 어떤 소리가 들리지 않는 숲에서 그저 조용히 혼자 있고 싶었다. 제주에 온 유일한 목적이며 그만큼 기대가 컸던 거문오름은 탐방객들 때문에 온전히 즐기지 못했다. 1코스까지만 해설을 들어보자 싶어서 해설사와 탐방객들과 함께 움직였는데, 소란스러웠다. 2코스부터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 혼자 움직였지만, 여전히 사람들의 소리가 들렸다. 고대해 온 여정인데, 낭패스러웠다. 3코스에 들어서자 비로소 혼자가 되었다. 바람소리와 새소리뿐 자연을 해치는 사람의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천천히 걸었는데도 탐방안내소에 금방 도착했다. 아쉬웠다. 그러니, 숲이 더 우거진 계절에 다시 와야 한다.
저녁을 가볍게 먹고 싶어서 동네를 어슬렁 거리다가 허름한 카페를 발견했다. 검색을 하다가 본 곳인데 외관이 너무 낡고 허술했다. 문을 열었는데 내부에 식물이 가득했다. 카페 이름이 숲의 식물원. 숲의 식물원이라, 이게 무슨 말인가, 숲에 식물원이 있다는 말인가?
내 나이쯤 되었으려나. 카운터 너머에서 뭔가를 먹고 있던 주인여자가 급하게 정리를 하더니 자리를 안내하고 메뉴판을 건네주었다. 커피도 있고 Tea도 있고, 맥주도 있고 와인도 있고 사케도 있는데 그 종류가 제법 다양했다. 또 다른 메뉴판에는 떡하니 만둣국도 있었다.
"만둣국도 하세요?"
"네 떡만둣국도 해드릴 수 있어요."
"그럼 떡만둣국 주세요"
원래는 와인을 한 잔 할 요량이었으나 생각과 달리 입에서 나온 말은 떡만둣국이었다. 생각과 입이 이렇게 따로 놀면 늙은 건데.
"양 적게 해 주세요"
이번에는 생각과 말이 일치했다.
"저희는 카페라서 양은 많지 않아요"
카페에서 만둣국도 파시면서 뭘. 이번에는 생각이 말로 나오지 않았다. 대신 뱅쇼를 주문했다.
"뱅쇼 한 잔 주세요"
"같이 드릴까요? 아니면 다 드신 후에 드릴까요?"
"같이 주세요."
떡만두국은 정말 맛이 있었다. 양도 딱 맞았다. 뱅쇼도 맛있었다. 오래 머물렀는데 일어설 때까지 손님은 더 오지 않았다. 주인여자와 나와 음악이 전부였다. 거문오름에서 느끼지 못했던 숲의 고요를 이곳에서 경험하는 구나.
아침을 먹으며 숙소 주인에게 저녁으로 떡만둣국을 먹었다고 하니 "거기 떡만듯국도 해요? 사장님이 드시고 싶었나 보네" 하고 심드렁하게 말했다.
퇴직하면 술집을 할 거냐고 후배가 물었었다. 내가 먹고 싶은 술과 안주를 만들어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만 손님으로 받겠다는 말을 기억하고서 자기도 받아줄 거냐는 말과 함께. 진짜로 술집을 차렸다면 아마도 저 술집 같은 분위기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망했겠지만.
돌아와 숲의 식물원을 검색하니 카페 이름이 '숲의 식물원'이 아니라 '술의 식물원'이었다. 술의 식물원? 술의 식물원은 또 뭔가. 술을 파는 식물원이라는 말인가. 검색창에는 일주일이 넘는 봄방학 휴무가 공지되어 있었다. 떡만두국을 차려주시고 바로 떠나셨나보네. 이번엔 와인을 못 마시겠구나. 사장님 봄방학이 끝날 때 맞춰서 다시 가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