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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떰브 Sep 02. 2020

한국어 선생님 일기 05

05 두 번째 둥지찾기 프로젝트

첫 학교에서의 구조조정 통보를 늦게 받은 탓에 봄 학기 신입 강사 채용이 대부분 마감되어 꼼짝없이 한 학기를 쉬게 되었다. 고작 두 학기 만에 다시 또 면접과 시범 강의를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게다가 일을 하다가 안 하는 것이 여간 불안한 일이 아니었다. 일단은 뭐라도 하며 지내자 싶어 만료된 토익 점수를 갱신하고 마냥 채용 공고를 기다렸다. 그렇게 불안한 3월과 4월을 보냈다. 그리고 5월이 되자 여름학기 신입강사들을 뽑는 공고가 하나 둘씩 올라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서울권 대학교의 어학당 채용 공고는 가뭄에 콩 나듯 올라왔다. 서울 주요 대학에서 한국어 교육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거나 교원양성과정을 수료하는 사람들은 갈수록 쏟아지는데 학생수는 그만큼 늘어나고 있지 않기 때문이었다. 여기저기 지원서를 다 넣고 싶어도 넣을 곳이 없었다. 그래서 총 세 군데의 대학교에 지원서를 썼다. 1번 학교는 합격, 불합격의 여부도 알려주지 않고 감감무소식이었다. 그리고 2번 학교는 숨은 참조를 잘 모르시는 건지 서류 불합격을 알리는 메일에 수신자들의 이메일을 전부다 볼 수 있게 써서 보냈다. 개중에 낯익은 이메일도 있었는데 그분도 내 메일 주소를 보며 마음속으로 따스한 위로를 건네셨을까. 그에 비해 3번 학교는 지원이 잘 되었다는 회신을 거의 바로 주었다.


놀랍게도 3번 학교에서 서류 합격이 되어 면접의 기회를 얻었다. 그리고 필사적으로 준비한 시범 강의 자료와 교수학습안을 들고 학교로 갔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면접의 기회를 얻은 것 같아 살짝 당황하기도 했다. 나는 유약한 온실 속의 화초인데 온실 밖은 온통 배틀로얄이었다. 한 명이 살아남을 때까지 총을 겨눠야 하는 그런 잔인한 영화와 현생은 사실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시범 강의를 포함해 20분간의 면접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정말 허탈했다. 나름의 압박 면접이라 기운도 없었다. 이 학교에는 다시는 올 일이 없으리라 짐작했다. 그렇게 일주일 후 팔자 좋게 낮잠을 자던 백수는 합격했다는 연락을 받게 된다. 잠긴 목소리를 가다듬고 두 무릎 곱게 꿇은 상태로 열심히 하겠다는, 아주 뻔하고도 짙은 진심을 말로 옮겼다. 그렇게 난 아주 공손한 중고 신인으로 다시 한 번 데뷔를 하게 된 것이다.


새로 일하게 된 학교는 아주 체계적으로 돌아가는 곳이었다. ‘이걸 왜 하는 거지?’라고 생각되는 일은 없었고, 두근대며 들어간 수업에서는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던 학생들이 있었다. 학생들이 대답을 해준다. 놀랐다. 학생들이 질문을 했다. 더 놀라 버렸다. 수업이 끝나고 개인 연락처로 추가 질문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숙제를 해 왔다. 나는 너무 감동했고, 진정 신입 다운 신입의 마음으로 열심히 연구하고 준비했다. 정성스럽게 준비한 수업을 학생들에게 선물하고서는 다 같이 풀어보는 기분이었다. 외국인 학생들이 이해했다는 의미로 고개 끄덕이는 제스처를 하면 거의 주먹을 물고 벽을 치며 울 것 같은 느낌이었다. 


물론 모든 학생들이 다 열심히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참을 만한 정도였다. 자주 휴대폰을 보거나 집중하지 않고 멍하니 있는 학생들에게는 조심스럽게 주의를 주면 금방 태도를 바로 잡았다. 일방향이 아닌 쌍방향으로 수업을 하니 수업하는 시간은 알차고 즐거웠다. 수업을 하면 할수록 신이 났고, 학생들도 좋은 피드백을 주었다. 한 학생에게 선생님을 그려 봤다며 보내 준 그림을 받은 그 날 나는 퇴근길에 휴대폰을 들고 지도교수님께 메일을 보냈다. 그리고 정말 오래 연락을 안 드렸던 학창 시절 선생님들께 전화까지 돌렸다. "예! 선생님 잘 지내시지요? 네, 저도요. 아 저 OO대학교에서 외국인들을 가르치고 있어요. 아이고, 대단하기는요. 뭘, 감사합니다. 네, 곧 찾아뵐게요."고향에 내려가지도 않았는데 금의환향의 기분을 만끽했다. 셀프로 축하 받는 기분도 썩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이제 정말 열심히 하고 행동 똑바로 해야지. 여기서 꼭 자리 잡아야지. 다짐했었다. 그때는 열심히 하면 정말 그렇게 될 줄 알았다. 불과 몇 달 후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도 못 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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