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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루체 Apr 05. 2021

봄이 있었던 날에

나에게 봄이 과거인 이유

빵집이 문을 닫았다. 매일 출퇴근길에 아주 달콤한 냄새가 나서 '빵'하면 얼른 그 가게가 생각날 만큼 꽤 좋아하는 가게였다. 프랜차이즈 빵집이 아니라서 그 가게만의 시그니처인 빵이 몇 가지 있었는데, 그걸 이제 더 이상 먹을 수 없겠구나 생각하니 퍽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이렇게 또 하나의 추억이 사라져 버렸네.


우리 식빵 먹으러 가지 않을래?

식빵을 굳이 어디를 가서 까지 먹어야 하는 거야?

정말 맛있는 식빵을 파는 곳을 알고 있거든.


그 집은 안팎으로 뭔가를 넣거나 바른 빵들 보다는 바게트나 식빵 같이 아주 베이직한 것에서 강점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밤식빵이 아주 일품이라서 이 곳의 밤식빵을 우리는 무척 좋아했다. 어딘가 조금은 촌스러운 가게의 인테리어가, 아직도 CD 플레이어로 음악을 트는 조금 레트로한 분위기가, 심지어 신청곡을 말하면 틀어주는 소소한 재미가 마음에 들었다.

그날도 우리는 갓 구워진 식빵을 우유에 찍어먹으며 주인이 틀어둔 CD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가만히 듣고 있었다. 창 밖에는 옅은 비가 내리고 있었고, 윤하의 앨범이 흘러나오고 있었고, 우리는 서로에 기댄 채 창 밖을 바라보며 노래를 들었다.




<봄은 있었다>


내 상태 메시지를 한동안 장식하던 이 노래에 네가 아주 가득 깃들어있다는 걸 아는 사람은 없다. 그동안은 내가 좋아하는, 나만 아는 노래로 남겨두고 싶었으므로 다른 사람들이 물어도 알려주지 않았었는데, 이렇게 설정해 남들 모두가 알게 되면 그 특별함이 조금은 희석되지 않을까 하는, 어림없는 기대감에 설정한 노래였다. 나온지도 오래된 데다가 애초부터 그다지 유명한 노래가 아니었으므로, 길을 걷다가 우연히 들을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그때는 그게 다행이라 생각했었다. 이제와서는 차라리 자주 들렸다면 익숙해져서 무뎌졌을 텐데, 하고 생각한다.


무척 추웠던 2월의 그 날, 내가 너에게 이별을 고했던 그 날, 차마 나를 붙잡을 수가 없다고 네가 말했던 그 날, 마음씨 좋은 근처 공사장 인부에게 양해를 구하고 너와의 오랜 사진과 편지를 한 시간이나 걸려 천천히 한 장씩 태우고 돌아오던 그 날, 눈물도 채 닦지 못한 채 버스 정류장에 앉아 버스를 기다렸다.


엄마! 어디서 군밤 냄새나!

응, 그렇네. 어디서 뭘 태우나 보다.


탄 냄새가 몸에 배어있을 거라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나는 얼굴이 붉어짐을 느꼈다. 아무래도 버스를 타면 민폐를 끼칠 것 같아, 여섯 정거장 떨어진 나의 집까지 걷기로 했다.


머무는 맘이 고마운 줄

변하는 것이 아픔이라는 걸

그때 나는 너무 어렸던 걸까

정말 알지 못했어

고마웠던 내 사랑 안녕

미안했어 어린 날의 고집들

결국 나는 그대의 바람처럼

이제 어른이 됐어


2월의 햇볕은 무기력했다. 쌀쌀한 바람에 옷깃을 잔뜩 여몄더니 버스 정류장에서 아이가 말했던 군밤 냄새가 났다. 밤식빵을 먹던 우리의 끝이 군밤 냄새로 남았다고 생각하니 실소가 터지면서도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서, 곧 다가올 봄이 조금도 설레지 않게 되어, 나 역시 <봄은 있었다>고 생각해 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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